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현재 책임공방을 두고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만약 부당대출 등 은행 실무자와 책임자의 잘못이 드러나면 은행 직원은 물론 박 행장 역시 제재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 씨티그룹이 한국의 소비자금융부문을 매각하겠다는 뜻을 밝혀 소매금융 철수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에 대해 박 행장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180억원 부실대출 책임자가 행장 선임?
지난 10월27일 박진회 행장이 새 수장으로 선임될 때 가장 반대했던 곳은 씨티은행 노조다. 박 행장과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의 돈독한(?) 관계도 있지만 수장으로서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대표적인 예가 디지텍시스템스 사태다. 씨티은행은 올 2월 디지텍시스템스가 매출채권 등을 일부 위조해 1700만달러(180억원 규모)의 허위대출을 받았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내용은 삼성전자 납품업체인 디지텍시스템스가 납품과정에서 씨티은행에 매출채권을 양도하고, 대출을 받을 땐 선적서 등 관련서류를 위조했다는 혐의다.
씨티은행은 이 업체로부터 원리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자 삼성전자 중국 현지법인과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서류위조 등 대출사기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디지텍시스템스의 대출을 승인한 총책임자가 박 행장이다. 허위대출 논란이 불거질 당시 박 행장은 기업금융그룹장을 역임해 사실상 기업금융의 책임자였다.
디지텍시스템스에 대출해준 은행은 씨티은행 외에도 산업·국민·수출입·하나·농협은행 등 국내은행 5곳이며 총 1000억원대의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실대출 핵심에 있는 책임자가 행장에 오른 사례는 씨티은행이 처음이다.
씨티은행의 한 관계자는 "박 행장은 삼성 납품업체라는 외형만 믿고 180억원의 거액을 승인해 준 장본인"이라며 "그런데도 제재는커녕 은행 수장에 선임돼 의아스러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씨티은행 측은 아직 재판이 진행중이어서 임직원들의 책임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씨티은행 커뮤니케이션부(대외협력부) 관계자는 "현재 1심이 진행 중이어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힘들다"며 "결과가 나오면 내부규정에 따라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재대상에 박 행장도 포함이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행장과 관련해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규정에 따르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사진제공=씨티은행
◆부담 안고 올라선 CEO… 그가 내민 위기타결 카드는?
박 행장은 취임 이후 노조와 협상을 통해 당장의 급한 불은 끈 상태다. 출근저지에 나섰던 노조는 박 행장과 면담한 이후 행장 선임 반대 입장을 전면 철회했다. 양쪽 간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사측도 노조도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다만 박 행장이 취임식 당시 첫 문장으로 "항간에 떠도는 구조조정에 대한 것은 헛소문"이라고 운을 뗀 만큼 추가 구조조정에 대한 합의가 오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앞서 씨티은행은 올 상반기 지점 30%와 직원 15%를 축소한 바 있다.
그의 앞에 놓인 과제는 말그대로 산더미다. 우선 실적회복이 급선무다. 씨티은행은 지난 2분기 81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물론 이는 대규모 희망퇴직에 따른 퇴직금 지급분이 반영된 영향이 크지만 핵심 수익성지표인 총자산순이익률(ROA)이나 자기자본순이익률(ROE)도 시중은행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한 초저금리시대를 맞아 새로운 먹거리도 제시해야 한다. 씨티은행은 향후 3년간 점포폐쇄와 구조조정을 하지 않기로 노사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실적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자의든, 타의든 한국 철수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모든 금융사가 위기에 놓였지만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인지는 순전히 박 행장 몫으로 남은 셈이다.
이에 대해 그는 "과도한 시장유동성과 낮은 시장금리로 인해 은행 수익이 저하됐다"며 "직간접 규제 및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은행의 자산수익률과 위험자본이익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고 현재의 경영여건을 진단했다. 박 행장은 이어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고민과 노력을 하겠다"며 "임직원 여러분도 한마음으로 이와 같은 고민과 노력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영업력 극복으로 주주들에게 꾸준한 배당도 약속했다. 박 행장은 "신흥시장처럼 높지 않더라도 꾸준히 수익률로 보답할 수 있는 영업력을 갖추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박 행장은 2인자의 이미지에서 탈피해야 한다. 수십년간 수석부행장을 맡아온 그는 2인자의 색이 그 누구보다 짙다. 일각에선 떠난 하 전 행장이 경영 밑그림을 그리고 박 행장이 그의 지시에 따라 색만 칠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하영구 전 행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박진회 행장의 밑그림 경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 행장과 하 전 행장은 각각 전남 강진, 전남 광양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 선후배 사이다. 14년 만에 씨티은행장이 교체됐는데 하 전 행장이 자신의 라인을 행장으로 앉히고 물러났다는 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씨티은행 노조 한 관계자는 "그에 대한 평가는 내부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며 "융통성이 없고 리더십 부족 등이 단점으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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