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7일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 예인선단과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돌하며 대규모 기름 유출이 발생했다. 사진은 2007년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소원면 마포리 모습. /사진=태안군 제공
2007년 12월7일 충남 태안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 예인선단과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돌하면서 청정해역을 자랑하던 서해 안쪽 바다는 순식간에 암흑처럼 변했다.
평온을 깨뜨린 충돌
사고는 2007년 12월7일 오전 7시6분 만리포 앞바다에서 일어났다.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 예인선단이 정박 중이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와 충돌하며 대규모 기름 유출이 발생했다. 바닷속으로 흘러 들어간 원유는 총 1만2547㎘. 맑디맑던 태안 앞바다는 몇 시간 만에 검은 띠가 해안을 향해 번지는 기괴한 풍경으로 뒤덮였다.
기상악화는 초기 방제에 발목을 잡았다. 유출된 기름은 조류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고 다음날 원북·소원면 일대 해수욕장과 포구까지 오염이 확장됐다. 당시 사고지점에서 수십㎞ 떨어진 태안읍 시내에서도 기름 냄새가 날 정도로 사고 규모가 매우 컸다.
국가가 움직였고, 국민이 달려왔다
사진은 2007년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사진=태안군 제공
태안군은 예비비를 긴급 투입하고 공무원·군인 2700여명을 현장에 투입했다. 충남도는 곧바로 재난대책반을 꾸렸고, 정부 역시 사고 다음 날 '재난 사태', 나흘 후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며 대응 체계를 최상위로 격상했다.
사건을 접한 전국의 시민들은 추위도 잊고 태안으로 향했다. 하루 6만명의 자원봉사자가 태안의 해안가에 선 날도 있었다. 총 123만여명의 자원봉사자는 기름을 퍼내고 검게 물든 바위와 갯벌을 닦으며 바다를 되살렸다. IMF 시절 금 모으기 운동 이후 가장 뜨거운 국민적 연대라는 평가가 절대 과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태안 생태계가 원상회복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태안은 국민의 힘을 등에 업고 예상보다 빠르게 살아났다. 2008년 봄부터 조업이 순차적으로 재개됐고, 여름엔 대부분 해수욕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2009년엔 안면도 국제꽃박람회가 200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이며 태안 재기의 신호탄을 쐈다. 2013년 '바다의 날' 행사, 2017년 자원봉사자 감사행사는 다시 맑아진 태안 바다를 국민 앞에 내놓은 의미 있는 자리였다. 긴 복구의 시간을 지나 태안은 다시 연간 1000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18년이 흐른 지금, 남은 기록과 교훈
사진은 2007년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사진=태안군 제공
국토해양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은 사고의 주원인을 삼성중공업 예부선단 측 과실로 결론 내렸다. 특히 충돌 및 해양오염의 주요 원인은 예부선단에, 충돌의 일부 원인 및 오염 확대 원인은 유조선 측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주예인선인 '삼성T-5호' 선장은 면허취소, '삼호T-3호' 선장은 업무정지 1년,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 선장과 1등항해사에게는 각각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삼성중공업과 선박 위탁 관리업체에는 각각 개선을 권고하고, 부선 '삼성1호'의 선두(무동력선을 이끄는 책임자)에게는 시정 권고가 내려졌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는 단순한 해양오염 사건이 아니다. 재난 대응 체계의 허점을 드러낸 사건이자, 동시에 국민적 연대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국가적 기억으로 남은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