총사업비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에 적용 중이던 보안 감점을 당초 만료일에서 1년 1개월 추가 연장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전 통보 없이 발표가 이뤄진 점, 기존 입장을 뒤집은 점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정치적 개입 의혹까지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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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형 확정일' 기준이라더니…스스로 뒤집은 방사청의 논리━
방사청은 지난달 30일 HD현대중공업에 대해 올해 11월18일까지 3년간 적용되던 기존 보안감점을 2026년 12월까지 추가로 연장하겠다고 밝혔다.앞서 2020년 9월 울산지검은 보안사고를 일으킨 HD현대중공업 직원 12명 중 9명에 대해서는 기소했다. 이 가운데 8명은 2022년 11월19일 판결이 확정됐고, 나머지 1명은 검사가 항소해 2023년 12월 7일 최종 판결이 확정됐다.
방사청은 기존에 '최초 형 확정일'인 2022년 11월19일을 기준으로 3년간 보안감점을 적용하겠다고 한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 1명에 대한 2심 확정일인 2023년 12월7일부터 3년간 적용하는 것으로 해석을 뒤바꿨다.
울산지검은 당시 9명에 대해 '하나의 사건번호'로서 한꺼번에 기소했고 방사청은 보안감점 규정에 따라 '동일사건에 복수의 인원이 관련되거나 복수의 사건인 경우 0.5점을 가중하되 최초 형 확정일로부터 3년간 형사처벌 감점이 적용된다고 HD현대중공업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청은 2023년 11월 '방위사업법 및 하위법령 개정안 설명회' 자리에서도 공개적으로 HD현대중공업 사건을 대표적 사례로 제시하며 '2025년 11월18일까지'를 보안감점 기간으로 명시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방사청의 이번 행위는 K-방산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국익 훼손 행위"라고 즉각 반발하며 모든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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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DX 논의한 당정…방사청 결정에 쏠리는 '정치 개입' 의혹━
방사청의 돌연한 입장 변경을 두고 정치적 배경이 작용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방사청이 발표하기 직전 여당과 국방부, 방사청이 참여한 비공개 당정협의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의 협력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30일 방사청의 발표 약 한 달 반 전, 한 매체는 일각의 주장을 담아 'HD현대중공업의 감점기한은 오는 11월까지가 아니라, 엄격하게 따지자면 내년 12월'이라고 주장하는 보도를 처음 냈다. '2022년 11월 확정 판결된 8명의 사건과 2023년 12월 확정 판결된 K씨의 사건은 동일 사건으로볼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HD현대중공업의 보안감점 기간이 '내년 12월까지'라고 일각에서 주장한다는 것이다. 방사청이 지난 30일 발표하면서 내세운 근거와 같다.
지난 30일 오전 더불어민주당과 국방부, 방사청 등은 비공개 당정협의회를 열고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관련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민주당 의원은 기자들에게 "(KDDX 수의계약, 경쟁입찰 가운데) 결론은 아직 안났다"며 "어떻게 가는지는 결국은 방위사업을 주관하는 방사청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는 그에 따른 문제점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로 했다"고 말했다. 방사청에 집권 여당이 '의견 제시'의 형태로 KDDX 문제에 대해 개입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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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의원의 질의에 '답변서'처럼…짜맞춘 듯한 방사청 '종합의견'━
앞서 9월 18일로 예정된 분과위가 무산된 것을 두고 국회나 분과위 민간위원들의 반대가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비공개 당정협의회가 끝난 직후 열린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방사청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사건에 대해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보안 벌점을 올해 11월 18일까지 적용하는걸로 결정을 했지만, 내부적으로 '법무 검토'를 해본 결과 1심에 대한 판결과 2심에 대한 판결은 2가지 사건을 분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HD현대중공업에 대한 보안 감점에 대한 기한을 2026년 12월 6일까지로 적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방사청의 발표 하루 전인 9월 29일에는 방사청이 한 여당 의원에게 'HD현대중공업 보안감점 관련 검토 보고'를 제출한 사실도 알려졌다. 보고서에는 법무 검토 결과를 근거로 보안 감점을 2026년 12월까지 적용한다는 '종합 의견'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 질의에 대한 '답변서' 성격의 문건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방사청의 발표 내용과 동일했다.
지난 4월 24일 방사청이 KDDX 사업 방식을 결정 짓는 '방사청 분과위'를 열기로 한 날 당일 오전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한 의원은 "K방산을 선도하는 분야에서 방산 비리, 방산 게이트를 의심케 하는 말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정권이 2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알박기'를 강행하는 저의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방사청은 이날 오후 분과위에서 KDDX 사업 추진 방식을 심의했지만 결론내리지 못한채 무산시켰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업 기조가 흔들린다면 국방력 강화라는 본래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며 "정책 일관성과 신뢰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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