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임대료 통제 법안이 시행된 후 1980년대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아파트 세를 구하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였다. 기존 세입자들은 임대료 인상 없이 거주할 수 있어 굳이 이사를 가지 않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모들은 자녀가 커서 독립했음에도 대형아파트에 그대로 눌러 앉았다. 이러다보니 새로 이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대형아파트 임대 매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파트 세를 구하려면 부동산중개업소를 찾기보다 신문 부고란을 확인하는 게 더 빠르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였다.

요즘 국내에서도 주택임대료를 통제하는 전월세 상한제 논란이 한창이다. 가령 지역에 관계없이 세입자에게 1회에 한해 계약 갱신 청구권을 주고 재계약할 때 5% 이상 임대료를 못 올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전월세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3배 웃도는 지역에만 이 제도를 제한적으로 실시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뉴욕처럼 주택임대료를 통제하면 기존 세입자는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장 전체로는 주택공급 축소, 품질 저하, 이중계약 성행 등 부작용을 낳게 된다.

이보다 심각한 것은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에 상한제를 도입했을 때다. 전세시장의 가장 큰 특성은 변동성이나 불안정성이다.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는 월세와는 대조적이다. 전세시장의 불안정성이 큰 것은 그 자체가 금융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전세는 임대수익 개념보다는 주거공간을 매개로 개인끼리 주고받는 사금융이나 대출(loan) 개념이다. 과거 집주인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던 시절,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은 일종의 은행 창구역할을 수행했다.


전세는 작은 수급의 불균형만으로도 가격이 출렁이는 특성을 안고 있다. 아파트 입주 단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입주 초기엔 전세물량이 쏟아지면서 전세가격이 반토막 수준까지 급락하다가 2~3년 정도 지나면 주변시세 수준으로 회복할 때가 많다.

이런 곳에서 전세가격을 5% 이상 못 올리게 하면 어찌 될까. 세입자는 주거비용을 시장가격 이하로 낮출 수 있어 즐거워하겠지만 집주인인 분양계약자로서는 괴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세는 개인과 개인 간 거래가 대부분이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전세 거주자는 약 377만가구다. 이 중 자기 집을 전세로 놓고 타지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가구가 22%(약 83만가구)다. 교육이나 직장 문제로 타지에서 전세로 살다가 2년 뒤 원래 살던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데 세입자가 계약 갱신 청구권을 행사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전월세 상한제는 극약처방인 만큼 단기적인 고통도 그만큼 크다. 현재 전세시장에서는 집주인이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주인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면 법 시행 이전에 자구책을 마련할 것이다. 전세가격을 한꺼번에 올리거나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 그 예다.

경제적 약자인 세입자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면 전월세 상한제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당위성에 급급해 인위적으로 민간부문을 통제할 경우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전월세 상한제는 시행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백보 양보해서 굳이 도입하려면 공공임대주택에서 먼저 시행해보자. 그 성과를 충분히 검토한 뒤 민간부문에도 도입할 지 심사숙고하는 편이 좋다고 본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