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발표한 가계부채 축소를 위한 대출규제와 미국 금리인상, 주택 공급과잉 논란 등 우려됐던 악재들이 부동산시장에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나마 대비할 시간이 남은 미국 금리인상과 공급과잉 문제와 달리 대출규제는 내년부터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집값이 폭락하는 등 부동산시장이 급속도로 냉각하지는 않겠지만 매수심리 위축은 불 보듯 뻔하다. 이를 근거로 전문가들은 지방 부동산시장과 고가 주택부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알맹이 또 빠졌다"… 실효성 있을까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없어 투기수요가 컸던 지방 부동산시장이 이번 규제로 매수심리 위축이라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며 "특히 전국 아파트 매맷값 상승을 올해 지방 부동산시장이 주도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충격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출규제로 내년부터 신규 주택구입용 대출,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 60% 초과 대출 전액, 같은 차주의 3건 이상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는 이자만 내는 기간을 최대 1년까지만 허용하고 1년 이후부터는 이자와 원금을 나눠 갚아야 하는 비거치식·분할상환방식이 적용된다.
지방 부동산시장의 충격이 예견되는 만큼 정부는 대책 시행 시기를 수도권(2월)보다 3개월 늦춘 내년 5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심리에 영향을 많이 받는 부동산의 특성상 지방시장에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함영진 부동산114리서치센터장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DTI가 지방에 처음 적용되다 보니 여파가 클 것"이라면서 "그밖의 지역에서는 대출 상환 부담이 큰 고가 주택이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이번 대책으로 가계부채가 줄어들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중도금 집단대출이 이번 대책에서 제외된 탓이다. 집단대출은 아파트 신규분양이나 재건축, 재개발아파트 입주(예정)자 전체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대출을 말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은행권의 집단대출은 104조6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은행권 주담대 383조3000억원의 27%에 달한다. 같은 기간 집단대출의 하나인 중도금대출은 41조6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8% 증가했다.
이번 대책에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집단대출이 수분양자 개인의 대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가계대출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집단대출에도 DTI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처럼 가계부채 증가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집단대출을 제외한 것은 사실상 신규 분양시장에는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다. 결국 가계 부채를 조정하면서도 분양시장의 호조세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의 속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가계부채를 조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의구심을 제기한다. 정부가 지난해 9월 가계 부채의 질적 개선을 명분으로 DTI와 LTV 기준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던 것과 이번 대책의 본질이 같아서다.
당시의 대책으로 올해 분양시장은 오랜만에 호황을 맞았으나 저소득층과 중소득층 대출이 크게 증가해 가계 부채의 질적 구조는 더욱 악화했고 공급과잉 문제가 불거지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게 나타났다.
◆이래저래 괴로운 '임차인'
일부 전문가는 기존 주택거래 둔화가 전체 분양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 했다. 실제로 이렇게 된다면 임차수요가 증가하고 집값 하락을 막으려는 임대인들이 전셋값을 올려 가뜩이나 심각한 전세난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미국이 최근 금리인상을 발표했으나 정부의 저금리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어서 전월세 전환 추세가 꺾이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매매수요가 임차수요로 돌아서면 전세수급 불균형은 현재보다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명동스타PB센터 부센터장의 의견도 같았다. 그는 "전세에 머무르려는 임차수요 증가는 전세 품귀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특히 내년 서울에만 재건축·재개발 이주수요가 6만가구에 달해 뒤따를 전세난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근 단기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매맷값과 전셋값 차이가 크지 않은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사들이는 방식인 '갭(gap)투자'가 유행해 이런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린다.
국토교통부의 월별 주택매매 거래현황 자료를 보면 외지인이 사들인 서울 내 아파트는 2012년 1만751가구에서 2014년 1만9165가구로 늘었다. 올해 들어 10월 말까지 2만6294가구에 달해 최근 3년 새 약 2.5배 급증했다. 이는 서울 인구가 2010년 이후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와 대비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셋값이 매맷값 수준으로 치솟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이를 이용해 투자에 나섰던 이들이 수익을 거두면서 '묻지마식' 투자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자칫 매맷값이 하락하기라도 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갭투자'로 사들인 주택 대부분은 전셋값의 매맷값 역전현상으로 집을 처분하더라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 전세'이기 때문이다.
장경철 부동산센터 이사는 "대출 억제→거래 경색→전세수요 증가의 악순환으로 전셋값이 가파르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전세와 매매가 서로 맞물려 부동산시장이 돌아가는 만큼 어느 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도미노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