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는 '발견의 기쁨'이 있다. 처음부터 볼거리를 정해놓고 가기도 하지만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골목길, 시장, 그리고 별 기대 없었던 곳이 오히려 큰 인상으로 남을 때가 있다. 영월에서 무엇을 보려고 했더라? 목적보다 결과로 남은 여행, 영월을 둘러본다.

원음루(왼쪽)

적멸보궁 법흥사
법흥사의 첫인상은 낯설다. 선덕여왕 때 창건했다는 천년 고찰인데 너무 깔끔하다. 우리나라 사찰이야 조선시대 때 부침이 많았으니 별다를 바 없겠구나 싶다. 과연 그걸까. 천천히 살펴 보기로 한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원음루다. 1층에 지나는 문, 2층에 법고가 있는 문루다. 다소 현대적인 느낌이 든다. 왼쪽을 보니 극락전이 있는데 이 또한 깨끗하다. 그렇지만 그 뒤로 500년 된 밤나무가 있다. 이제서야 오래된 사찰임이 느껴진다. 나무 아래에는 징효대사의 사리가 봉안된 부도가 있다.

징효대사 부도(왼쪽)와 500년 된 밤나무

사실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흥령선원지의 옛터에 건립된 것이다. 도윤국사와 징효국사 때 번성했는데, 바로 그 징효대사의 사리가 밤나무 아래 있는 거다. 이후 진성여왕 때 소실되고 고려혜종 때 중건하는 등 사연이 많았다. 법흥사로 개칭된 것은 1902년이다. 그러니 지금의 모습은 100년이 조금 넘은 셈이다. 명맥이라도 천년을 버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보물 제 612호인 징효대사 보인탑비를 비롯해 징효대사 부도, 법흥사 부도, 법흥사 석분은 도지정 유형문화재다. 생각보다 보물이 많다.

징효대사 보인탑비(왼쪽)와 법흥사 중건비

법흥사는 전각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편이다. 앞서 말한 원음루를 지나면 숲길이 나오는데 여기가 법흥사를 담고 있는 사자산이다. 이곳을 등산하듯 오르면 전각이 하나씩 나타난다. 이 사찰이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유지했기 때문에 건립되거나 소실됨을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법흥사가 마음에 드는 것은 바로 이 길 때문이다. 고도가 팍팍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전각과 숲길이 조화롭다. 보통은 사찰 경내에 담장이 둘러져 있고 그 내부가 잘 꾸며져 있기 마련인데, 이곳 전각들은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암자의 느낌이다. 산과 잘 어우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나는 곳이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이름의 뜻처럼 이곳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셨고, 그 뒤에는 토굴이 있다. 그래서 법당 내에 불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창문을 내어 토굴과 사리탑이 보이도록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리탑에 진신사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장율사가 사리의 영원한 보존을 위해 사자산 어디엔가 사리를 숨겨뒀다고 전해진다. 그 옆으로 얼핏 무덤처럼 보이는 것은 바위굴이다. 이곳에서 자장율사가 도를 닦았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화강암으로 단을 쌓아 돌방 안으로 들어가 관람할 수 없지만, 바닥은 평평하고 벽면은 둥그스름하게 모줄임해 가며 만든 방이라고 한다. 돌방 안의 크기는 높이 160㎝, 너비 190㎝정도로 한 사람이 앉을 정도의 공간이 된다. 자장율사는 이곳에서 주변에 가시덤불을 두르고 정진했다고 한다.

법흥사 토굴
법흥사 토굴

적멸보궁까지 봤으니 이제 내리막이다. 올라오는 동안 힘이 들었다면 그만큼의 시원함이 있을 것이다. 부처님 말씀을 백번 들으면 뭐하나. 겨우 오르막과 내리막에 희비가 오간다. 어쨌든 변덕스러운 인간임을 스스로 알았으니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다.

이야기가 있는 거리
‘이야기가 있어 걷고 싶은 거리’. 영월읍내에 붙어 있는 긴 이름이다. 사실 여기는 ‘요리골목’이라고 편하게 불린다. 강원도의 많은 곳이 그렇듯 이곳도 1960~1980년대까지 탄광 호황을 누렸던 곳이다. 그 시절 탄광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주로 음식을 먹어서 ‘요리골목’이다. 광부들은 내일을 알 수 없는 생활을 했고 상대적으로 급여가 높았기 때문에 좋은 음식과 술이 그들의 낙이었다. 요리골목은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벽화와 조형물들을 볼 수 있다. 지방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벽화려니 하면서도 뭔가 꾸미지 않은 듯한 사실적인 느낌을 받는다. 이유는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이 모델이 되거나 화가가 되어 이 거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광부의 얼굴은 실제로 광부로 일하셨던 분이다. 이곳에 사는 할머니와 며느리도 등장한다. 요리 골목이라는 주제에 맞게 밥상보를 이미지화하거나 프라이팬으로 소품을 만들어 꾸미기도 했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는 시인의 친필을 시 조형물로 제작했다. ‘영월’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영화 <라디오 스타>의 두 주인공 또한 종합상가 벽화를 통해 만날 수 있다.

