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신인 아이돌그룹, 신인배우, 연극인, 음악인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 중에서 끼와 재능을 두루 갖췄지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만나 소개하는 일명, 스타의 잠재적 능력을 가진 이들을 발굴하는 ‘스타포텐’을 기획했다. (포텐은 potential의 줄임말로 잠재력, 가능성이라는 뜻을 지닌다.)



“엉덩이 비비고~ 어깨를 비비고~ 멋진 밤을 모두 함께 부벼부벼!” 인기가요 무대를 휩쓸며 10대 팬들을 이끌었던 한 걸그룹 멤버가 다름 아닌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깜짝 등장했다.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인생을 우려내는 듯한 바이브레이션은 중년 팬들의 갈증을 해소하고, 어르신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지난 2000년 상큼발랄한 매력을 어필했던 5인조 걸그룹 파파야의 리더 조혜경이 트로트 가수 ‘조은새’로 컴백하며 복고풍의 세미 트로트 ‘비비고’로 다시금 무대에 섰다. 당시 파파야는 2년여의 짧은 활동 기간 중 ‘내 얘길 들어봐’, ‘사랑만들기’ 등의 히트곡을 남기고 무대에서 돌연 사라졌다. 그 후 13년간 무대 아래에서 제2의 가수인생을 준비하며, 한껏 성숙해져 돌아온 ‘트로트의 여인’ 조은새를 만났다.



#포텐 1. ‘걸그룹’ 소녀에서 ‘트로트의 여인’으로


상큼했던 소녀가 농익은 여인으로 돌아왔다. 한결 성숙해진 조은새는 인사말부터 남달랐다



“안녕하세요. 비비는 여자 조은새입니다~ 나쁜새 아니고 조은새예요~(호호)”



지난 8월 24일 KBS1 ‘전국노래자랑’에서 타이틀곡 ‘비비고’를 열창한 조은새는 침체된 성인가요 시장을 부흥시키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비비고’는 세미 트로트를 기반으로 유로댄스와 디스코가 혼합된 곡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공감할만한 가사를 넣기 위해 조은새가 직접 작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비비고’는 돈의 쓴맛, 사랑의 쓴맛을 비벼서 소화하고, 좋은 기운은 비벼서 나눠드린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비비고’를 잘 부르는 방법은 그냥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지친 일상을 날려버리듯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시면 되요. 복고 댄스 장르여서 몸을 가볍게 노래에 맡기셔도 좋겠죠?”



몸에 ‘흥’이 가득했다. 아니 ‘끼’가 넘쳤다. 인터뷰 도중 흔들흔들 댄스 시범을 보이는 조은새. 그녀에게 ‘뽕필’이란.



“스무살부터였나... 파파야 멤버들이 가끔 ‘언니, 뽕 필(feel) 좀 빼자’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예전에 SBS ‘도전1000곡’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탈락했는데도 PD님이 특별히 ‘동백아가씨’를 혼자 불러보라 하셨었어요. 그때부터 아마 뽕필이 드러났나 봐요.(하하)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며 ‘동백아가씨’를 자주 흥얼거리셨거든요. 그래서 제게는 트로트가 친숙했고 특히 이 노래가 제일 좋았어요.”



걸그룹 시절 조은새는 ‘동백아가씨’를 통해 자신의 뽕필을 새삼 확인했다. ‘동백아가씨’는 1964년 가수 이미자가 부른 대한민국의 대표 트로트 곡으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오랫동안 금지곡으로 지정된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13년 간 자취를 감춘 ‘트로트 아가씨’ 조은새에게는 어떠한 사연이 있었던 걸까.



“13년 만의 무대라... 저는 한 시도 음악을 그만둔 적이 없어요. 그럴 수도 없고요. 저는 노래를 하지 않으면 몸이 아파요.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기도 하고 몸살과 비슷한 증상이 일어나요. 한의원에서는 ‘매핵기 증상’이라고 하던데... 노래만 부르면 통증이 사라지더라고요. 운명인가?(하하)”



조은새는 그간 친이모가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에서 틈나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 무대의 크기가 작아지고 관객수가 줄었지만, 그녀는 관객들과 소통했고 농염해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있었다.



“장윤정 씨가 ‘어머나’로 인기를 누리기 전에 제게도 세미트로트 앨범 제의가 왔었어요. 거부했죠. ‘내가 트로트 가수라니... 내 나이가 어때서? 무슨 트로트 가수야?’라고만 생각했고, 섹시가수 이미지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라이브 카페의 작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저는 제 인생에 ‘한 방’이 올 줄 알았거든요.”



#포텐 2. “새는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 방’은 없었다. 파파야 활동 이후 트로트 음반에 대한 제의가 있었지만 조은새는 거부했고, 또 다른 꿈을 꿨다. 과거를 추억하며, 미래를 꿈꿨다.



