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대우조선해양을 이끌어온 고재호 사장. 그의 임기는 사실상 이달로 끝이 났어야 한다. 하지만 고 사장에게는 최소 ‘두달’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

비록 후임 인선 결정이 미뤄지며 연임이 아닌 유임으로 다음 이사회까지 두달 짜리 사장직을 임시로 맡는 모양새지만, 고 사장은 채권단의 외부 압박을 막아주는 든든한 직원들이 고맙고 든든하기만 하다.


◆ '직원 지지' 업고 연임 안착?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6일 열린 정기이사회에서 고 사장의 후임 인선을 하지 못했다. 대신 후임 사장이 선임될 때까지 고 사장을 유임하기로 결의했다. 고 사장의 임기는 원래 이달 말 끝난다.

이달 31일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후임 사장이 결정되려면 상법상 주총 2주 전인 이날 이사회에서 후임 사장 안건을 확정해야 했다. 하지만 대우조선 측은 사장추천위원회조차 열지 못했다.


대우조선 지분 31.5%를 보유한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후임 사장 선임과 관련해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당초 후임 사장 후보로 홍기택 산은 회장의 고교동창인 김연신 전 성동조선해양 사장을 비롯해 3~4명의 내·외부 인사가 거론됐으나 이번 이사회에서 인선 결정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후임 사장 인선을 위한 임시 주총은 절차상 빨라도 오는 5월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고 사장 연임을 지지하는 대우조선 노조의 의지가 워낙 강경하다 보니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본다. 실제로 대우조선 노동조합은 후임 사장 인선 과정에서 외부인사 영입을 강하게 반대했다. 이는 고 사장의 연임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고 사장이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조선업 불황 속에서도 높은 수주 성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현시한 노조위원장은 "회사의 문화·정서·환경을 전혀 모르는 외부인사를 선임한다면 크나큰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사장은 반드시 내부인사가 선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내부인사 표용 범위로 대우조선 고영렬·박동혁·이병모 부사장 등을 거명했지만 사실상 고 사장 연임을 유도하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 소통·현장 중시, 포용 리더십 호평
이처럼 직원들이 직접 나서 고 사장을 감싸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3년 동안 고 사장은 사원들과 직접 소통에 나서며 조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업황 침체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실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우조선 관계자는 "고 사장이 2012년 취임 이후 노사관계도 원만히 했고 탁월한 영업력을 발휘해 사내 신망이 두텁다"며 "경영회의에도 노조위원장 등을 참석시키고 해외 주요 프로젝트 협약에 노조 간부와 동행하는 등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고 사장은 그동안 임직원과의 대화를 꾸준히 이어왔다. 회사가 처한 문제점과 개선사항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함으로써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직원들과 함께 고민했다. 또한 고 사장은 직원과의 접점을 강화하고 사내 목소리를 듣기 위해 회사 포털시스템에 'CEO 우체통'을 만드는 등 회사 정책과 조직문화에 대한 개선사항을 가감 없이 받아들여 직원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 냈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소통과 화합을 중시하는 고 사장의 '현장경영'이 점차 사내에 뿌리내리며 든든한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 업황 침체기 실적 나홀로 ‘쑥쑥’

이런 고 사장의 포용 리더십에 대우조선은 성장을 거듭했다. 고 사장이 사장직을 맡은 3년 동안 연속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업계 불황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실적을 거뒀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창사 이래 두번째로 높은 149억달러(16조4000억원)를 수주해 수주목표액 145억달러를 넘었다. 또한 1월 말 기준 수주잔고 493억달러로 3개월째 세계 1위를 고수했다. 올해도 이미 LNG선 6척, 초대형 원유운반선 2척 등 총 8척, 약 14억달러 상당의 선박을 수주함에 따라 수주잔고 1위 자리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엔 고 사장의 경영전략과 현장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다. 고 사장은 사원에서 임원에 오르기까지 선박·해양영업 분야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다. 지난 2004년부터는 인사·총무 일을 2년간 맡았다가 다시 선박사업부문장으로 현업에 복귀했다. 이후 사업부문장에 이어 영업설계·풍력·해양·선박·신사업 등 대우조선의 모든 사업을 총괄했다.

34년간 해외영업과 현장근무 등으로 다져진 고 사장의 영업력으로 대우조선은 지난해 초대형 원유 운반선과 LNG선을 수주했으며 끈질기게 공을 들인 러시아 야말프로젝트도 견실한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

따라서 사장이 교체될 경우 어렵게 다진 대우조선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우조선의 한 관계자는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고 사장의 연임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정하고 후임 인선에 착수했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직원들이 크게 동요한다”며 “심각한 업황 침체기를 지나는 이 시점에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면 그나마 모범적으로 난국을 헤쳐나가고 있는 회사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