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중은행들이 너도나도 해외진출에 나서고 있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금융시장에선 수익창출이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외에 진출한 시중은행들은 그곳에서 현지화를 잘 이루고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떤 개선책이 필요할까. 또한 글로벌금융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동아시아 글로벌투자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시중은행 관계자들을 만나 금융한류가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전략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신한 베트남은행 에서 현지 고객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머니위크DB
◆현지와 맞지 않는 정보시스템… 고객신뢰도는 저 멀리
국내은행의 베트남 진출현황을 보면 일단 성공적이다. 국내 시중은행 대부분이 현지에 진출했고 각각 사무소와 지점, 현지법인 형태로 기업 대출영업에 적극적이다.
실적도 긍정적이다. 연체비율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고 순수익은 매년 수백억원대에 달한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진정한 글로벌은행이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여서다.
"시중은행들이여, 베트남시장을 공략하라. 단 한국기업만…."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은행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같은 결론이 나온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과제는 두말할 것도 없이 현지화를 이루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 은행의 고객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에 국한돼 있다.
B은행 호찌민지점 관계자는 "디테일영업은 신용을 파는 일이다. 따라서 현지인들의 마음을 잡아야 성공할 수 있다"며 "현지인들과 함께 소통하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은행들을 보면 자사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것 같아 아쉽다"며 "우리나라 국민들도 한국에 진출한 SC은행, 씨티은행, HSBC 한국지점 등 외국계 은행에 대해 이익만 취하고 사회공헌에는 너무 인색한 것 아니냐고 비판하지 않나. 베트남 국민들도 마찬가지로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은행들이 한국기업 영업에만 주력함에 따라 이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나왔다. C은행 하노이지점 관계자는 "삼성과 LG, CJ, 롯데 등 베트남에 진출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다 보니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며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로컬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사무소나 지점형태로 진출한 까닭도 있지만 현지화 정착을 위한 준비가 안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했다.
베트남 하노이 우리은행 지점. /사진=머니위크DB
◆'탁상공론' 한국 금융당국이 문제… 대출규제도 완화해야
이렇게 된 데는 탁상공론에만 의지하는 한국 금융당국과 베트남 현지기업의 대출을 승인해주는 국내은행 본점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D은행 하노이지점 관계자는 "우리가 기업대출 영업을 해오면 한국 내 금융당국과 은행 본점(혹은 금융지주)에서 우리가 보낸 서류만 보고 대출 승인여부를 결정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며 "현지에서 직접 영업을 한 은행지점에게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설사 대출을 해준 기업이 부실해지더라도 해당지점에 책임을 묻기보단 왜 부실이 났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지 등을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현실에 맞지 않는 대출규제도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A+인 반면 베트남은 B1 수준"이라며 "본점에서 로컬기업의 대출을 승인할 때 각 국가별 신용등급에 맞춰 우량기업을 솎아낼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한데 신용등급이 높은 국가와 낮은 국가의 기업 대출심사기준이 똑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결국 우리나라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국가의 기업에는 아예 대출을 해주지 말라는 것"이라고 불편한 마음을 전했다.
◆연체비율 '제로' 은행 신뢰도 '제로'
베트남 진출은행의 연체비율을 한번 따져보자. 실제로 대부분의 은행들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나마 현지영업을 하고 있는 신한베트남은행이 다른 은행에 비해 조금 높은 수준이다.
언뜻 보면 영업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지 책임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한결같이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씁쓸해했다. 그만큼 현지화에 안착하지 못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E은행 호찌민지점 관계자는 "은행이 안정적인 곳에만 대출을 해준다면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다"며 "리스크가 다소 높더라도 기술력이 좋고 미래발전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게는 자금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베트남에 진출한 것은 한국의 선진금융을 전파하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토대를 닦아주기 위한 것"이라며 "단기적인 시각으로 보지 말고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장기적 접근이 필요한 때"라고 역설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