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오너 3세의 초고속 승진으로 후계 경영 윤곽이 잡히는 듯했다. 적어도 지난 11월까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세자녀는 한진그룹 주력회사인 대한항공 울타리에서 경쟁하며 그룹 주요 회사의 경영을 맡고 후계수업을 해왔다. 그러나 조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파문으로 한진그룹의 후계구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급기야 이 사건으로 인한 파장은 한진그룹의 족벌경영과 경영세습 논란으로 번졌다. 장남인 조원태 대항항공 부사장과 차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에게까지 불똥이 튀면서 한진가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사진=뉴시스 조종원 기자

◆급제동 걸린 오너 3세 후계작업
한진그룹은 지난해 12월24일 연말인사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지주회사인 한진칼 대표이사를 겸직하게 했다.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장을 맡은 그는 지난해 초 승진했고 같은 해 7월부터 화물사업본부장을 겸임하고 있다. 여기에 지주사까지 맡게 되면서 경영활동 폭이 넓어졌다. 조 부사장은 지난 2003년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에 입사한 뒤 이듬해 대한항공으로 옮겨 지난 2006년 상무보, 2009년 전무로 승진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도 지난해 연말인사에서 1년 만에 초고속 승진하며 3세 경영의 자리에 안착했다. 그는 지난 2005년 LG애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2007년 3월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과장으로 입사해 2010년 상무보로 올라섰다.

앞서 대한항공 기내서비스 및 호텔사업부문을 총괄했던 조현아 전 부사장 역시 지난해 연말인사에서 조원태 부사장과 함께 승진했다. 그는 지난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부로 입사한 뒤 2005년 상무보, 2009년 전무직에 올랐다.

당시 이 같은 한진그룹 오너 3세의 초고속 승진에 대해 재계는 그룹 후계 경영을 염두에 둔 결정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이후 한진그룹 후계구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땅콩 회항 사건은 지난 12월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JF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KE086편 여객기에서 벌어졌다. 조 전 부사장은 접시에 담아 서비스해야 하는 견과류를 봉지째 내놓은 것을 문제 삼았고 이에 대한 조치로 객실 사무장을 강제 하기시키는 과정에서 여객기를 게이트로 다시 돌렸다. 항공법에는 기장이 승무원을 지휘·감독하도록 돼 있어 조 전 부사장이 월권행위를 했다는 비난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세간의 뭇매를 맞고 있는 조 전 부사장은 현재 계열사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에서 모두 물러났다. 더구나 땅콩 회항 사건과 관련해 기내난동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조 전 부사장의 경영복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심지어 인터넷 각종 게시판에는 대한항공의 이름을 ‘한진항공’ 등으로 바꿔야 한다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왼쪽부터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조원태 부사장 후계구도 독주체제
조 전 부사장이 그룹 내 직위들을 내놓으면서 일단은 조원태 부사장의 독주가 점쳐진다. 조 부사장은 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룹의 주력사업인 대한항공에서도 핵심분야인 경영기획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조 부사장은 대한항공 지분에서 누나인 조 전 부사장을 근소한 차이로 앞선다. 지난 12월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해 세자녀에게 각각 대한항공 주식 63만여주씩을 증여했다. 각자의 지분율은 1.08%로 동일하다. 하지만 주식 수는 조원태 부사장이 가장 많다. 그가 증여 받은 주식은 63만5797주로 조현아 전 부사장의 63만5103주보다 694주 더 많다. 조현민 전무는 63만3951주로 세남매 가운데 가장 적은 주식을 증여 받았다. 조 전 부사장과 조 부사장의 한진칼 지분율도 2.48%로 같다. 하지만 조 부사장은 131만4532주를 갖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이 보유한 131만3097주보다 1435주가 더 많다.

또한 조 부사장은 올해 들어 조 회장과 함께 회사 안팎의 행사를 적극적으로 챙기는 등 그룹 후계자로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부사장이 후계구도에서 전보다 힘을 얻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좀 더 명확한 후계구도를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조 전 부사장의 일이 한진그룹의 족벌경영과 경영세습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세자녀는 입사 뒤 초고속 승진을 했다. 조 전 부사장은 입사한 지 7년 만에 임원이 됐다. 조 부사장은 조 전 부사장보다 빠른 4년, 조 전무는 이보다 더 빠른 3년 만에 임원에 올랐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총수 일가의 자녀라고 해서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고 경영권을 승계 받는 시대는 지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땅콩리턴’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 17일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으로 출두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후계자 자질 시험대 오른 오너 3세
여기에 한진그룹 오너 3세들은 후계자 자질 문제로 다시 도마에 올랐다. 한진그룹은 후계구도와 관련해 큰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항공업계 안팎에서는 조원태 부사장의 과거 행적이 다시 입방아에 오르면서 그를 후계자 자질 시험대에 올려놨다. 조 부사장은 지난 2005년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도로에서 시비가 붙은 70대 할머니에게 폭언을 퍼붓고 밀어 넘어뜨린 혐의로 입건된 바 있다. 또 지난 2012년에는 인하대학교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폭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조 부사장은 시민단체 회원에게 “내가 조원태다. 어쩔래. ×××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부사장은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도 막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막내인 조현민 전무의 후계 위상이 확고해지는 시나리오가 나올까. 조 전무 역시 과거 행적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그는 지난 2012년 ‘진에어 승무원의 유니폼이 짧아서 민망하다’는 내용의 트위터 글을 꼬집으며 명예훼손을 운운해 적절하지 못한 대응이라는 비난을 샀다. 또 최근에는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스스로 ‘낙하산’이라고 말하는 등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지적을 받았다.

조 전 부사장의 이번 땅콩 회항 사건으로 한진그룹의 3세 후계구도에 안개가 꼈다. 조 전 부사장이 ‘갑의 횡포’와 계열사 대표이사는 물론 대한항공의 모든 보직에서 물러나며 변수가 생긴 것은 한진그룹의 후계작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더구나 족벌경영과 경영세습 논란이 다시 부각됐고 자녀들의 과거 행적까지 다시 도마에 오르면서 앞으로의 후계구도가 어떤 식으로 변화될지는 미지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