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여행을 꿈꾸나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막상 여행을 떠나려면 생각보다 시간, 비용, 건강 같은 걸림돌들이 만만치 않다. 
인간에게는 일상의 정해진 틀을 깨고 자유롭게 떠나려는 본성이 있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여행을 선택하곤 한다. 어쩌면 익숙한 공간을 바꿔보려는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란 대게 책임이나 의무, 권태 따위에서 벗어나려는 충동에서 비롯한다. 참다운 여행은 공간의 변화에서 시작해 자신의 내면 변화에까지 이르게 마련이다. 힘든 여행에서 돌아온 뒤 어느새 또다른 여행을 기대하는 것 역시 여행의 매력 아닐까. 


일에 지쳐 휴식이 필요하던 때가 있었다. 짬을 내 지인들과 태국 방콕으로 여행을 떠난 때는 서울이 겨울로 접어든 지난해 11월말이었다.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공항에서 기다릴 때라는 이야기가 있듯 일행은 제법 쌀쌀한 날씨에 여름 옷차림을 하고는 아이처럼 들떠있었다.  

방콕은 관광, 휴양, 먹거리 등 여행의 재미를 골고루 갖춘 매력적인 도시라고 한다. 수완나폼 공항 앞에 줄지어 선 갖가지 모양과 색상의 택시만큼이나 방콕은 다양하고 화려한 매력으로 가득한 곳이다.


시장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야시장이 곳곳에서 열린다. 다양한 플리마켓은 물론 이색적인 수상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방콕의 리조트나 호텔은 한국인들로 북적이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리하는 식당도 많다.

방콕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찾아간 파타야는 세계인이 찾는 휴양지로 부족함이 없었다. 치열했던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병사들의 휴가지였던 작은 어촌이 내로라하는 휴양지가 됐다. 보트로 이동한 산호섬은 갖가지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이들로 북적였다.

묵었던 파타야 숙소는 탁 트인 전망이 아름다운 리조트였다. 짧게나마 오전 자유시간 동안 야외수영장 썬베드에 몸을 맡기고 멍하게 보낸 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마음을 비워가던 중에 장애 아동의 손을 잡고 산책 나온 한국인 청년을 만났다. 그는 장애인단체와 자매결연을 맺은 아이들의 아빠가 돼 함께 여행하는 봉사활동 중이었다. 

마치 친아빠처럼 다정하게 아이를 대했다. 정성을 다해 수영을 가리키고 유쾌하게 사진을 찍는 모습이 정겨웠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 함께 수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말이 조금 어눌한 아이는 세상을 모두 가진 듯 행복한 모습이었다. 수영을 마친 아이의 몸을 꼼꼼하게 닦아주는 청년의 환한 미소가 아름다웠다. 

당초 방콕여행은 나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유명하다는 코끼리쇼, 알카자쇼보다 장애 아동의 손을 잡고 온 한국 청년의 미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니….

여태껏 다닌 여행지에는 항상 볼거리와 먹을거리만 가득한 줄 알았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심히 지나친 아름다운 모습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주변을 돌아보면 팍팍한 생활에 치여 여행을 사치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다른 세상을 경험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특히 장애인에게 여행이 얼마나 절실한지는 말이다. 그러한 이웃들을 위해 소중한 여행 기회를 제공한, 따스한 손길을 건네 이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그들의 정겨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따스해졌다. 참다운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 글·사진=정경순 여행스케줄러(케이에스여행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