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곳 독일, 으뜸은 '죽력고'… 획일적 술문화 바꿀 때
 
"술은 가장 사치스러운 음식이다." 지난 9월30일 서울 한남동 한 카페에서 <머니위크>와 인터뷰를 가진 탁재형 프로듀서(PD)는 술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탁 PD는 술에 관한한 재야의 고수다. 여행을 다니면서 각 나라의 술을 접했기 때문.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주에도 관심이 많아 국내의 수많은 술도 섭렵했다.

술을 최고의 사치품이라고 생각하는 탁 PD는 술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소위 '등 따뜻하고 배가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술을 '음식문화의 최정점'이라고 표현한 그는 "각 지역별로 많이 나는 곡식 혹은 과일에 따라 발전하는 술이 다르다"며 "과일이 많이 나는 곳에서는 과일주가, 곡식이 많이 나는 곳에서는 곡주가 발달한다"고 설명했다. 포도의 질이 좋은 프랑스 지역은 와인이 유명하고 쌀 등 곡식이 많은 한국은 곡주가 발달했다는 논리다.


전세계 갖가지 술을 다 마셔봤을 탁 PD에게 기억에 남는 술과 지역에 대해 물었다. 난생 처음 들어본 술과 지역을 꼽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누구나 아는 '맥주의 나라' 독일을 선택했다.

"개인적으로 맥주를 좋아하는 편인데 독일이 가장 기억에 남더라고요. 한국인은 흔히 '맥주는 더울 때 마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독일인은 항상 식사와 맥주를 곁들이는 모습이 참 좋았어요. 한겨울에도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맥주를 마시는 그런 모습이요."

 
/사진=류승희 기자

◆"관심 가지면 좋은 술 즐길 수 있어"


술에 관한 지식이 남다른 탁 PD는 일반 애주가와는 달리 좋은 술을 효과적으로 즐긴다. 탁 PD는 일반 애주가들도 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좋은 술을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테킬라라고 하면 '호세 쿠엘보'만 생각하지만 그 종류가 상당하다"고 그는 말문을 연다.

탁 PD에 따르면 테킬라는 최소 4등급 이상으로 나뉜다. 먼저 블랑코(Blanco)는 숙성시키지 않은 무색의 테킬라다. 테킬라의 원액인 셈. 또한 호벤(Joven)은 화이트 데킬라에 숙성된 데킬라를 혼합한 것이다. 다음 등급은 블랑코를 오래 숙성시킨 레포사도(Reposado), 아네호(Anejo)가 있다. 아네호는 테킬라를 오크통에서 1년 이상 숙성시킨 것으로 레포사도보다 색이 좀 더 진하고 오크나무향이 강한 특징을 갖고 있다.

"낮은 레벨(등급)의 어중간한 테킬라가 입에 맞지 않는다면 투명한 테킬라를 권하고 싶네요. 면세점 등에서 7만~8만원에 구입할 수 있으며 서울 남대문에 가면 최고급 수준의 테킬라를 10만원에 살 수 있어요."

탁 PD는 "테킬라만 해도 이렇게 종류가 많은데 맥주나 위스키를 이야기한다면 하루가 부족하다"며 웃어보였다.

◆녹두장군 일으켜 세운 '죽력고'

사실 한민족처럼 술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다. 탁 PD에게 국내 최고술을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단언컨대 죽력고"라고 답했다. 죽력고는 전라도 지방의 전통주이자 조선시대 3대 명주로 꼽히는 술이다.

"일설에 의하면 녹두장군 전봉준 선생이 왜경에게 잡혀 서울로 압송될 때 모진 고문으로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때 전 장군이 죽력고를 마시고 몸을 추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탁 PD에 따르면 국내 죽력고 장인 송명섭 선생은 죽력고를 만드는 과정을 '재고 내린다'고 표현한다. 내 자녀가 먹을 한약을 다리는 것처럼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는 의미다. '재고 내린다'는 표현처럼 죽력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쪼개 항아리에 넣고 열을 가하는 그 과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술이 아니라 약으로 불러도 무방할 죽력고는 어떻게 마셔야 할까. 송명섭 선생의 표현을 빌려보자. 탁 PD가 지난해 써낸 <스피릿 로드>에서 송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쪼록 이것을 드시는 분들도 만드는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았으면 좋겄소. 감기약을 먹어보니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다고 사흘치를 한꺼번에 먹어 불면 그 사람은 어찌되겄소? 마찬가지로 이 술은 드시고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안해지시라고 만든 것인데, 그것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드시고 괴로워불면 내 마음이 어떻겄냔 말이오."

◆80여년 만의 제조허가, 우리가 생각할 것은?

탁 PD는 국내 술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점으로 '획일화'를 꼽았다. 그 예로 '세븐브로이'를 들었다. 세븐브로이는 지난 2011년 10월 맥주제조 허가를 받은 수제맥주기업이다. 세븐브로이의 맥주제조 허가는 지난 1933년 당시 조선맥주(하이트진로), 동양맥주(오비맥주) 이후 77년 만이다. 일제강점기가 아닌 대한민국이 최초로 내준 맥주 면허인 셈.

"세븐브로이가 탄생하기 이전 77년간 한국인은 두가지 맥주만 마셨던 겁니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죠. 대한민국의 술문화와 산업이 발전하려면 다양성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탁 PD가 추천하는 술

◈ 브라질 '아구아르디엔떼'(Aguardiente)
브라질 바랑키야 카니발을 대표하는 술. '불타는 물'이라는 뜻. 사탕수수즙을 발효시킨 것을 증류해 제조. 브라질 바랑키야 카니발 기간에는 거리 곳곳에서 이 술을 손에 든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스코틀랜드 '글렌리벳 15년산'(Glenlivet 15years old)
싱글몰트 스카치 위스키의 대표. 오렌지 껍질과 자몽 향, 바닐라 크림 등의 맛이 난다.

◈중국 '바이지우'(Bai-jiu)
위스키, 코냑과 함께 세계 3대 증류주. 빼갈은 바이지우의 한 종류다. 농작물을 누룩이나 당화 발표제로 증류해 제조. 도수는 30도 이상이며 매우 자극적이다.

☞ 탁재형 PD는 누구?
지난 2002년 'KBS 월드넷'을 시작으로 <도전! 지구탐험대>, <세계테마기행>, EBS <다큐프라임-안데스> 등 해외 관련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다. 지난해에는 "세상은 넓고 맛난 술은 많다"는 내용을 담은 책 <스피릿 로드>를 출간. 책 제목의 스피릿(Spirit)은 정신, 영혼이라는 뜻도 있지만 증류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