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뻐꾹~. 뻐꾹~.” 1995년 8월1일, 국내 최초로 홈쇼핑 방송(당시 HSTV, 현 CJ오쇼핑)이 전파를 탔다. 판매 상품은 7만8000원짜리 뻐꾸기시계. 방송 전부터 기대를 모았지만 첫 방송 주문량은 7개가 전부. 그마저도 7개 중 4개는 사내 직원들이 구입했다. 같은 시간 또 다른 홈쇼핑(당시 하이쇼핑, 현 GS샵)에서는 ‘하나로 만능 리모컨’을 첫 상품으로 내걸고 방송을 내보냈다. 역시 주문량은 10개 내외. 호기심에 구입한 직원들이 절반을 차지했다. 국내 TV홈쇼핑의 시작은 이렇듯 미미했다.

#. 눈으로만 보고 상품을 사라고? 이해할 수 없는 방송으로 보이던 홈쇼핑은 20년 뒤 백화점 대형마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통채널의 하나가 됐다. 매년 평균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며 20년 새 3000배 가까이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약 14조원으로 홈쇼핑 원조인 미국(약 9조원)을 따돌린 지 오래. 하지만 고공비행을 이어가던 홈쇼핑업계는 ‘갑질’ 횡포에 발목을 잡히며 추락위기에 놓였다. 그들의 화려한 성장 이면에는 납품업체들의 남모를 고혈이 있었다.


초창기 TV홈쇼핑은 언제 어디서나 쇼핑이 가능한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 손쉬운 환불 등을 내세우며 고객층을 확보해 나갔다. 직접 보지 못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단점은 구성으로 채웠다. 본품에 밀리지 않는 사은품과 무료 체험분까지 얹어줬다. 일단 써보고 마음에 안들면 반품해도 된다는 쇼호스트의 달콤한 유혹에 고객들은 전화기부터 들고본다. 무료체험 후 반품을 하더라도 배송비조차 고객이 부담하지 않는 시스템.


 


◆덜주고 빼앗고 전가한 죄

하지만 고객들이 홈쇼핑 안에서 누리는 수많은 이익은 고스란히 납품업체의 손해로 전가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덜 주고, 빼앗고, 전가한’ TV 홈쇼핑 6개사의 ‘슈퍼 갑질’에 철퇴를 내렸다.


지난 3월30일 공정위는 6개 TV 홈쇼핑에 대해 최초로 대규모유통업법을 적용,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43억68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제재를 받은 업체는 지난해 매출액 순서로 CJ오쇼핑·GS홈쇼핑·현대홈쇼핑·롯데홈쇼핑·홈앤쇼핑·NS홈쇼핑 등 6개사다. 과징금 순으로는 CJ오쇼핑(과징금 46억2600만원), 롯데홈쇼핑(37억4200만원), GS홈쇼핑(29억9000만원), 현대홈쇼핑(16억8400만원), 홈앤쇼핑(9억3600만원), NS홈쇼핑(3억9000만원)이다.

홈쇼핑사들의 '갑질'은 공정위가 '종합선물세트'라고 표현할 만큼 광범위했다. 이들 업체가 저지른 불공정행위의 유형은 크게 ▲방송계약서 미교부 또는 지연교부 ▲판매촉진비용 부당 전가 ▲부당한 경영정보 요구 ▲수수료 수취방법 변경으로 불이익 제공 ▲모바일 주문 유도를 통한 수수료 불이익 제공 ▲부당한 경제적 이익 제공 요구 ▲상품판매대금 미지급 또는 지연지급 등이다.

이들 업체는 납품업체에 방송과 관련한 계약서를 교부하지 않거나 방송당일 이후에 줬다. 관련 법은 유통업체가 당초 계약에 없는 불리한 거래조건을 설정해 그 부담을 납품업체에게 전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계약 체결 즉시 서면을 교부하도록 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TV홈쇼핑사의 납품업자 대상 각종 불공정 행위에 대해 처음으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엄중히 제재함으로써 공정한 업계 거래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이번 제재의 성과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홈쇼핑 분야의 불공정행위 심사지침을 올해 중 제정하고 정부부처 간 협업을 통해 감시를 강화하는 등 거래관행 정상화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홈쇼핑업계 한 관계자는 “사상 첫 과징금 부과인데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너무 커 내부 분위기가 술렁인다”며 “안 그래도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갑질에 대한 인식 때문에 여론이 나빠질까 우려된다”고 털어놨다.


서남교 공정거래위원회 유통거래과장이 지난 3월27일 ‘TV홈쇼핑의 남품업자에 대한 불공정행위 엄중 제재’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장수영 기자

◆5~6월 재승인 심사 어쩌나

정부의 고강도 제재에 당장 5~6월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재승인 심사를 받는 홈쇼핑사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재승인을 앞둔 업체는 롯데홈쇼핑, 현대홈쇼핑, NS홈쇼핑 등 모두 3곳.

그동안에는 업체가 21개 세부 심사항목에서 1000점 만점에 650점 이상을 얻으면 재승인을 받았다. 예외는 없었다. 국내에 TV홈쇼핑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한 업체는 단 한곳도 없었다. 재승인 심사가 이번에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과락제를 처음으로 도입한다. 미래부는 홈쇼핑의 범죄행위와 불공정행위 등을 평가할 수 있는 공공성, 공익성 등의 심사항목을 별도로 분류해 이 항목에서 배점의 50% 미만이면 탈락시키기로 했다. 해당 항목의 배점도 2배 이상 높였다.

특히 지난해 관련 임직원들이 회삿돈을 빼돌리는 등의 비리를 저질러 검찰에 적발된 바 있는 롯데홈쇼핑과 NS홈쇼핑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또 미래부는 TV홈쇼핑이 공적인 책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승인 유효 기간을 현행 5년에서 2년으로 단축할 수 있게 했다.

◆TV홈쇼핑 관리를 왜 미래부가?

물론 방송사의 허가취소가 쉬운 일은 아니다. 미래부에 재승인권을 부여한 정책 발상부터가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통업의 사업구조를 가진 TV홈쇼핑을 방송의 범주로 묶어서 방송 주무부처인 미래부나 방송통신위원회가 허가 및 관리·감독까지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하다는 것.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홈쇼핑 관리·감독을 미래부에서 하는 것부터 유통 측면에서 주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사항이 사라진 것”이라며 “납품업체와의 공정 거래 관행을 정착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
www.moneyweek.co.kr) 제3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