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은행으로의 전환은 첫 한국인 행장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렸다. 지난 1월 초 제일은행 출신인 박종복 부행장이 행장으로 취임한 것. 한국SC은행은 지난해까지 외국인이 행장을 맡았다. 따라서 한국인인 박 행장이 한국SC은행의 성적을 끌어 올리는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낼지에 관심이 쏠린다.
◆추락하는 한국SC은행
한국SC은행은 수년째 실적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지난 2008~2009년 2년간 총 4000억원대의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지난 2013년에는 1169억원으로 반토막났다. 지난해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한국SC은행은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68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전년 동기(영업이익 1216억원) 대비 적자전환이다. 순이익도 마찬가지다. 49억원의 순손실을 입었다. 전년 같은 기간의 1070억원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한국SC은행의 실적 추락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개인금융시장이 불황에 빠진 게 원인이다. 그동안 안정성이 높고 단기적으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개인고객 영업에 치중한 것이 실적 부진을 키웠다. 한국SC은행은 지난 2013년 상반기 기준 전체 대출 가운데 가계대출 비중이 70%에 이른다. 다른 국내은행이 기업금융을 강화하면서 가계대출 비중을 50%선으로 줄인 것과 비교된다.
또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거액의 회망퇴직금을 지급한 것도 실적하락에 일조했다. 급기야 대규모 배당계획까지 나오면서 한국SC은행이 철수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 불을 지폈다. 당시 아제이 칸왈 한국SC은행장은 “배당으로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것도 한국에서 은행사업을 계속하기 위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여론의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외국인 은행장들은 그동안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영업으로 수익감소를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른 은행들은 행장이 직접 영업전선에 나설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반면 지난해까지 줄곧 외국인이 행장이었던 한국SC은행은 영업전선에서 소통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사진제공=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부족한 현장소통 보완
한국SC은행의 새로운 수장인 박 행장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첫 한국인 행장이라서다. 그는 한국SC은행의 전신인 제일은행 공채 출신으로 지난 35년간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끝에 행장이 됐다. 무엇보다 ‘최초 한국인 CEO’라는 타이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전까지의 외국인 행장이 내보인 현장소통 부재라는 약점 보완이 가능하다.
박 행장의 현장소통은 지난 2월 초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박 행장은 자신에 대해 “35년 뱅킹 경력 중 20년간 영업점에서 근무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영어를 못해 의사소통을 하려면 반드시 통역을 거쳐야 하는데 올해부터 행장을 맡게 된 것은 현장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겉치레를 싫어하는 박 행장의 소탈한 성품도 긍정적인 평가에 한몫한다. 취임 후 고급승용차 대신 승합차를 타겠다고 선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는 과거 행장들이 이용한 K9 대신 카니발 등 승합차 가운데 전용차를 고르는 중이다. 현장소통을 위해 참모진과 같이 움직이기 수월하고 이동 중 회의를 할 수 있는 등 여러 장점이 고려됐다. 오랜 세월을 영업점에서 근무한 현장형 CEO인 만큼 영업일선을 챙기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특히 박 행장은 한국SC은행의 현지화를 강력히 외친다. 한국 현실에 맞는 영업활동을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여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로써 한국SC은행은 진정한 ‘한국형 은행’으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영업통 선구안 ‘주목’
박 행장이 앞으로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다. 현장소통 문제는 큰 걸림돌 없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추락한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업구조를 새로 짜야 한다.
박 행장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글로벌 네트워크 ▲토착화 및 현재화된 전략 ▲기업금융 및 리테일금융의 균형 ▲현장경영 등 4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올해 핀테크를 기반으로 한 소매금융 강화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한국SC은행이 최근 부는 핀테크 열풍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지난 10년간 점포수가 적은 것이 한국SC은행의 약점이었지만 앞으로는 엄청난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박 행장은 “오프라인 지점 수로 대결하는 시대는 끝날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고민해야 한다”며 “고객이 있는 곳으로 직접 태블릿PC를 들고 찾아가거나 주말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쇼핑몰 안에 은행 팝업 데스크를 여는 등 핀테크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SC은행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국내 핀테크 기술의 수출을 장려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국내 중소기업이 만든 핀테크 기술인 모빌리티플랫폼은 현재 SC은행이 진출한 10여개국에서 활용돼 프로젝트 개발이 진행 중이다. 박 행장은 “금융환경이 어려운 시기라 이 기간이 가장 중요하다”며 “SC은행만이 가진 강점을 활용해 한국기업의 해외진출과 해외기업 및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진입을 도울 수 있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는 한국SC은행 철수설에 대해 박 행장은 선을 그었다. 그는 자신의 임기 중 국내에서 철수하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대신 시중은행을 선도했던 옛 제일은행의 ‘1등 DNA’를 살릴 계획이다. 제일은행 출신 ‘영업통’인 박 행장의 선구안이 통할지 관심이 쏠린다.
☞프로필
▲1955년생 ▲1979년 경희대 경제학과 학사 졸업 ▲1979년 제일은행 입행 ▲2004년 강남·부산PB센터장 ▲2006년 PB사업부장 ▲2007년 영업본부장 ▲2009년 프리미엄뱅킹사업부장 ▲2011년 소매채널사업본부장 ▲2014년 리테일금융총괄본부장(부행장) ▲2015년~ 한국스탠다드차타드금융지주 회장 및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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