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국민적 공분을 샀던 ‘매교역 할머니’ 이야기. 쓰러져 가는 집에 지지대를 세워놓고 거주하던 81세 노인에게 나가 살라던 사건이 일어난 곳. 주민 편의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추진한 오리~수원 간 복선전철 매교역 출입구 공사는 지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돌아왔다. 부도난 시공사 선정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부실공사로 인한 지반침체와 주택붕괴, 그리고 지역경제 파괴라는 병폐를 낳고 있다. 지역민들은 매교역 주변을 걸을 때면 행여 넘어질까 땅바닥을 보며 다녀야 하고, 인근 자영업자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취재 결과 매교역 공사는 첫삽부터가 잘못 뜬 것이었다. 매교역 부실공사의 문제점과 그것이 불러온 지역 및 주민 피해 현장을 <머니위크>가 낱낱이 짚어봤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부실 삽질'에 무너진 자영업자의 삶
②지역경제 죽인 매교역 공사
③부실공사가 남긴 지반침체, 쓰러지는 매교역 주변
지난해 11월30일. 사업 발표(2000년도) 이후 14년 만에 분당선 연장선인 오리-수원 간 복선전철이 개통된 이날. 매교역 지역주민들은 개통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아직까지 지하철역 주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데다 부실공사 등으로 인한 불편과 불안이 떠나질 않고 있어서다.
지난 15일. 다시 찾은 매교역 주변은 부실시공이 의심되는 지반침체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역사 주변의 주택 담벼락들은 금이 가고 지반과 떨어져 공간이 생기는 등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인도와 도로에도 공사 전에는 없었던 균열이 보였다.
특히 한 식당 앞 주차장은 역사 쪽을 향해 땅이 내려앉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곳의 한 주민은 “처음에는 이렇게 심하지 않았다”며 “공사가 진행될수록 역사를 향해 땅이 더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지반침체 현상은 배수에서도 발견됐다. 역 인근의 한 상가는 비가 올 때마다 지하실이 침수되는 현상을 겪고 있다. 이 상가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한 임차인은 “전에는 이런 일(지하실 침수)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지하철역 공사가 진행된 후부터는 비만 오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며 “지난해 시공사가 급하게 보수를 했지만 올해 비가 오면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고 설명했다.
매교역 주변을 둘러본 건설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공사가 이뤄진 지하철 구간과 역사를 향해 담이나 건물이 쏠리며, 땅이 꺼지는 등의 현상은 지반을 견고히 하는 '흙다짐'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빗물이 스며들면서 침하 현상이 일어나고 지하실에 물이 찬 것 또한 '흙다짐' 공사가 제대로 안 된 대표적 사례”라며 "'부실 날림공사’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하루 빨리 보완책을 세우지 않으면 지반 침하로 인해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매교역의 부실시공 의혹은 공사에 참여했던 인부 김우진(51·가명)씨의 증언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김씨는 “이곳에서 지난 2008년 26번 환기구 건설 당시 흙이 무너져 인부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며 “당시 인부들 사이에서 공기(공사기간)를 단축하기 위해 흙다짐 공사를 날림으로 해서 이같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붕괴사고로 인해 2달이 넘도록 공사가 중단됐고, 시공사 법정관리 등의 문제로 인해 제대로 된 공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처럼 매교역 인근 주민들은 부실공사 흔적과 의혹이 행여 대형사고로 이어질까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관련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개통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마무리 공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이곳 매교역은 시공사인 동양건설산업의 법정관리로 인해 마무리 작업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측이 동양건설산업을 대신해 마무리 공사를 할 다른 건설사를 찾고 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신용보증사를 앞세워 벌써 3번째 입찰에 붙였지만 건설사들이 참여하기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시설공단과 신용보증사로부터 입찰 참여 제안을 받은 한 건설사 관계자는 “현장 검증을 통해 알아본 결과 매교역은 부실공사가 의심되고 기존 공사대금 미지급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공사에 참여하기가 어렵다"며 "공사금액을 떠나 이곳을 맡을 건설사는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매교역 후속 공사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리-수원 간 복선전철 완공은 또 늦춰질 전망이다. 그동안 공사기간을 몇년씩 늘려 온 것도 모자라 개통한 후에도 완공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정부기관인 국토교통부와 철도시설공단 측은 계속해서 ‘연장’만 외치고 있다.
지난 2000년 당시 건설교통부는 ‘수도권 남부 교통개선책’의 일환으로 오리-수원 간 복선전철 건설사업을 추진했다. 국비 75%, 지자체 25% 부담으로 총 1조4000억원이라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기로 한 정부는 2001년 실시설계에 돌입했다. 2002년 오리-죽전 간 노반공사 착공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했다. 완공 목표는 2008년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인해 완공은 2008년에서 2013년으로 미뤄졌고, 아직까지도 완공은커녕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오리-수원 간 복선전철사업은 최악의 국책사업으로 남을 것”이라며 “국토부와 발주처인 철도시설공단의 탁상행정과 안일한 사업집행이 낳은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무책임한 국책사업으로 인해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 것도 모자라 시민들에게 물리적·금전적 피해까지 끼치는 정부와 정부기관의 처사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개탄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