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오전 서울 관악구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민자사업 현장에서 최저임금 적정 수준 인상을 거듭 강조했다. /사진제공=서울 뉴스1 손형주 기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저임금을 적정수준으로 인상해야 내수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대기업을 비롯해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까지 두 손 들고 반기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 임금 인상에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최 부총리는 9일 서울 관악구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공사현장을 방문해 “구조개혁도 필요하지만 경기 회복세를 보다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며 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앞서 지난 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서 “근로자 임금이 적정수준으로 올라가야 내수가 살아난다”고 강조한지 5일 만에 다시 한번 임금인상론을 제기한 것이다.

최 부총리가 임금인상론을 거듭 제기한 데는 앞서 임금 인상 발언으로 재계와 마찰을 빚은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최 부총리는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조짐을 우려하면서 기업에 임금 인상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여력이 없다”며 임금을 동결하는 대립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과 정유업체 등은 임금 동결을 확정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또 지난 6일 삼성SDS·삼성전기·삼성디스플레이도 임금 동결 대열에 합류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말 임금을 동결했고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도 뒤를 따랐다.


현대자동차 등 노조 세력이 강한 일부 기업은 올해 임금 인상 협상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SK·CJ·LS 등 아직 본격적인 임금 협상에 들어가지 않은 기업도 대부분 임금을 동결하거나 소폭 인상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지난 5일 회원사에 “올해 임금은 국민경제생산성을 고려해 인상률을 1.6% 내 범위에서 조정하라”는 권고안을 내놨다. 이번 권고안에는 통상임금 확대, 60세 정년의무화 등 제도 변화에 따른 자연 인상분까지 포함돼 사실상 동결이라고 볼 수 있다.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도 반응은 비슷하다. 수입은 늘지 않는데 지출이 늘면 직원을 내보낼 수밖에 없게 된다며 최 부총리의 요청에 역행하는 분위기다. 실례로 지난 2007년에는 감시·단속적 근로자의 최저임금 적용 후 아파트 경비원의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임금 인상 문제는 내수 진작 목적이 아니라 소득 양극화 해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임금을 인상하면 심각한 양극화를 완화하고 근로빈곤층을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소득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범정부적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임금 인상을 논의하는 식으로 틀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 부총리의 임금인상론에 대해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경기침체 속에 물가하락과 장기불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수치로 나타나니 경제당국이 당황하며 임금인상을 들고 나온 것 같다”며 “하지만 정부가 경제 현장을 향해 임금 인상을 주도하는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임금 협상 현장이 필요이상으로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유효 수요를 키워 불황과 물가하락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틀리지 않지만 일반 기업 현장에는 형편이 좋은 기업도 있지만 좋지 않은 기업도 있다”며 “산업계의 경우만 봐도 조선과 석유화학, 해운 등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임금 인상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