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숨지고 다쳤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자녀 혹은 부모를 맞이한 유가족의 억장은 무너진다. 문제는 한번 사고가 나면 인명피해뿐 아니라 막대한 재산피해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최근까지 각종 사고가 잇따르면서 재난보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내에는 28개의 재난관련 의무보험이 있지만 대부분 유명무실한 상태. 보상한도가 미흡하거나 미가입 시 제재규정이 없는 등 허점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보험업계와 정부는 올해 안에 대형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포괄적으로 보상하는 재난보험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고. /사진=뉴스1 DB
◆재난보험 ‘관리기구’ 시급
재난보험은 재난시설의 소유(사용)자가 재난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 이를 보상하는 배상책임보험이다. 특수건물화재보험, 자동차책임보험 등이 재난보험에 속한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대부분의 재난관련 의무보험에 보상한도와 미가입 시 제재규정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령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자동차보험과 다중이용업소 화재배상책임보험을 제외한 나머지 재난관련 의무보험은 가입관리체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압가스안전관리법, 도시가스사업법, 액화석유가스 안전관리 및 사업법,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청소년활동진흥법,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 등은 대인 보상한도가 자동차보험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의무보험 관련 법률 중 보상한도 규정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유선 및 도선사업법이나 영유아보육법, 사회복지사업법, 체육시설의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관광진흥법 등은 아예 보상한도가 정해지지 않았다. 궤도운송법, 유선 및 도선사업법, 영유아보육법, 우주손해배상법, 원자력손해배상법 등은 의무보험을 가입하지 않아도 제재조항이 없거나 부실했다.
업계 관계자는 “재난관련 의무보험이 28종에 달하지만 이에 대한 미가입 현황이나 공식적인 통계조차 없는 상태”라며 “민·관이 공동으로 협력해 체계적인 통계와 정보를 관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특수건물화재보험 문제가 부각된 것은 지난 1월 경기도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고 이후부터다. 현행법상 화재 때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백화점·숙박업소·공장 등 특수건물은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화재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휴게음식점·단란주점·유흥업소·영화관·학원·목욕탕 등 다중이용업소도 ‘다중이용업소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화재배상책임보험 가입대상이다.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아파트는 16층 이상, 도시형 생활주택 등 일반건물은 11층 이상인 경우 화재보험 가입이 의무적이다.
하지만 보험가입이 의무화된 특수건물 중 상당수가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보험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3만6771개 화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자 중 2402개(6.5%)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단독주택이나 15층 이하 아파트, 10층 이하 일반건물의 보험가입 여부는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실정이다.
때문에 재난관련 보험이 실질적인 의무보험 형태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지난달 23일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개최한 ‘재난안전 취약시설 및 재난보험 개선방안에 관한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재난보험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생명 사외이사인 김정동 연세대 교수는 “각종 재난사고를 계기로 재난위험시설에 대한 보완이 있었지만 안전사각지대는 여전히 많다”며 “재난보험을 의무화해 가해자 배상책임원칙 확립 및 피해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현재의 문제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의무보험 관리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종목별로 보상기준을 표준화하고 배상책임 한도금액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난취약 분야로 조사된 공연장, 관람 및 전시장, 전통시장 등의 안전관리는 대부분 미흡하다”며 “보험가입이 통합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 현장. /사진=뉴스1 박정호 기자
◆일부 손보사, 손해율 우려 ‘난색’
정부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임종철 국민안전처 재난복구정책관은 “그간 사고유발자에 대한 책임부담을 국가가 지면서 혈세가 낭비됐다”며 “재난보험의 의무화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은 “재난보험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보험사각지대에 놓인 교량·터널 등 기간시설과 산업시설, 철도·지하철, 병원, 소공연장 등이 모두 재난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될 전망이다. 각 부처에서 제각각 운영되는 28개 재난관련 의무보험도 보상한도와 벌칙조항을 법령에 넣어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손질된다.
그러나 손해보험업계 일각에서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전통시장, 지하도 상가 등과 같이 재난에 취약한 곳에 화재가 나면 손해율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손보사 관계자는 “사실상 정부가 책임지기 어려운 부분을 민간보험사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며 “특히 전통시장의 경우 한번 불이 나면 피해가 커 손해율 상승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는 “재난보험 의무화 이전에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사전에 위험을 진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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