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중소기업을 다니다 은퇴한 후 분당신도시에 살고 있는 김현택씨(가명·58)는 요즘 아파트시세만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전용면적 130㎡ 규모의 대형아파트로 이 집을 사서 이사 올 때만 해도 집값이 13억원에 달했다.
 
요즘 중개업소에서 거래되는 가격을 슬쩍 알아봤더니 6억8000만원으로 떨어졌다. 아파트값이 명목가격으로만 반토막이 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9억원선을 유지하던 아파트값이 올 들어 2억원 이상 급락한 것이다. 김씨는 "집이 노후생활의 유일한 밑천인데 앞으로 어찌할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곳곳에서 신도시 위기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수도권 신도시는 1기 신도시 5곳(분당, 평촌, 일산, 중동, 산본)을 포함해 대략 10개다. 1기 신도시는 우리나라 베이비부머의 삶과 궤적을 같이 한다. 1980년대 말 30대 초·중반이던 베이비부머들은 신도시를 통해 내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아파트가 꿈이 아니라 절망이 되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값은 단기적으로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다시 도입된 3·22대책 발표 직전인 2011년 2월이 정점이었다. 1년 반이 흐른 지금, 다른 지역보다 신도시 아파트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값은 지난해 2월부터 올 7월까지 3.9% 하락했다. 고양시 일산동구는 5%, 일산서구는 4.4% 떨어졌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값이 2.9%, 수도권이 1.4%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신도시가 더 하락한 셈이다.


문제는 주로 베이비부머들이 보유하고 있는 중대형아파트가 직격탄을 맞았다는 점이다. 분당이나 일산 중대형아파트값의 역사적 고점은 2006년 말인데 그때에 비해 적게는 30% 많게는 50%나 떨어졌다.

이러다보니 베이비부머들 사이에서는 절망과 탄식의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자녀들이 다 자란 베이비부머들은 은퇴를 앞두고 큰 집을 팔아 작은 집으로 옮기고 싶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어 매물만 쌓인다.

신도시 집값이 이처럼 급락한 것은 도심에서 가까운 보금자리주택이 대거 들어서면서 입지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은 지 20년이 넘다보니 건물은 노후됐고 고층으로 지어진 아파트라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메리트도 떨어져 시세에서 힘을 받지 못한다.


올드타운(Old Town)이 돼버린 수도권 신도시의 미래는 우울하다. 어찌 보면 신도시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부가가치 생산은 하지 않고 잠만 자는 침상도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산을 하지 않는 도시는 잠시 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한낱 일장춘몽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라도 신도시의 위상을 다시 재정립해야 한다. 앞으로 지어질 2기 신도시는 명실상부한 자족형 도시로 거듭나지 않으면 1기 신도시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지방에 세종시나 혁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수도권 주택수요가 지방으로 분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2기 신도시를 베드타운으로 만들 경우 주택공급 과잉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경쟁력이 없는 2기 신도시는 아예 산업단지로 돌리거나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등 대안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