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이 연이은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고객 돈으로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는가 하면 4월 중 상장폐지를 앞두고 있다. 대주주인 하나금융지주와의 갈등으로 외환은행 노조의 길거리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 지 1년이 넘었지만 통합은커녕 갈등만 확산되는 모습이다.

◆외환은행 사상 첫 검찰 압수수색 왜?
 
지난 3월19일 오전. 외환은행 본점에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 소속 검사와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검찰이 시중은행을 압수수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본점에 들어오자마자 윤용로 행장실로 향했다. 또 다른 검찰은 전산실로 들어가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전산 로데이터(raw-Data·원자료), 대출자료, 임직원 자료, 대출기업 명단, 대출금리 자료 등을 확보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께 들이닥친 검찰은 오후 6시가 넘어서야 철수했다. 검찰이 압수한 문건은 박스 10개 분량이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외환은행의 전·현직 임직원 10여명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또 압수한 자료를 분석하고 불공정 영업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예정이다.
 
이처럼 외환은행이 압수수색을 받은 이유는 금융감독원의 수사의뢰 때문이다. 금감원은 2006년 6월부터 2012년 9월까지 외환은행 여신을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3089곳의 대출 6308건에 대해 대출금리를 편법으로 최고 1%포인트 인상해 부당이득을 챙긴 사실을 적발했다. 가산대출금리로 챙긴 금액은 181억2800만원이다. 또한 영업점에서는 가산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성과평가 시 업체당 2.5점을 감점하는 등 불이익을 줘 금리인상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기관 경고와 함께 부당하게 얻은 이자를 기업에 돌려주라고 명하고 지난 3월5일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은행은 담보·보증이나 신용등급 변경 등 사유가 없는 한 여신약정금리를 변경할 수 없게 돼 있다. 만약 사유가 생기면 추가 약정을 맺어야 금리를 바꿀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계열사인 하나은행의 반응이다. 하나은행은 외환은행이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은 지 불과 하루 만에 소비자 권익보호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하나은행은 지난 3월20일 본점 부서장을 주축으로 '소비자권익보호협의체'를 신설하고 상품을 직접 가입한 고객까지 참여하는 '소비자조사참여단'을 운영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하나저축은행 역시 소비자권익 보호를 위해 자동화기기(CD·ATM) 출금 수수료를 면제하기로 했다.
 
외환은행이 고객 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시점이어서 외환은행과 일종의 선긋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외환은행의 악재가 하나금융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한 것 같다"면서 "그동안 외환은행 노조의 반대로 하나금융 임원들이 골머리를 앓았는데 검찰 수사로 인해 노조에서도 명분을 잃은 것 같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같은 계열사인데 검찰 조사 이후 마치 선긋기에 나선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비자 권익보호 강화는 2~3주전부터 기획된 내용"이라며 "외환은행 압수수색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용로 행장은 "최근 변동금리 대출의 가산금리와 관련해 외환은행이 감독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검찰의 조사가 진행되는 점 등에 대해 주주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과거 외국계 펀드 중심의 경영방식을 지우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새로운 은행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상장폐지 반대 궁색해진 외환은행 노조
 
이처럼 외환은행이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면서 외환은행 노조의 입지도 작아지고 있다. 그동안 고객과 소액주주들의 권리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하나금융 완전 자회사 편입 및 상장폐지 반대 투쟁을 벌였는데, 과거 고객 돈 횡령 사건이 드러나면서 명분이 궁색해졌다는 평가다.
 
외환은행 주주총회에서도 노조의 침울한 상황은 그대로 드러났다.
 
앞서 외환은행은 지난 3월15일 서울 을지로 본점에서 임시주총을 열고 하나금융의 완전 자회사 편입을 위해 외환은행 주식 5.28주와 하나금융 주식 1주를 교환하는 안건을 상정, 가결한 바 있다. 주총은 3시간여 동안 지속된 끝에 간신히 주식교환이 가결됐다. 그러자 일부 소액주주들과 노조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임원들의 퇴장을 가로막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외환은행 상장폐지는 소액주주를 기만하는 행위"라며 "사상 최악의 주총"이라고 힐난했다.
 
하지만 3월21일 열린 외환은행 정기주주총회에서는 노조원들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지난 주총과는 대조적이다. 주총은 30~40분 만에 끝났고 대부분의 안건이 큰 문제없이 통과됐다. 의사진행 도중 일부 소액주주가 배당금이 낮은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불만만 제기됐을 뿐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분했다.
 
김보헌 외환은행 노조 전문위원은 "외환은행의 검찰조사 등으로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상장폐지를 저지하는 투쟁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하나금융으로선 계속 내부갈등을 안고 은행을 꾸려 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경기침체와 저금리 기조 등으로 금융시장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두 은행의 시너지 확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환은행의 투쟁이 지속될수록 하나금융의 타격이 커질 것"이라며 "아마도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합병은 금융권에서 가장 좋지 않은 사례를 남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내부갈등을 불식시킬 수 있는 열쇠는 하나금융이 가지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양측이 만나 서로의 입장을 듣고 서로 양보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지금은 법적인 합병보다는 내부적인 통합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