“안재욱 씨와 고 이은주 씨 주연의 영화 ‘하늘정원’에 출연한 적 있어요. 연기자로서 첫 데뷔작이었는데 잘 안 됐죠. 또 영화 제의가 들어왔어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연출진과 함께 찍는 대작이라며... 이름도 안 잊혀요. ‘다이고르야 고마워’라는 영화라고 했죠. 여주인공이었고 그렇게 제게도 기회가 오는 줄 알았는데 감독이 돈을 요구했어요. 긴가민가하면서도 투자를 했는데 얼마 후에 바로 갚더라고요. 믿을만한 사람이구나 싶어 제 꿈은 더욱 부풀었죠. 그런데 투자금을 또 요구했고, 결국 제 1000만 원과 화려했던 꿈은 사라졌어요. 정말 그 때는 이 바닥이 너무 싫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기도, 배신도 많이 당했네요. 아마 제 욕심이 판단을 흐렸던 것 같아요.”



날개를 펴기도 전에 땅에 떨어진 듯 풀이 죽은 조은새에게 지금의 소속사 김대식 대표가 찾아왔다. 세상에 찌든 그녀에게 맑게 지저귀는 새처럼 ‘조은새’가 되라 했다. 그렇게 30대를 넘어서자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대표님이 해주신 말씀인데 너무 좋은 말인 것 같아서 이번 앨범에 쓰기도 했어요. ‘새는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이었는데, 지금 제 기분이 그래요. 새가 자신의 날개를 믿듯 제 자신을 믿어보려고요. 인생은 한 방이 아디더라고요. 마음을 내려놓고 생각을 비우니 자신감이 채워졌어요.”



13년 만의 TV출연에 그녀의 어머니는 울컥했다. 파파야 시절 TV에서 노래를 부르는 딸의 모습을 보며 가장 행복해 했다는 어머니는 늘 “남들은 무슨 맛으로 살까?”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었다. 이제 또 다시 딸을 자랑하는 데 여념이 없는 어머니의 모습에 조은새는 힘이 난다.



“파파야 출신 조은새, 원조 걸그룹 출신 트로트 가수. 이러한 타이틀은 ‘파파야’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저를 알아봐 주시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이니까요. 제게는 너무 좋은 기억이죠. 경험이 있어서 한결 여유로운 것도 사실이고요. 예전에 SBS ‘강심장’에서 파파야 멤버 고나은이 저를 찾더라고요. 사람 있는 곳에 늘 제가 있을 정도로 대인관계가 활발했었는데 파파야 이후 갑자기 연락을 끊어서 많이 놀랐나 봐요. 그런데도 절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더라고요. 이제 연락해야죠!”



#포텐 3. 인생은 ‘한 방’이 아니라 ‘한 번’


인터뷰 내내 뽕짝, 완뽕, 뽕필... 연이어 ‘뽕’ 세례가 이어졌다. 그녀 특유의 비음은 노래를 하듯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휘두르듯 유려하고 절도 있는 제스처가 몸에 배어있는 듯했다. 조은새의 소속사 대표는 장윤정의 ‘짠짜라’처럼 정통 트로트 ‘완뽕’을 요구했지만, 그녀는 젊은 층에게 힘을 주고 싶어 통통 튀는 세미 트로트 장르를 택했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정말 산전수전 고생도 해보고, 마음도 다쳐보고, 몸도 아파보니 신나는 곡을 하고 싶었어요. ‘비비고’는 제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게 듣는 사람도 와 닿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후에 제가 나이가 들어 감정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 때 더 폭넓은 트로트 음악을 들려드릴 거예요.”



요새 조은새는 바쁘다. 한산모시축제와 같은 지방 공연을 다니며 이색적인 라이브 무대를 펼치고 있다. 전자 바이올린 등의 다양한 악기와의 콜라보레이션은 늘 반응이 좋다. 현재는 중국 악기 어후(Erhu)의 선율을 바탕으로 한 정통 트로트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조은새는 최근 개그맨 허경환과 ‘비비고’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콘셉트로 제작된 뮤직비디오에서 조은새는 춘리, 허경환은 이소룡 복장을 입고 등장해 코믹한 기싸움을 벌였다. 뮤직비디오에 그녀의 파이팅 넘치는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았다.



“긍정적이려고 해요. 쉬면서 살이 좀 붙었었는데 음반 준비하면서 쭉쭉 빠지더라고요. 이러다 체력까지 떨어질까봐 틈틈이 강아지 콩새와 설이랑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있어요. 이미자 선배님, 나훈아 선배님처럼 파워 있는 무대 장악력을 갖추려면 아직 멀었죠.”



그녀는 이미자, 나훈아에 이어 ‘일본의 이미자’라 불리는 엔카 가수 미소라 히바리를 롤모델로 꼽았다. 여유 있으면서도 카리스마 있고 목소리에서 강렬한 기가 느껴지는 미소라 히바리의 무대 영상 보기는 취미이자 공부다.



조은새는 로또 복권에 당첨돼도 또 다시 행복을 꿈꾸게 될 것이라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바로 지금이 ‘행복’이라고 정의했다. 목소리 상태가 좋지 않아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을 때, 라이브 무대가 성치 않을 때 화가 나고 불안하다는 조은새. 그녀에게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은 모두 ‘트로트’로 맛깔나게 비벼졌다.



이 여자 ‘조은새’의 스타포텐은 ‘희로애락’ 이다.



▶장소협찬 : 서울 강남구 논현동 118-20 1층 핸드드립 전문 카페 ‘핸디엄’ 논현점


<사진=젤리몬즈 스튜디오(jelliemonzstudio.com),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