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유 가격은 최근 3년간 3분의 1 가까이 떨어졌다. 지난 2012년 3월16일 배럴당 123.51달러로 고점을 찍었다. 이후 파도곡선을 타다 지난해 7월25일(106.40달러)을 기점으로 최근까지 연일 미끄럼을 타고 있다. 급기야 지난 1월23일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45달러 선까지 내려왔다.
산업계는 이러한 흐름에 맞춰 주판알 튕기기에 정신없다. 갑작스런 유가 상승 흐름을 대비하지 못할 경우 언제든 호재가 악재로 바뀔 수 있어서다. 저유가 시대 울고 웃는 산업계의 표정을 살펴봤다.
◆ 정유업계, 재고평가손실 '직격탄'
초저유가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정유업계다.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정유사들의 재고평가손실규모는 큰 폭으로 하락한다. 재고평가손실은 정유사들이 보유한 원유와 석유제품 재고자산의 평가가격이 취득가격(장부가격) 아래로 떨어져 자산가치가 줄어든 것을 뜻한다. 정유사들은 재고평가손실 규모에 따라 적자 규모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정유사 가운데 먼저 회초리를 맞은 곳은 S-OIL이다. S-OIL은 지난해 258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34년 만에 첫 적자다. 작년 매출도 전년대비 8.3% 하락한 28조5576억원을 내는 데 그쳤다. 실적 악화 원인은 매출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정유사업부문이었다. 정유사업은 지난해 연간으로만 698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사진=머니위크 DB
아직 실적발표를 하지 않은 국내 정유업계 1위 SK이노베이션도 사정이 좋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은 작년 3분기 714억원의 재고평가손실을 봤다. GS칼텍스도 379억원의 재고손실을 기록했다. 그나마 현대오일뱅크가 27억원으로 업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됐다. 작년 한해 실적을 보면 SK이노베이션이 6000억원대, GS칼텍스는 4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조선·건설·플랜트업계도 국제유가하락에 따른 수주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은 바로 해양플랜트 분야. 해양플랜트는 1기를 건설하는 데만 조 단위의 막대한 투자비가 발생한다. 그런데 유가가 떨어지면 채산성이 낮아지고 이로 인해 신규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발주처가 수주를 취소하거나 연기하기라도 하면 해당기업은 큰 타격을 입는다. 여기에 석유의 대체자원인 셰일가스가 각광받으면서 해양플랜트 업계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올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해외건설 수주 실적이 역대 2위를 차지할 만큼 선방했지만 올해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이러한 실적을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작년 수주 실적의 절반가량은 산유국인 중동지역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조선업종을 덮친 수주부진과 선가하락, 실적악화, 유가하락 사중고가 올해도 이어질 것”이라며 “무엇보다 해양플랜트가 작년 수준의 매출을 유지하려면 상선 영업으로만 신규 수주를 채워야 한다. 당분간 상선 발주 경쟁이 더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자동차·항공·여행업계, 매출-영업익 '동반상승'
자동차, 항공, 여행, 의료 등의 업종은 표정관리에 나섰다. 자동차업계는 저유가를 무기로 고객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승용차 국내 판매실적은 68만3532대로 전년(64만698대)보다 6.7% 증가했다. 월별로 보면 작년 6월 3만1954대에서 9월 2만8501대로 줄었으나, 12월에 4만3976대로 늘었다. 6개월 만에 37.6%(1만2022대)나 증가했다. 반면 지난 2013년에는 6월 2만8463대, 9월 2만7148대, 12월 2만6031대로 연말로 갈수록 꾸준히 감소했다. 특히 2013년과 2014년 12월 실적만 놓고 보면 69%(1만7945대)나 늘어난 셈이다.
항공업계도 호황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유가하락 영향으로 작년 4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2.2% 늘어난 1조4422억원, 영업이익은 흑자전환해 345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제주항공의 올해 매출액은 5401억원, 영업이익은 709억원이 예상된다. 티웨이항공 매출액은 2368억원, 영업이익은 564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8.0%, 129.1%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대항항공은 땅콩회항 논란으로 실적이 20%가량 하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사진제공=아시아나항공
항공업계의 실적이 기대이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이면서 여행업계도 함박웃음이다. 증권업계 보고서를 보면 하나투어는 작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66% 증가한 100억원, 매출액은 31.9% 늘어난 1097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모두투어도 매출액이 같은 기간 전년 동기보다 12% 증가한 379억원을, 영업이익은 21% 증가한 41억원을 나타낼 것으로 파악됐다.
여행업계 전문가는 “국내에 유입되는 외국인관광객과 해외로 떠나는 국내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면서 여행사들이 모처럼 호황을 누리고 있다”면서 “유가 하락이 계속된다면 여행객들은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업 100곳 중 21곳 "유가하락 비정상적"
우리나라 기업 100개사 중 20.6개사는 유가하락 속도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빠르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유가하락 대응계획을 세운 기업은 100곳중 14.9곳에 불과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기업 35개를 대상으로 '국제유가 하락 영향과 대응계획'을 조사한 결과 유가하락이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기업의 60.9%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국제유가 하락속도에 대해서는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기업이 20.6%, ‘예상보다 빠르다’는 기업은 48.0%로 절반이 넘는 기업이 최근의 급격한 유가하락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금 같은 유가 하락세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올해 상반기’라는 응답이 52.3%로 가장 많았고, 이어 ‘올해 1분기’(25.7%), ‘올해 말’(11.7%), ‘곧 안정을 찾을 것’(8.0%) 등으로 나타났다.
유가하락 대응계획을 세운 기업은 많지 않았다. 유가하락 활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응답은 19.1%에 그쳤고, ‘유가 바닥이 확인된 후에 수립하겠다’는 응답이 66.0%, ‘활용계획 수립 계획이 없다’는 응답은 14.9%였다. 활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기업들은 ’생산 확대‘(27.8%), ’부채상환 및 내부 유보‘(25.9%), ’판매가격 인하‘(20.4%), ’투자확대‘(20.4%), ’고객서비스 개선‘(5.5%) 등을 마련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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