법흥사 토굴
법흥사 토굴

조금 출출해질 시간이다. 영월서부시장으로 들어가면 강원도 특유의 군것질거리가 넉넉하다. 메밀전병과 배추전은 기름냄새와 ‘치익!’ 하는 소리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테이크아웃도 할 수 있고, 마니아들은 택배로 보내 집에서 먹을 정도로 서부시장 매밀전병은 유명하다. 올챙이국수도 흥미를 끈다. 긴 면발이 아니고 올챙이처럼 동글동글 귀여운 모습이라 숟가락으로 퍼먹는다. 단순하고 개운하게 매끈거리는 면발을 즐기는 맛으로 딱 강원도를 닮았다.

법흥사 토굴

비사를 가진 곳, 관풍헌
영월읍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관풍헌이다. 이곳은 영월 객사의 동헌 건물로 조선 태조 7년에 객사와 함께 건립됐다.


이곳은 단종이 사사된 곳이기도 하다. 단종은 청령포의 홍수를 피해 이곳에 기거했다. 왕이 객사에서 지낸 것도 서글픈 일이지만 결국 여기에서 승하했으니 이런 비극이 없다. 1457년(세조3년) 10월24일, 왕방연이 가져온 사약을 받았는지, 자결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린 왕은 이곳에서 승하한다.

또 다른 사람은 김삿갓이다. 본명은 김병연으로 나이 20세에 이곳 관풍헌에서 열린 백일장에 참여한다. 재능이 비상했는지 여기에서 덜컥 장원을 했다. 그런데 자신이 지탄한 대상이 조부 김익순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그는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에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스스로를 단죄한 것이다. 이후 전국을 떠돌며 방랑생활을 했다. 삿갓을 써서 얼굴을 가리고 하늘을 보지 않으며 지낸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 비극이 시작된 곳이 이곳 관풍헌이다.

관풍헌은 대단한 볼거리는 아니다. 오히려 옛 건물이 덩그러니 남은 모양새가 주변 환경과 어색한 느낌마저 든다. 사연을 알아서 더욱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음 여행에 한가지 힌트를 준다. 영월에 다시 와서 단종을 따라가 봐야겠다. 또 다른 날에는 김삿갓을 따라가 봐야겠다. 이게 바로 여행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여행 정보]

영월 법흥사 가는 법
경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신림IC에서 ‘영월, 주천, 법흥사’ 방면으로 우회전 - 신림황둔로 - 신림터널 - 솔치터널 - 송학주천로 - ‘수주면, 법흥사’ 방면으로 좌회전 - 무릉법흥로


[대중교통]
영월시외버스터미널에서 [주천, 수주, 무릉,법흥] 방면 버스 승차 - 법흥사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법흥사: 검색어 ‘법흥사’ /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무릉법흥로 1352
영월시내: 검색어 ‘영월시외버스터미널’, ‘영월서부시장’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사자산 법흥사
문의: 033-374-9177 / http://bubheungsa.kr

영월관광
문의: 1577-0545 / http://www.ywtour.go.kr

● 음식
영월동강한우타운: 영월은 한우가 맛 좋기로 유명한데 생산량이 많지 않아 외지에서는 맛보기가 어렵다. 영월읍에 위치한 식당이어서 여행하다 식사하기에 좋다. 1층 셀프관의 경우 고기를 직접 골라 구입하고 세팅비는 따로 받는다.
1인 세팅비 4000원(중학생이상), 2000원(초등학생) / 곰탕 7000원 / 육회비빔밥 1만원
033-372-1552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안길 65 1동 / http://www.ydghanwoo.com

● 숙박
동강시스타: 리조트 안에만 머물러도 여행이 되는 산책로와 골프장, 스파 등이 있어 휴양 여행에 좋다. 투숙객을 대상으로 한 ‘별밤 걷기’ 프로그램이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예약문의: 033-905-2000 / http://www.cistar.co.kr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사자막길 160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