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적인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빌딩 외벽에 덕지덕지 붙은 간판만큼 도시미관을 해치는 주범이다. 주변 경관을 고려하지 않은 아파트 외벽 디자인은 미적 감각은 아예 접어둔 게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 같은 현실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보금자리주택에 들쑥날쑥한 외벽 디자인을 도입하기로 했다. 다채로운 디자인을 입힌 아파트를 지어 도시미관을 향상시키는 계기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서초 보금자리 조감도
 
◆들쑥날쑥 발코니, 성냥갑 아파트는 가라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보금자리주택의 발코니 디자인을 활용해 아파트 입면의 다양한 변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2005년부터 합법화된 발코니 확장은 실내공간을 넓게 쓸 수 있는 이점은 있었지만 획일적인 외관의 단조로움 탓에 도시경관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로 지적돼 왔다. 발코니만 바뀌어도 디자인이 살아날 수 있다는 건 외국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국토부와 LH는 보금자리주택을 대상으로 발코니를 층별로 엇갈리듯 다른 위치에 만들거나 일부 개방형 발코니를 설계에 도입할 방침이다.

우선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신진 건축사를 대상으로 현상공모를 실시하고 6월에는 시범지구를 지정키로 했다. 민간에게는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보금자리주택의 디자인 차별화를 통해 새로운 디자인의 아파트 문화를 유도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사업지구별 주변환경의 특성을 반영해 다양한 디자인의 보금자리주택이 공급될 수 있도록 지구계획 수립단계에서부터 주택건설단계까지 통합디자인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개별 건축물로 디자인을 하게 되면 다른 듯 닮은 통일성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총괄계획가(Master Planner)를 중심으로 한 디자인 사전기획을 강화하고 3차원 입체계획을 고려한 도시·건축통합계획을 수립하도록 '보금자리주택 업무처리지침'을 개정했다.



◆보금자리주택 '디자인 자유구역' 운영

국토부는 지난 2010년부터 LH에서 추진 중인 서울 강남 3개 임대단지, 부천옥길 1개 임대단지 등 디자인 보금자리 시범사업지구를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했었다. 특별건축구역이란 건축법 등 관계법령의 일부규정을 적용하지 않거나 완화해 창의적인 건축물과 아름다운 도시경관 창출을 목적으로 특별히 지정한 일종의 '디자인 자유구역'이다.

예컨대 서울 강남지구 A-3블록의 경우 독거노인과 1~2인 가구 등 영구·국민임대 거주자의 사회적 접촉과 교류를 위해 단위 주거에는 사랑방 개념을, 외부공간에는 공동마당 개념을 새로 도입했다.

A-4블록은 ㄱ·ㄴ자형 평면을 조합해 다채로운 외부공간을 창출하는 콘셉트를 반영했다. 부천옥길지구 A-1블록의 경우 블록형 공동주택이라는 테마를 한국적 마당과 커뮤니티 공간으로 새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를 통해 국내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참신한 주거모델이 등장하는데 일조했다"며 "설계도면이 그대로 현실에 적용되긴 어렵지만 상당부분 개념을 차용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또 밀도와 층수 다양화를 위해 평균치를 18층 이하로 해야 하는 층수 제한 규제를 지난 2010년 폐지했다. 이렇게 되면 단지별로 용적률을 차등 적용할 수 있고 아파트 키 높이가 일정하지 않아 다양한 스카이라인을 유도할 수 있다.

최근 서울시가 한강변 재건축 아파트의 높이를 강변과 뒤쪽을 사선으로 하도록 검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강 조망을 가능하게 하고 한강변을 병풍처럼 막아선 기존 아파트 단지 구조를 개선하려는 목적이다.

다만 디자인 강화로 인해 분양가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이경석 국토부 공공주택개발과장은 "디자인 개선 등을 통해 분양가 상승요인이 생길 여지가 있는 만큼 원가관리 방안도 함께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보금자리주택에 다양한 디자인을 도입하게 되면 민간 아파트들에도 영향을 줘 전체 도시미관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한국형 주거형태 밑그림 내놓는다

서울시도 성냥갑 아파트란 비판을 받아 온 공동주택 디자인을 다양화하기 위한 기초자료 수집에 나섰다. 서울시는 최근 아파트 공간의 특징과 한국인이 좋아하는 공간을 조사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한 용역을 착수했다. 주거 계획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다양한 정책을 위해선 공공차원에서 아파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아파트는 1960년대 처음 공급된 이래 반세기 넘게 우리 주거양식뿐 아니라 도시경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가장 큰 대표적인 건축물로 자리 잡았다. 1960년 이후 인구 증가와 주택공급정책으로 최근까지 아파트 용적률은 가파르게 상승해 1990년대 전국 평균이 이미 200%를 넘은 상태다.

이러한 용적률 문제 해결을 위해 유럽·일본 등 해외의 경우 1970년 이후 커뮤니티 등을 강조, 겹집 형태의 깊이가 깊은 주택이나 중복도 형식의 주거로 저층 고밀을 추구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벽식구조 도입 등으로 층고를 낮추고 인동거리를 완화하는 등 고층화 정책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특히 국내 주택계획의 특징은 용적률 확보 측면에서는 극히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남향 위주의 전면폭 확장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개방적이고 밝은 공간을 우선시 하는, 즉 모든 방은 창문을 가지고 외기에 접해야 한다는 한국인의 공간 선호 특성 탓"이라고 분석했다. 시는 시민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설문조사도 시행하는 등 다양한 방향으로 용역을 시행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이번 용역결과를 통해 한국인이 좋아하는 공간을 바탕으로 성냥갑 아파트로 오명을 쓴 주거동 형태와 고층화 등의 원인을 밝혀 향후 공동주택 변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의 밑거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아울러 중·저층 아파트와 고층 아파트의 에너지 사용량을 비교해 저에너지 아파트 정책의 기초 자료도 구축할 예정이다. 그동안 아파트의 에너지 소비효율에 대한 의견이 달라 이번 용역을 통해 정확한 데이터를 조사하려는 취지다.

이번 용역은 SH도시연구소가 진행하며 오는 8월에 완료되면 자료를 공개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류훈 주택공급정책관은 "국내 아파트 공간계획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에너지·거주성·용적률은 물론 층수 등을 고려한  쾌적하고 양질의 공동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