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 박정호

"오죽하면 특정 재벌로는 처음으로 피해자모임이 출범하겠습니까?"

지난 6월25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앞. 롯데의 브랜드를 내걸고 일하는 수십여명의 상인들이 대형 현수막을 앞세우고 롯데그룹에 대한 전면 투쟁을 선포했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내건 모임의 이름은 '롯데재벌 피해자모임'. 세븐일레븐바이더웨이가맹점주협의회, 롯데월드임차상인비상대책위원회, 롯데재벌납품피해자모임 등이 한데 뭉친 단체다.


최근 '갑의 횡포'에 반기를 들며 개별 대기업에 대한 피해점주들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지만 계열사 점주들이 단합해 조직적인 시위를 전개하기는 롯데가 처음이다.

피해자모임은 "롯데 재벌이 곳곳에서 노동자, 중소상공인, 소비자들을 기만·탄압하고 피해를 주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며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등의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매출목표나 판촉을 강제하고 회사의 적자를 떠넘기는 것도 부족해 '을'들에게 일방적인 계약해지 횡포까지 부린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악덕' 롯데 재벌과의 전면적인 투쟁을 선포할 예정"이라며 "앞으로 롯데 재벌의 악행을 널리 알리고, 각계각층의 롯데피해자들과 연대해 협력할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바야흐로 '유통공룡' 롯데를 겨냥한 '을의 분노'가 시작된 셈이다.
 
◆롯데마트…입점업체에 일방적 철수 '통보'

기존 '을'의 집단행동에 비해 롯데피해자모임 측이 접근한 시위방식은 철저히 유통영역별로 구분져 이뤄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피해자모임은 롯데마트의 경우 입점업체인 ㈜미페의 피해사례를 집중 거론하고 나섰다. 커튼, 침구류 등을 생산하는 미페는 지난 1998년부터 롯데마트에 납품했는데 이 회사의 매출이 매년 늘어나자 롯데마트가 일방적으로 매출이 높은 매장을 골라 철수하도록 지시했다는 것.

2007년 철수한 목포점 및 서울역점만 해도 월 평균 매출이 1200만원에 이르는 매장이었지만 '매출 부진'을 내세워 강제 철수시켰고, 이후에도 롯데마트는 2007년 4개, 2008년에는 4개, 2009년 19개, 2010년 10개 등 미페 매장을 지속적으로 없앴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피해자모임에 따르면 미페는 롯데마트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매장마다 2명의 판촉사원을 파견받았는데 롯데 측은 이 판촉사원의 채용을 직접 담당한 것은 물론 면접, 업무지시 등 일체 사항을 관리하며 임금 등 비용부분만 미페에 부담시켰다. 심지어 매장의 강제철수 때는 판촉직원의 퇴직금까지 미페가 지급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롯데마트는 명절에 선물세트를 구입할 것을 미페에 강요한 것은 물론 매월 상품권 행사나 할인행사에 참여하게 해놓고 30% 내지 50%의 현저히 낮은 가격에 상품을 납품토록 부담시켰다.

판매수수료의 경우 롯데마트는 2002년 매출의 26%를 받아왔으나 이후 계속 인상해 2011년 35.5%의 수수료를 지급하게 했다는 게 피해자모임측 얘기다.
 
◆롯데월드 프리미엄 쇼핑몰…입점 상인에 '이중약속'
 
서울 잠실 롯데월드 내 '롯데월드 프리미엄 쇼핑몰'을 둘러싸고는 외국인 단체관광객을 주요고객으로 삼는 입점 상인들의 피해사례가 공개됐다.

상인 A씨는 지난해 2월 롯데측과 롯데월드 지하3층 마르쉐 매장을 영업장소로 사용키로 계약을 맺고 롯데월드에서 마르쉐 매장 철거공사를 해주기로 약속받았다. 그러나 막상 입점을 위해 인테리어 공사를 준비할 때까지도 철거가 이뤄지지 않아 A씨는 오픈에 차질을 빚었다.

이후 롯데월드의 신임대표가 입점 오픈을 독촉해 어쩔수 없이 3000만원가량의 자비를 털어 철거공사를 마무리했고 계속 오픈 압력이 이어지자 인테리어업체들에게 야간작업까지 강행, A씨는 막대한 손실을 입어가며 오픈을 준비했다.

그러나 롯데월드 새 대표가 이번엔 '정상 오픈'하라며 지금껏 해놓은 인테리어를 모두 철거하고 다시 인테리어를 하게 했고 진열제품 또한 철거공사 과정에서 먼지 등으로 인해 손상되는 등 1억5000만원가량의 손실을 보게 됐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4월10일 정식 오픈한 이후에도 롯데 측은 당초 약속한 영업을 지원해주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며 "고객들에게 롯데월드 자유이용권을 1만원 할인해주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해놓고선 지금은 1만원 할인액까지 내게 전가시켰다"고 토로했다.
 
◆편의점…세븐일레븐 후속대책 "내용없는 허울 "

가맹점주의 사망사건으로 최근 홍역을 치른 세븐일레븐과 관련해 피해자모임 측은 이 편의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의 '전국 500점포 무위약금 폐점'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사망사건 이후 코리아세븐이 내놓은 이 대책이 실제로는 무위약금이 아닌 매출이익 수수료만 면제해주는 정책으로, 시설위약금 및 각종장려금으로 지원받은 금액은 다 '토해'내야 되는 허울뿐인 정책이라며 맞서고 있다.

피해자모임 관계자는 "가맹점주들은 매출이익 수수료는 당연히 없애야 한다고 예전부터 주장해왔지만 공정위가 간접적으로 인정해주는 바람에 없어지지 않은 매출이익에 대한 위약금이 정당화됐던 것"이라며 "그것을 이제 가맹본부가 안받겠다고 발표하는 것인데 현재 저매출 점포 매출위약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위약금 중 20%도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편의점주들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책으로 롯데가 내놓은 '보험금 본사 부담' 역시 가맹점주협의회에서 준비하는 공정위 집단신고를 막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특히 점주들의 동의없이 롯데손해보험과 계약을 맺은 것에 대해 편의점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편의점주 B씨는 "5년 동안 사고 한번 나지 않은 점포의 보험료가 5년간 동결돼 재계약됐다"며 "전국 7200점포를 등에 업고도 더 나은 계약 한번 하지 못하고 항상 보험금은 똑같이 납부하고 있는 게 세븐일레븐 편의점주들이 처한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롯데, 어떤 대책 내놓을까

이 같은 상황에서도 '유통공룡' 롯데는 현재 별다른 움직임 없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밀어내기'(강제 매입)와 폭언 등 대리점에 대한 본사 영업직원들의 강압적 영업행위로 곤욕을 치른 남양유업의 김웅 대표는 대국민 사과를 통해 고개를 숙였다. 이어 밀어내기와 빚 독촉 압박에 시달린 대리점주의 자살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배상면주가 역시 배영호 대표가 직접 대리점주의 빈소를 찾아 사과했다.

재계순위 5위의 거대기업으로 '을'의 분노가 전이되는 현 상황에서 과연 롯데 경영진은 어떤 선택으로 '을'의 눈물을 잠재울지 시선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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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