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이 전 계열사 직원에게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A’를 업무용으로 지급했다고 가정하자. 삼성그룹 직원 수를 26만명(재벌닷컴 집계기준), 갤럭시A 가격을 50만원으로 단순 계산했을 때 삼성전자는 13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이는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할까.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대기업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제한하는 제도다. 대기업의 독점적인 경제활동을 줄이고 부(富)의 분배를 촉진하는 반면 사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반발에 부딪힌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앞의 사례는 일감 몰아주기가 맞지만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법제화해 추진 중이다. 그중 대표 정책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 과연 재벌가 부의 승계를 막을 수 있을까.
/사진=뉴스1 박세연 기자
◆재벌기업 ‘정조준’… 법 ‘비웃는’ 기업들
공정거래위원회가 조만간 일감 몰아주기의 첫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과거에도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규정은 있었지만 법령으로 제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앞서 국세청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기업의 지배주주가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줬을 때 총수 일가 개인에게 증여세를 부과했다. 국세청이 거둔 증여세는 2013년 1859억원, 2014년 1242억원이었다. 이중 대기업집단에 속한 총수 일가가 낸 세금은 각각 801억원(43.1%), 1025억원(82.5%)을 차지했다.
이어 공정위는 지난해 2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약칭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내부거래를 과도하게 한 기업에 시정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올해 1분기 중 그 결과를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조사 대상으로 알려진 그룹은 한화·현대·한진·하이트진로다. 예컨대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에게 전산회사 한화S&C의 지분 100%를 보유하게 한 뒤 다시 한화에너지의 최대주주로 만들었다. 한화S&C가 한화그룹 계열사의 전산업무를 독점하지만 오너 간접경영을 통해 공정거래법상 규제를 피한 것이다. 공정거래법은 지분의 간접소유, 즉 손자회사에 대한 매출을 내부거래에서 제외한다.
2012년 SK의 사례와 비슷하다. SK그룹 7개 계열사는 SK C&C에 시스템 관리 계약을 제공한 사실이 적발돼 과징금 346억6100만원을 부과받았다. 당시에는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가 없었으나 공정위 내부 규정을 이용해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한 첫 사례로 꼽혔다.
공정위는 조사 기업의 구체적인 목록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송상민 공정위 시장감시총괄과장은 “조사 결과는 9명의 공정거래위원 회의와 기업의 소명을 거친 후 나오기 때문에 미리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기업이 대외로 노출될 경우 기업활동이나 평판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두 법률 모두 대기업 계열사 중 지배주주 일가의 지분이 30%, 비상장사인 경우 20% 이상인 상황에서 내부거래 비중이 12% 이상이거나 금액으로 200억원 이상이면 일감 몰아주기로 규정한다.
문제는 기업들이 공정위 조사를 피하려고 내부규제 비중을 고의적으로 줄이거나 지분 매각, 분할·합병 등을 통해 법망을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경제개혁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가 계열사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그룹은 31개이며,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78개 중 27개 회사가 이 같은 방법으로 규제를 피했다.
실제 LG그룹 지주회사인 ㈜LG의 총수 일가 지분율은 2013년 31.3%였으나 2014년 지분 일부가 매각돼 29.84%로 낮아졌다. 이후 구본무 회장의 장남 구광모 상무가 친·인척 지분을 사들이며 지분율을 30.92%로 높였지만 0.92%만 처분하면 다시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내부거래 비율을 희석하거나 관련 없는 사업을 양수해 매출을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기존 일감 몰아주기 기업들은 규제를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비판했다.
◆“공정거래법 있으나 마나” vs “정부 요구, 무리”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바라보는 정부와 정치권, 재계의 시선에는 온도차가 존재한다.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 조사의 첫 성과를 높게 자평한 반면 정치권 일부에서는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고 비판한다.
여기에 기업들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무리하다고 반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법적 내부거래 비율을 맞춘 만큼 걸릴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지난 14일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규제 대상 회사의 내부거래 금액이 2012년 17조7000억원, 2013년 12조4000억원, 2014년 7조9000억원으로 지속 감소했다. 새로운 제도가 시장에 정착하도록 일관되게 법을 집행했고 가시적 성과를 시현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김기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정위가 효율성, 보안성, 긴급성이라는 기준을 두고 예외 사유를 폭넓게 명시했다”며 “이는 공정위가 규제할 수 있는 재량 범위를 축소하고 기업이 규제를 피해갈 수 있도록 틈을 마련해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의 예외조항을 살펴보면 기업의 소명이나 공정위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내부규제가 인정될 여지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효율성’과 관련, 현대차가 현대글로비스에 물류 계약을 제공하다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굳이 다른 기업을 선정하는 것은 효율 측면에서 떨어진다는 뜻이다. 즉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이 예외조항을 어떻게 기업이 소명하고 공정위가 받아들일지가 관건이 될 수 있다.
재계 상위 그룹의 관계자는 “총수 일가가 이익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감을 몰아준 건지 기업의 전략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를 엄밀히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했지만 정부의 정책에 일관성이 없어 기업에 피해가 가고 있다. 규제 기준을 맞추기 위해 효율성 있는 거래를 일부러 줄여야 하고 앞으로 더 줄여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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