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둘러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까. 검찰이 롯데그룹에 대한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하면서 신 회장 최측근으로 꼽히는 ‘1세대 롯데맨’들의 입에 이목이 쏠린다. 이들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그룹을 일굴 당시 최측근으로 분류되며 그림자 역할을 수행하다 신 회장 시대가 본격 개막하면서 주요 요직을 꿰찬 인물들. 이들은 신격호의 남자에서 신동빈의 남자로, 검찰이 주목하는 롯데의 심장 ‘정책본부’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소진세 롯데그룹 대외협력단장, 황각규 롯데정책본부 사장,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왼쪽부터). /사진=뉴스1 이광호, 고성준, 송원영 기자, 뉴시스 장세영 기자

◆ 롯데의 심장 주무르던 ‘3인방’ 
검찰과 재계에 따르면 이번 롯데그룹과 관련된 횡령과 배임, 비자금 의혹 정점엔 그룹의 경영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가 있다. 2004년 신 회장이 만든 뒤 롯데의 70여개 계열사의 재무투자 등 핵심 경영활동을 보고받고 조율하는 등 그룹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그 중요성만큼이나 신 회장의 관심도 남다르다. 정책본부를 주무르는 핵심자리에 신 회장의 측근들이 포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이 중에서도 정책본부장인 이인원 부회장과 운영실장 황각규 사장, 커뮤니케이션실장 겸 대외협력단장 소진세 사장 등 3명의 역할에 주목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의 심장격인 정책본부가 신 회장의 디딤판이었던 만큼 롯데경영과 관련된 모든 사항에 이들 3인방이 모르는 일이 없다고 보면 된다”며 “그룹 안팎에서는 이들을 신 회장 가신그룹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이들이 걸어온 길은 곧 롯데의 역사다. 이들은 신 총괄회장이 롯데를 키울 당시부터 그룹을 성장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연히 내부사정에도 밝다.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그룹 내 2인자로 통하는 이인원 부회장. 그는 지난 40여년간 신 총괄회장을 보필하며 남다른 신임을 받아온 인물이다.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해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긴 후 10년 만에 롯데백화점 대표로 초고속 승진하며 주목받았다. 2011년에는 롯데 전문경영인으로는 처음으로 부회장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눈과 입 역할을 하며 신 회장이 2011년 회장이 된 후 지속적으로 진행된 세대교체 인사에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난해 롯데그룹 형제간 경영권 분쟁에서는 신 총괄회장에게 등을 돌리고 신 회장 편으로 돌아섰다.

이후 그룹 내 영향력은 더 강해졌다. 경중을 가릴 것 없이 그룹에서 발생한 모든 일은 이 부회장을 거쳐 신 회장에게 보고될 정도다. 따라서 검찰은 비자금 조성 배경에 신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면 이 부회장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황각규 사장은 그룹 내 ‘왕실장’, ‘신 회장 비서실장’으로 불리며 실세로 통한다. 일본 롯데에서 근무하던 신 회장이 1990년 한국으로 건너와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서 경영자 수업을 받을 때 부장으로 일하며 신 회장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1995년부터 정책본부 전신인 기획조정실에 몸담았다.

그는 롯데그룹의 해외 진출 사업과 M&A(인수합병)를 주도했다. 신 회장과 함께 2007년 대한화재, 2009년 두산주류(롯데주류) 등 30여건의 M&A를 진두지휘하며 롯데의 영토 확장에 기여했다. 특히 지난해 ‘왕자의 난’ 이후 신 회장이 발표한 지배구조 쇄신 방안도 그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이끄는 운영실 역시 그룹 계열사를 총괄하는 핵심 중 핵심으로 손꼽힌다. 검찰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다.

대외협력단을 이끄는 소진세 사장은 2014년 2월 롯데슈퍼 사장을 끝으로 경영에서 물러났으나 그해 8월 대외협력단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그룹 내 이미지 개선, 홍보, 대관 업무 강화 등을 맡고 있다. 제2롯데월드의 각종 안전사고, 롯데홈쇼핑 비리 문제 등으로 그룹이 위기에 처하자 신 회장이 직접 그룹 내 마당발로 불리는 그에게 중책을 맡긴 것으로 전해진다. 위기 극복의 적임자로 신 회장의 ‘간택’을 받은 만큼 소 사장 역시 검찰의 칼끝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시스 임태훈 기자

◆ 그들의 입에 쏠린 눈…닫힌 입 열릴까 
재계는 이들의 ‘입’에 주목한다. 검찰이 롯데와 관련된 각종 비리를 파헤치려면 결국 이 3인방의 입을 열어야 한다는 관측이다. 이들의 협조가 곧 수사 성과를 결정지을 동력이자 롯데의 향방을 가를 변수인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주력사와 비상장 계열사 간 허위거래를 통한 매출 부풀리기, 일감 몰아주기 등에 이번 수사의 초점을 맞춘 만큼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정책본부, 특히 경영권 분쟁 이후 신 회장 체제에 힘을 실은 이들 3인에 대한 조사가 꼭 필요하다”고 전했다.

따라서 검찰의 압수물 분석과 실무자 소환이 마무리되면 바로 다음 타깃이 이들 3인방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의 역사를 함께 썼던 이들만큼 롯데를 잘 아는 인물은 없을 것”이라며 “이들의 입에 모든 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롯데그룹. 연이은 악재가 터지면서 신 회장의 셈은 더욱 복잡해졌다. 동시에 ‘신 회장의 남자들’의 수난도 끊이지 않는 모양새. 그들의 입을 통해 롯데 비리 실체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지 재계 안팎의 시선이 그들을 향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