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임금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시작은 부진한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순수한 의도였지만 대선 주자들이 가세하면서 최대 정치 이슈로까지 부각되는 모양새다. 중산층의 표심을 잡는데 ‘임금’만큼 솔깃한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최근 임금 문제에 대해서만 8번 언급했다. 공화당의 유력 후보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역시 “지난 15년간 임금 인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경선에 참여를 선언한 버니 샌더스 버몬트 상원의원은 높아진 생산성의 이득이 부자들에게만 집중됐다고 지적하며 이를 노동자들에게 재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하거나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임금 문제는 단순한 인상을 넘어 임금 불평등 문제로까지 확산되면서 더욱 복잡한 방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 최저임금 인상 확산… 부작용도

임금 인상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불씨를 당겼다. 미국 경제의 2/3를 소비가 좌우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을 올리면 자연스럽게 소비가 늘어나 경기가 살아날 것이란 판단에서다. 여기에 주요 자치단체들도 가세하면서 최저임금 인상 여론이 확산됐다.


올 들어 최저 임금 인상을 결의한 곳은 20개 주가 넘고 대도시인 뉴욕과 로스엔젤리스(LA)까지 동참했다. 기간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시급을 15달러까지 인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지급해 왔던 패스트푸드와 유통업체들도 최저임금 인상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월마트와 타깃에 이어 맥도날드도 최저임금 인상을 선언했고 페이스북과 뉴욕 지역 은행인 어맬거메이티드 뱅크도 시간제 직원들의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임금 인상에 따라 직원들의 사기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급여 격차가 줄어들면서 숙련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자신들이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이직이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회사들은 이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고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 실리콘밸리, 남녀간 임금 격차로 몸살
실리콘밸리는 남녀간 임금 격차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7월 에리카 베이커 전 구글 여성 직원은 트위터를 통해 구글 내부의 남녀간 임금차별에 대해 폭로했다. 그녀는 34개의 트윗을 통해 구글 내부에 만연해 있는 성적·인종 차별 실상을 공개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그녀는 구글 직원의 최소 5%의 월급명세서까지 함께 공개했다. 현행 법상 회사는 직원들이 자신의 임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금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구글은 모든 직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임금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베이커의 트윗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은 채 “성과급과 승진에 대한 차별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녀가 내부 전산망에 자신의 월급명세서를 공개하자 다른 직원들도 여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베이커가 공개한 월급명세서는 물론 전체 직원을 대표하지 못한다. 또 성과와 경험, 재직 기간 등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왜곡할 우려도 있다.

하지만 베이커가 월급명세서를 취합 공개한 이후 일부 직원은 임금협상에서 더 나은 조건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베이커의 자료를 근거로 불평등한 성과급과 임금 차별 시정을 요구했고 구글이 이를 수용한 셈이다.

남녀간 임금 격차는 실리콘밸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노동부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미국 사회 전반의 남녀간 임금격차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2분기 현재 정규직 여성의 임금은 남성에 비해 84% 수준이다. 남자 직원이 100달러를 받을 때 여성 직원은 84달러를 받는다는 얘기다.

지난해 정규직의 주간 급여는 2.7% 상승했다. 남자 직원의 경우 3.4% 증가한 반면 여성 직원은 1.4%에 늘어나는데 그쳤다.

남녀간 임금 격차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더 커진다. 20~24세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90% 이상, 25~34세 여성 임금은 85% 이상을 유지했다. 반면 35~44세 여성 임금은 75~85% 수준에 머물고 있고 45~54세 여성 임금은 70~80% 수준에 그치고 있다.

◇ 최고경영자-직원 임금비율 공개 의무화

미국은 성과주의 임금 체계가 발달한 탓에 직원간 임금 격차가 큰 편이다. 이 때문에 최고경영자(CEO)의 지나친 고액 연봉으로 인해 직원들의 임금 인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지난 5일(현지시간) CEO와 직원간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됐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 CEO(최고경영자)와 직원들의 임금 비율을 공개하는 안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오는 2017년부터 CEO 임금 대비 직원 연봉의 중간값 비율을 공개해야 한다.

또 기업들은 투자자들에게 최고 경영진과 일반 직원간 임금 차이가 많으면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직원들에게도 내적인 임금 격차는 물론 경쟁업체와 차이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력개발 컨설팅 회사인 타워스 왓슨&Co.의 규제 자문가인 스티븐 실릭은 임금 비율 공개로 직원들은 사내와 다른 기업의 임금 중간값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받고 있는지 비교할 수 있게 됐다며 "자신이 사내에서 또 경쟁업체와 비교해서 적당한 임금을 받고 있는지 많은 의문이 제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주당과 노동조합은 임금 비율이 공개되면 기업 경영진을 압박해 CEO들의 과도한 임금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인사인 카라 스타인 SEC 위원은 "기업 경영과 CEO 임금에 초점을 맞추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는 만큼 임금 비율 공개는 또 다른 유용한 투자 기준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화당과 친기업 성향의 단체들은 임금 비율 공개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의미있는 정보가 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대중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공화당 측의 대니얼 갤러거 SEC 위원은 "투자자들의 결정에 합리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오히려 대중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노조의 압박만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탠포드대학 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락커 기업지배연구소 소장은 "놀라울 정도로 중요하고 복잡한 이슈가 단 하나의 비율로 축약되게 됐다"며 "비율의 의미를 분석하지 않고 적정한지도 생각도 해보지 않은 채 비율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지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