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Who is that can tell me who I am?). 이 문장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King Lear)의 1막 4장에 나온다. 소설가 이인화씨는 본인의 첫 소설 제목으로 이 문구를 사용하기도 했고, 정신분석학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글이다.

르네상스시대(1500~1650) 영문학에는 프란시스 베이컨이나 토머스 모어 등의 산문작가들이 있지만 윌리엄 셰익스피어만큼 영어의 발달과 서구문학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작가는 없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쾌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셰익스피어로 추정되는 인물은 80여명에 이르며, 최근에는 셰익스피어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연인이었던 옥스퍼드 백작 에드워드 드 비어였다는 내용의 <위대한 비밀>(Anonymous)이라는 영화까지 등장할 정도로 영문학의 대가에 대한 궁금증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 국내증시의 실체, 삼성전자와 관련

최근 국내증시에 대한 개인들의 문의가 많아졌다. 지수 자체도 박스권에 갇혀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대형주든 개별종목이든 오를 때는 가만히 있다가 지수가 하락할 때는 같이 하락하는 패턴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증시에 대한 관심은 높은데 그 원인에 대해서는 다들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필자는 이런 배경에 삼성전자의 부진이 상당부분 관련돼 있다고 본다. 시가총액이 6월 초 고점인 216조원 대비 50조원 가까이 하락해 지수에서 삼성전자 시총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를 밑돌았다. 이는 지난 2012년 2월15일 14.79%를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지수의 움직임에서 15% 가까이 삼성전자의 주가 흐름이 영향을 주고 있고, 코스닥의 경우 삼성전자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IT부품주의 수가 절반이 넘는다. 이러다 보니 삼성전자의 주가부진은 당분간 다른 주도업종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지수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이제 삼성전자의 시대는 끝난 것인가'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의 모바일부문에 대한 위기를 언급하면서 경쟁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빨 빠진 호랑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삼성전자에 대해 실제로 잘 이해하고 있는 투자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애플의 제품포트폴리오를 물어보면 누구나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을 바로 말할 것이다. 실제로 애플의 제품포트폴리오는 이 3개가 90%에 육박한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모바일 디스플레이, 태블릿, 스마트폰, 가전제품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 중에서 반도체부문의 가치만 놓고 봐도 현재의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60~70%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메모리 전부문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아몰레드(AMOLED) 시장점유율 1위(99%), 미국 가전시장에서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기업, 애플 아이패드의 시장점유율을 유일하게 빼앗아 오는 기업, 인터브랜드 선정 글로벌브랜드 8위, 스마트폰 및 TV부문 인지도 글로벌 1위 기업이 삼성전자다.

이런 삼성전자가 모바일부문 부진으론 인한 실적악화로 15년이래 가장 낮은 장부가치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15년 전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생산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주가하락은 시장의 우려가 상당부분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BNP파리바는 내년도 삼성전자의 모바일부문 영업이익이 '0원'이 된다 하더라도 ROE(자기자본이익률)는 7.1%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골드만삭스도 "밸류에이션이 역사적 하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새로운 이익성장이 기대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언론은 '삼성전자 비중이 적은 펀드'의 선견지명에 대해 칭찬하고,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보수적 투자자나 우량주 투자자에게 최고의 주식 중 하나였던 삼성전자는 이제 개인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주식으로 변해버렸다.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 전망치를 급격히 낮추는 것은 물론 4분기 실적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 역발상 투자자라면 매수 타이밍 될 수도

하지만 ‘역발상 투자자’(Contrarian Investor)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우려가 모여서 어느 시점에는 좋은 매수 타이밍이 될 수 있다. 아직 삼성이 가지고 있는 카드는 꽤 남아 있다. 표면적으로는 ▲막대한 보유현금을 활용한 대규모 자사주매입 ▲기업구조조정 ▲고배당 정책 등이 그것으로, 애플과 소니의 사례에서 보듯 이런 주주친화적 정책들이 주가에 강한 촉매역할을 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삼성일가의 3세대 경영에 대해서도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페이스북의 올해 예상매출은 11조9000억원, FCF(자유현금흐름)는 3조1000억원이지만 기업가치는 159조원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올해 예상매출이 230조원에 육박하고 자유현금흐름은 24조원에 달한다. 페이스북보다 현금흐름을 창출해내는 수익성이 8배나 높음에도 기업가치는 페이스북에 못 미친다. 물론 두 기업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주가=기업실적의 함수'라는 주식투자의 기본전제를 감안한다면 그 차이가 반영될 것으로 판단한다.

당분간 삼성전자에게는 어려운 시간이 이어지겠지만 4분기 이후 삼성전자의 주가흐름에는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 자체의 투자기회도 있을 것이고 지수의 향후 흐름에 대한 방향성을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어떻게 될 것인지 말할 수 있는 투자자는 <리어왕>의 무리들이 아닌 스마트머니가 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