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때문에….”
2015년판 ‘왕자의 난’이 한창인 롯데가 경영권 분쟁에 따른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8월17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를 통해 한일 롯데경영권을 사실상 장악했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롯데그룹의 지분 구조상 형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반격카드는 여전히 존재한다. 한일롯데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일본 광윤사의 지분을 놓고 이들 형제간 세 대결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롯데가 재계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다는 것. 이번 경영권 분쟁은 롯데는 물론 재계 전방위로 ‘악재 바이러스’가 퍼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장본인’ 롯데는 더 곤혹스럽다.
대국민 사과하는 신동빈 롯데 회장. /사진=임한별 기자
광복70주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머니투데이 임성균 기자
◆기업인 사면흐름에 '찬물' 끼얹은 롯데
지난 8월13일 박근혜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사면 대상에 오른 기업인은 총 14명. 이중 대기업 총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유일했다. 최 회장은 징역 4년 중 3분의 2 이상을 복역한 점이 감안돼 '형기의 3분의 1 이상 복역'이라는 가석방 요건을 충족해 사면에 포함됐다.
그러나 당초 거론된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원 LIG그룹 회장의 장남인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과 차남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등은 끝내 사면 혜택을 받지 못했다.
여느 정부의 ‘광복절 특사’ 때와 비교해도 기업인 사면 규모가 훨씬 적은 수준. 사면발표 직후 전경련을 비롯한 주요 경제단체가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내심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이유다. 자연스레 재계의 ‘원망어린’ 시선은 롯데를 향했다.
‘신격호 촐괄회장의 신동빈 회장 해임 시도, 그리고 하루 만에 이뤄진 신 회장의 신 총괄회장 역해임.’ 사실 롯데의 경영권 분쟁이 최고조에 다다르던 지난 7월말 이전만 해도 기업인 사면에 대한 분위기는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광복 70주년이 갖는 상징성과 경제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에서 박 대통령은 지난 7월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직접 사면 검토를 지시했다. 지난해 1월 단행한 첫 특별사면 당시 기업인을 제외하고 일반 사범만 명단에 올리는 등 그동안 사면권 행사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던 행보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러나 7월말 롯데발 경영권 분쟁 악재가 터지면서 반재벌 여론이 확산됐고, 이는 기업인 사면 결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롯데발 ‘불똥’, 재벌총수 국감 줄소환?
기업인 사면 이슈가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롯데의 목을 죄는 부정적 시선은 오는 9월10일부터 열리는 국정감사를 향하고 있다.
이번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정치권은 롯데그룹의 불투명한 소유구조와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를 줄기차게 문제삼았다.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로 연결된 80여개 국내 계열사가 일본 지주회사의 지배를 받는 구조가 논란이 됐고, 전체 롯데계열사의 0.05%의 지분만 갖고 있는 신 총괄회장이 친인척 등을 통해 한일롯데를 지배해온 사실도 이슈를 탔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은 롯데 뿐이 아닌 대기업 집단 전체로 ‘목표물’을 늘렸다.
야당이 먼저 재벌개혁에 불을 지폈다.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은 지난 8월10일 상호출자금지 대상인 대기업 계열회사에 외국 법인을 포함하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당 이언주 의원도 이날 재벌 총수가 보유한 해외 계열사의 지분과 대기업의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같은 법 일부 개정안을 냈다. 사실상의 ‘롯데 규제법’이다.
일주일 뒤엔 여당 원내대표가 ‘재벌총수 국감 증인 출석’ 카드를 꺼내들며 동참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같은달 18일 "새누리당은 문제가 많은 재벌에 대해 비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면서 "이번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있는 재벌 총수는 국감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야 정치권이 이처럼 재벌개혁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자 재계는 국감에서 재벌총수들의 줄소환이 현실화되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일단 경영권 분쟁 사태로 국민의 따가운 질타를 받은 신 회장 등 롯데그룹 경영진의 증인 채택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국토교통위에서는 ‘땅콩회항’과 관련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보건복지위에서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 대한 책임 추궁 차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할 움직임을 보인다. 교육위에서도 중앙대 총장을 지낸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뇌물 사건에 따라 박용성 두산그룹 전 회장의 증인 채택 가능성이 점쳐진다.
물론 여론에 편승한 정치권의 재벌총수 줄세우기 자체를 문제삼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국감에서는 정부기관의 국정 운영과 관련해 문제가 있거나 위법행위가 명확하게 드러난 기업만을 대상으로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신청해야 한다”면서 “단순히 국민적 관심사라는 이유로 기업인을 무더기로 불러 창피주기식으로 증언대에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 제2롯데월드와 '마천루의 저주'
제2롯데월드타워.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롯데의 경영권 분쟁이 전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은 재계는 물론 국가경제에 롯데가 적지않은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소비자 단체들이 롯데제품 불매운동까지 나선 것 역시 유통업계에서 롯데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 그런데 일각에서는 롯데발 악재가 ‘마천루의 저주’를 보여주는 전형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마천루의 저주란 초고층 빌딩 건설이 경기 침체를 가져온다는 내용의 가설로, 지난 1999년 도이체방크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로런스가 100년간 사례를 분석해 만들었다.
지난 1930년과 1931년 미국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세워질 당시 미국은 대공황에 빠졌고, 1970년대 중반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시카고 시어스타워가 건설된 이후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타워가 건립된 1997년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IMF 외환위기를 맞았고, 2004년 대만에선 타이베이101이 세계 최고층 건물이 됐을 때 IT산업이 붕괴되며 대만경제가 불황을 겪었다.
아랍에미리트의 828m 초고층 빌딩인 버즈 두바이 역시 완공을 불과 2개월 앞둔 2009년 11월 국영기업 두바이월드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해 국가위기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미국의 응용수학자 존 캐스티는 지난 2010년 저서 <대중의 직관>를 통해 제2롯데월드(롯데월드타워)도 언급했다. 그는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되면 한국에도 불황이 찾아올 수 있다"면서 "곧 한국 주식시장이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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