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가장 지치는 요일은 한주의 중간인 수·목요일이다. 그러나 최근 새로 시작한 수목드라마 덕분에 기다려지는 요일이 됐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송혜교와 제대 후 첫 출연인 송중기의 만남으로 기대가 쏠린 KBS 2TV <태양의 후예>, 오랜만에 드라마로 복귀한 배우 정지훈과 이민정을 만날 수 있는 SBS <돌아와요 아저씨>가 같은 날 첫 방영을 시작한 것.
/사진=뉴시스DB
특히 <태양의 후예>는 국내에선 흔치 않은 100% 사전제작드라마로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 드라마는 TV 화제성 전문분석기관이 드라마 방영 3개월 전부터 실시한 사전반응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했다. 첫 방송 이후 시청자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드라마 화제성 점유율 22.9%로 주간순위 1위를 차지했다.
100% 사전제작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화제성만큼이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첫회(2월24일)의 시청률이 닐슨 코리아 기준으로 14.3%, 2회는 15.5%를 기록하는 등 기분 좋게 출발했다.
◆국내 사전제작드라마, 흥행 참패
드라마 사전제작은 드라마를 마지막회까지 모두 촬영한 후 방영하는 시스템이다. 드라마 방영 전 모든 제작이 이뤄지는 만큼 배우와 제작진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촬영과 편집을 할 수 있어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이 시스템이 생소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은 대부분 사전제작으로 드라마를 완성한다.
국내에서는 드라마를 100% 사전제작하기보다 초반 2~4회만 미리 제작한 후 방영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시장에 사전제작이 보편화되지 못한 이유는 시청률 때문이다. 드라마가 예상보다 인기를 끌 경우 내용을 늘려 연장 방영하거나 반대의 경우 조기 종영해 드라마가 허무하게 끝나는 경우도 있다.
현재 국내 드라마의 제작환경은 부족한 점이 많다. 물론 시청자의 반응과 소통을 살피며 최대한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를 만들고자 하는 제작진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현재의 제작환경에서는 완성도 높은 사전제작 드라마를 기대하기 어렵다. 인기 있는 드라마도 방송하는 날 대본이 겨우 나오거나 편집이 완성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러닝타임 50~70분에 이르는 드라마를 매주 2편씩 내보내야 하는 방송시스템 때문에 드라마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한류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한국드라마의 시청층이 국내에서 해외로 확대됐다. 따라서 투자규모가 큰 블록버스터급 드라마가 자주 등장하는 등 한국드라마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제작시스템은 이에 못 미친다. 최근 종영한 tvN <응답하라 1988>의 경우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한주 결방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드라마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이 먼저 나서서 사전제작시스템으로 전환하기를 원하는 실정이다.
해외업체들도 국내드라마의 사전제작에 뛰어들었다. 미국드라마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의 제작사인 스카이바운드가 한국제작사와 공동으로 드라마 <5년>을 제작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도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옥자>에 5000만달러(579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조만간 한국드라마를 직접 제작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국내에서도 사전제작시스템을 도입한 드라마가 있었다. 2006년 멜로드라마의 정석을 보여준 SBS <연애시대>, 2008년 주진모·박지윤 주연의 SBS <비천무>, 2010년 6.25전쟁 속 사랑을 그린 MBC <로드넘버원> 등이 사전제작됐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저조한 시청률로 흥행에 실패했다.
◆중국시장 노린 사전제작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없음에도 <태양의 후예> 제작진이 사전제작시스템을 차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히트작 메이커인 작가 김은숙 등 제작진과 작품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 사전제작이 가능했지만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13억 인구의 거대시장인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전제작을 선택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드라마를 각 회별로 심의하지 않고 드라마 전체를 한꺼번에 심의한다. 이전까지는 자체 심의가 허용됐던 중국 온라인 동영상사이트를 통해 국내 드라마가 중국 시청자에게도 바로 전해졌지만 얼마 전 중국의 법령이 바뀌었다.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지난해 1월부터 TV방송에만 적용했던 사전심의제를 인터넷까지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중국에서 드라마를 상영하려면 6개월 전에 프로그램 방영계획을 보고하고 3개월 전에 작품 전체심의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중국시장을 공략하려면 100% 사전제작시스템을 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태양의 후예>는 드라마 방영 전에 중국에서 전체 승인을 받았다. 현재 <태양의 후예>는 한국과 중국의 동영상사이트 ‘아이치이’를 통해 동시에 방영된다. 아이치이는 중국 최대포털 바이두가 엔터테인먼트·콘텐츠 관련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지난달 중순 지분 100%를 인수한 업체다.
드라마가 사전제작돼 중국에 원활하게 진출하고 인기를 얻는다면 자연스레 돈도 따라올 것이다. 드라마 총매출액에서 제작비·해외판권수수료 등의 비용을 제외한 이익은 공동투자자와 제작사가 나눠 갖는다. 이번 <태양의 후예> 제작사 NEW의 경우 총제작비 130억원을 기준으로 전체 매출 190억원과 총투자이익 30억원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드라마가 사전제작되면 제작사가 수익을 크게 챙길 수 있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한 작품에 제작과 투자를 같이 했다가 흥행에 실패하면 위험부담은 그만큼 커진다. 만약 작품에 부정적인 논란이 발생할 경우 한국드라마와 한국콘텐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부담도 있다.
그럼에도 100% 사전제작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흥행에 성공하면 제작사인 NEW뿐만 아니라 다른 제작사에도 사업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투자자 관점에서 앞으로 NEW를 주목해야 한다. 또 최근 <응답하라> 시리즈에 이어 <시그널>, <치즈인더트랩> 등 내놓는 작품마다 화제를 일으킨 콘텐츠의 강자 CJ E&M도 드라마 제작환경의 변화 속에서 주목해야 투자 종목으로 꼽힌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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