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경영·동반성장펀드 조성 나서… '코앞 이익' 노린 전략적 행보?

요즘 재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은 롯데다. 그동안 폐쇄적이고 보수적 색채가 짙던 롯데는 다른 대기업들이 변화와 도전을 주창하며 꿈틀거릴 때도 비교적 안정감있는 기업운영을 택했다. 그런 롯데가 2015년 시작부터 요동친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이탈이 그 발화점이다. 신 전 부회장이 주요 계열사 임원자리에서 해임되며 후계구도에 이상징후가 포착되자,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으로 권력의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한국과 일본을 통합경영할 것이라는 ‘대세론’ 속에 신 회장의 대내외 보폭이 예전보다 확실히 넓어진 것이다.

특히 재계의 시선은 신 회장이 ‘보수적 색감’을 지우고 롯데에 ‘착한 기업’ 이미지를 심는 작업을 주시한다. 요즘 신 회장은 동반성장과 투명성을 내세워 롯데의 변신을 진두지휘하는가하면 잘못된 부분에 대해선 정부와 국민 앞에 머리숙이는 모습까지 내비친다.


 

신동빈(왼쪽 두번째)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1월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롯데홈쇼핑 경영투명성위원회 위원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6천억 동반성장펀드 조성… 중소기업 지킴이 자처


무엇보다 롯데가 정부의 동반성장 행보에 적극 가담했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이다. 지난 1월27일 롯데는 동반성장위원회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중소 협력회사의 동반성장 및 공유가치 창출'을 약속하는 협약식을 가졌다. 이 협약으로 롯데와 동반위는 중소 협력사와 대기업간 상생활동을 돕고 거래관계 개선을 통해 동반성장 인프라 구축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롯데는 롯데백화점·롯데마트·롯데홈쇼핑 등을 활용해 중소기업상품 특별전을 정기적으로 열기로 했고, 현재 대기업이 롯데리아에 공급하는 햄버거빵의 경우 중소기업에서도 납품할 수 있도록 방침을 정했다.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필요한 자금과 물류시스템 등을 지원해 이들 회사가 해외에서 조기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이와 함께 롯데는 기존 동반성장펀드에 약 800억원을 추가로 출연, 총 60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펀드를 운영할 방침이다. 상생결제시스템 도입과 100% 현금 결제, 대금 지급기일 단축 등 다른 중소 협력사를 위한 제도 개선에도 힘쓴다는 각오다.

롯데의 동반성장 합류 행보는 면세점 사업에서도 활발하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1월22일 제주지역 소상공인들과 협약을 맺고 동반성장 차원에서 면세점 고객에게 주변 상권의 상품권을 나눠주고 발전기금과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또 지역 상가에 한류 스타의 팬 미팅, '핸드 프린팅존', '포토존' 등 한류 복합 체험공간을 설치할 예정이다. 제주도를 많이 찾는 중국 관광객들의 경우 '지역 상권 쇼핑 즐기기 팁' 안내 책자를 배포해 지역 상권을 소개하고 중국 여행사와 관광센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홍보활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원우 롯데물산 대표이사, 김치현 롯데건설 대표이사, 이동우 롯데월드 대표이사, 차원천 롯데시네마 대표이사(왼쪽부터)가 지난해 12월17일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 홍보관에서 공사장 인부 사망사고 등 일련의 안전사고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숙여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투명경영에도 50억 쾌척 "사과할 건 한다"

경영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 역시 신 회장이 만들어가는 ‘착한 롯데’의 모습 중 하나다. 최근 신 회장은 연간 50억원이 투입되는 롯데홈쇼핑의 투명성 강화안을 직접 챙겼다. 그는 지난 1월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 사외 인사로 구성된 '롯데홈쇼핑 경영투명성위원회'와 간담회를 연 후 연간 50억원의 운영기금을 조성, 공정거래전문가와 법률전문가로 구성된 경영투명성위원회 상근 사무국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 사무국은 협력업체와 고객의 불편사항·이의·분쟁을 객관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끊임없는 안전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제2롯데월드와 관련해서는 계열사 대표들을 내세워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지난해 12월16일 제2롯데월드 쇼핑몰동 8층 콘서트홀 공사장에서 비계 해체작업 중이던 현장인부 A씨가 사망하자 다음날 롯데는 이원우 롯데물산 대표이사와 김치현 롯데건설 대표이사, 이동우 롯데월드 대표이사, 차원천 롯데시네마 대표이사 등 주요계열사 CEO들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며 시민과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더불어 철저한 재발방지 수립과 입점업체 피해 최소화 등을 약속했다.

올 들어서도 신 회장은 지난 1월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2015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제2롯데월드의 안전 문제와 관련 “다시 한번 점검해서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재차 확약했다.

그러면서 제2롯데월드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그룹 차원의 전담조직 신설을 추진해 추후 제2롯데월드의 안전성에 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해서 신속하고 투명하게 국민과 언론에 공개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 착한행보, 알고보니 고도의 전략?

하지만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라고 했던가. 이 같은 일련의 롯데식 선행을 놓고 재계는 무언가 얻을 것을 염두에 둔 롯데의 전략적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연간 50억원을 투입키로 한 롯데홈쇼핑의 투명성 강화 방침만 해도 코앞으로 다가온 홈쇼핑 재승인 심사를 겨냥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초 롯데홈쇼핑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납품업체로부터 수억원의 현금과 금품을 받아온 사실이 적발돼 망신을 샀다. 이 비리파문으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최측근이던 신헌 전 롯데쇼핑 대표가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전현직 임직원들도 줄줄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홈쇼핑은 오는 3월 5년마다 실시하는 TV홈쇼핑 사업자 재승인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나 심사를 주관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올 들어 심사 기준을 대폭 강화하기로 방침을 정했고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지난 1월13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홈쇼핑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를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롯데측으로서는 이번 재승인 심사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공교롭게도 롯데홈쇼핑은 지난 2010년 재승인 심사를 앞둔 시점에서 심사 4~5개월 전부터 사회공헌 활동에 수십억원의 돈을 쓴 '이력'이 있다. 여기에 지난 2013년 신동빈 회장이 국감 증인으로 출석 요구를 받았을 때도 롯데는 ‘상생협력기구’를 갑작스럽게 만들며 증인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당시 롯데 경영진들은 국감날짜가 다가오자 민주당 ‘을지로(을을지키는길)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을 만나 피해자들에 대한 ‘상생협력기구’를 만들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롯데 측이 '투명성'과 '동반성장' 등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나선 것은 비리혐의가 밝혀진 롯데홈쇼핑과 제2 롯데월드의 안전성 논란 등 그룹의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한 작업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