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에 중국 전기차 업체인 BYD 부스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뉴시스


국내 배터리 업계가 중국의 거센 공세 속 생존 갈림길에 서 있다. 중국 기업이 탄탄한 내수시장과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바탕으로 급속 성장하면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 배터리 산업이 지금의 위기를 넘어 첨단 전략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직접환급형 세액공제 등을 비록한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배터리셀 시장에서 중국업체의 합산점유율은 69%인 데 반해 국내 주요 배터리셀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16%에 불과했다.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도 고전중이다. 지난해까지는 중국 외 지역에서 국내업체 점유율이 중국업체를 앞섰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이마저도 역전당했다.

이차전지의 주축인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1~8월 중국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 CATL이 전년보다 36.8% 증가한 83.8GWh를 판매하면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BYD는 148.6% 증가한 22.4GWh를 판매하며 점유율 7.8%로 5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점유율이 떨어진 국내업체와는 대비된다.


중국과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면서 양국의 정부 지원 수준이 차이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예컨대 중국 정부는 2009년부터 2023년까지 자국 전기차·배터리 산업에 약 230조원 보조금을 투입했다. 보조금 종류도 구매 보조금(전기차 구매자 대상), 세제 감면, 인프라 지원 등으로 다각화해 지원 범위를 넓혔다. 특히 전기차 보조금 지급 시 국산 배터리 사용 조건을 부과해 자국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도록 도왔다. 국가 지원 덕분에 중국업체들은 '국내 수요 확보 → 대규모 생산 → 가격경쟁력 확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한 데에도 국가 역할이 주효했다. 중국은 아프리카 등지에 도로·댐·철도 등 인프라를 제공하는 대가로 니켈·리튬·코발트 등 핵심 광물 채굴권을 확보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생산량 중 70%를 중국 기업이 통제해 공급망 지배력을 강화한 게 대표적이다. 이에 발맞춰 광물 제련 및 정제 역량도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현재 배터리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준으로 양극재 시장은 중국업체가 사실상 독점(점유율 100%)하고 있고, 음극재 전체 시장 98%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김영훈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수석애널리스트는 지난달 진행된 세미나를 통해 "국내업체는 전방 수요 둔화와 가격경쟁 심화 속 중국 기업 대비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 중이고, 중국업체는 탄탄한 내수시장과 정책지원·업스트림 지배력을 토대로 양호한 이익을 실현 중"이라며 "지금의 이익창출력 격차는 향후 기술 격차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달 2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글로벌 배터리 시장 변화와 K배터리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연 기자


국내 배터리 기업에 대한 지원책은 미흡하다. 중국이 공급망을 장악해 온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소재 독립성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탓에 국제 정세 변화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중국은 최근 미국과의 무역 분쟁 과정에서 첨단산업 핵심 원료인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 조치를 발표, 업계의 우려를 낳은 바 있다.

현행 배터리 세액공제의 한계도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현 제도는 대기업 기준 시설 투자에 대해 15%, 연구개발에 대해선 30% 안팎의 세액공제를 제공하지만,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방식이라 흑자 기업만 혜택을 볼 수 있어서다. 또 해당 혜택은 흑자가 발생할 때까지 이월되는 형태라 적자에 시달리는 국내업체에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다.


이에 업계에서는 직접환급형 세액공제처럼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제도는 기업이 영업이익이나 납부할 법인세 유무와 무관하게 투자 및 생산 실적에 따라 세액공제 금액을 현금으로 돌려받도록 한다.

실제로 미국·캐나다·EU·중국 등 다수 국가가 유사 제도를 도입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서 OBBBA로 이어진 45X 생산세액공제에 의거, 배터리 제조업체가 생산 및 판매 실적에 따라 세액공제를 받도록 한다. 직접 지급 옵션을 통해 공제액이 세금액을 초과할 경우 이를 현금으로 환급해주거나 공제 크레딧을 제3자에게 양도하도록 하는 제도도 운용 중이다.

지난달 열린 '글로벌 배터리 시장 변화와 K배터리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회토론회'에서도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배터리 제조사들은 "국내 기업들이 적자 누적 등으로 세액공제 혜택을 누리지 못해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며 "직접환급형 세액공제나 3자 양도, 크레딧 활용 등 실질적인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안정혜 율촌 변호사는 "직접환급형 세액공제는 정부 차원에서도 높은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기업의 생산·투자 등 일정 조건만 충족하면 환급되는 데다 실적 발생 이후에 환급되기 때문에 재정 부담 예측이 용이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