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바닥입니다.” 국제유가가 떨어질 때마다 나온 분석이다. 2014년 상반기 100달러를 넘나들던 국제유가는 불과 1년여 만에 배럴당 20달러대에 진입했다. 국내에 시판 중인 생수보다도 싸다. 국제유가는 어쩌다가 이렇게 폭락했을까.


국제유가의 하락은 미국의 ‘셰일혁명’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셰일가스 채취기술 발전이 원유생산량 급증을 초래한 것이다. 여기에 미국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전략으로 금리인상에 나서 달러가 강세를 보인 점도 유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달러가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자 이번에는 중국 경기둔화에 따른 수요부진 우려가 부각됐다. 이에 국제유가는 다시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란의 경제제재가 풀리면서 유가는 최후의 복병을 만났다. 원유 재고량이 넘치는 이때 이란이 생산한 원유까지 가세함에 따라 가격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유가가 안정되기 위해선 공급을 줄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최근 사우디아리비아와 이란의 움직임을 보면 감산합의는 힘들어 보인다는 의견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다투는 사우디-이란, 기회 엿보는 미국


지난 1월16일(이하 현지시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이 주요 6개국과 지난해 7월 타결한 핵협상 의무이행 조건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들은 1979년 이후 37년간 지속된 이란 금수조치를 철폐했다. 인구 8000만명의 거대시장이 국제사회에 등장한 것. 세계는 기회의 땅이 열린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글로벌 원유시장은 두려움에 떤다. 원유매장량 세계 4위인 이란이 지금껏 수출하지 못한 한을 풀 듯 공격적인 가격인하로 국제유가를 낮추고 있어서다.

이란국영석유회사(NIOC)는 2월 이후 북서유럽 지역의 경우 배럴당 55센트, 지중해 연안국가는 15센트 할인 판매한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가격경쟁에 나서겠다는 선전포고다. 또 시장점유율 회복을 위해 앞으로 6개월 동안 하루 평균 100만배럴가량 생산량을 늘릴 방침이다. 이란의 2013년 이후 일평균 생산량이 250만~300만배럴인 점을 볼 때 기존보다 30% 이상 증산하는 셈이다.

가격인하 공세와 생산량 증가는 국제유가의 추가하락을 부르는 요인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차원에서 감산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수요가 부진했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가가 다시 100달러선에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도 OPEC 회원국이 일평균 생산량을 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OPEC 안에서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어서 감산합의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2일 사우디가 시아파 성직자를 처형하자 이란 시위대가 사우디 대사관에 불을 지르는 등 갈등이 극에 달했다. 사우디는 결국 이란과의 외교단절을 선언했고 공개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최근 베네수엘라가 국제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OPEC 임시회의를 요청했지만 성사될 가능성이 낮은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사우디와 이란이 화해하고 OPEC 회의가 열리더라도 실제 원유감산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글로벌 원유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OPEC이 감산에 나서면 유가가 오른다. 이 경우 미국은 높아진 가격에 원유를 팔 수 있고 생산을 늘릴 수 있다. 결국 OPEC은 줄인 생산량만큼 수입이 감소하면서 시장점유율에서 미국에 뒤질 것이다.

◆ 한동안 배럴당 100달러 ‘무리’

생산단가를 고려했을 때 현재 유가 수준은 사우디, 이란, 미국 등 모든 산유국에 손해다. 지난 1월20일 기준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26.55달러다. 글로벌 분석기관 등에 따르면 중동지역의 원유 생산단가는 배럴당 20달러 안팎이다.

특히 사우디는 자신들의 원유 생산단가가 배럴당 4.5달러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사우디의 재정상황은 계속 나빠지는 상황이다. 지난해 사우디의 재정적자는 980억달러를 기록했다. 유가 하락으로 수입이 지출을 감당하지 못한 탓이다. 이에 사우디는 세계 최대석유기업인 아람코의 상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막 시장에 진출한 이란은 시장점유율을 쟁취하기 위해 일종의 ‘출혈마케팅’을 전개한다. 이에 오랜 경제제재로 버틸 만한 체력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분석도 심심찮게 나온다.

미국의 셰일가스도 생산단가가 점점 낮아지지만 불안한 상태다. 낮아지는 유가에 셰일가스기업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며 원유생산이 감소세다. 하지만 아직 재고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해 공급과잉 우려가 단기간에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김재홍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미국 석유기업의 예상 현금흐름과 이자 및 자본 지출 간의 격차가 지난해 830억달러보다 증가한 1020억달러가 될 것”이라며 “더 많은 기업이 도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감산규모가 크더라도 내년까지 하루 재고가 70만배럴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공급과잉 해소는 불투명할 전망”이라며 “유가 하락세가 끝날 때까지 최대 1년6개월이 더 걸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분석도 엇갈린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JP모건, 바클레이즈, 메릴린치 등 주요 IB 8개사는 올해 국제유가가 31~47달러선에서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기존에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던 JP모건은 시각을 바꿨다. 마르코 콜라노비치 JP모건 선임연구원은 “올해 연말쯤 국제유가가 현재의 두배 수준인 배럴당 6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반면 스탠다드차타드(SC)는 “달러화와 채권 등 다른 자산가치 변동에 따라 국제유가가 움직인다”며 “배럴당 10달러대에 이르기 전까지 유가 하락세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