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패션의 성지’ 동대문이 위기다. 성장을 거듭해 온 동대문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라는 암초를 만난 것. 중국과의 갈등은 도·소매 구분 없이 타격을 입히는 중이다. 하지만 위기의 원인이 오로지 사드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머니S>가 동대문상권을 긴급 진단했다. 위기의 근본원인과 실태를 점검하고 해결책이 뭔지 짚어봤다.<편집자주>

잘 나가던 패션 메카. 한때 동대문 일대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쇼핑 1번지였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패션타운을 중심으로 각종 보세의류, 액세서리, 잡화 등의 매장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시장 어딜 가든 쇼핑하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 명성은 옛말이 됐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 랜드마크 시설이 들어서면서 쇼핑환경은 더 좋아졌지만 쇼핑객은 오히려 줄었다. 대형상가마다 빈 점포가 속출하고 그나마 문을 연 점포들도 손에 쥐는 돈이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 온라인에 밀리고 SPA에 치이고

동대문이 쇠락의 길로 접어든 건 2000년대 들어서다. 온라인쇼핑몰이라는 새로운 유통채널에 대처하지 못하며 빠른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싼 가격에 발품을 팔지 않고도 옷을 살 수 있는 온라인쇼핑몰을 상대할 별다른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

온라인시장이 활성화될수록 동대문을 찾는 쇼핑객 수는 현격히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제조사들이 동대문 디자인을 베껴 만든 뒤 더 싼값에 우리나라로 역수출하는 사례가 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다. 잘나가던 시절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했던 대형쇼핑몰들은 이때 직격탄을 맞고 쓰러졌다.


몇몇 쇼핑객들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인근을 지나고 있다. /사진=임한별 기자

동대문시장의 한 소매상인은 “당시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던 터라 상인들은 하나라도 점포를 더 내서 더 많이 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며 “그나마 온라인쇼핑 유통망을 확보한 상인은 살아남았지만오프라인 유통만 하던 상인은 겨우 자리만 보전하거나 동대문을 떠났다”고 말했다.
해외 자기상표부착방식(SPA) 브랜드의 공세도 소비층의 이탈을 불러왔다. 자라·H&M·유니클로로 대표되는 SPA브랜드들은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가격을 낮춰 국내 의류시장을 잠식했다. 동대문시장은 다양성과 가격경쟁력 모두 SPA브랜드에 밀리면서 성장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뒤늦게 중국산 저가의류를 수입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 했으나 오히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상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가격을 낮추려면 자본력을 갖추거나 디자인을 고르는 눈이 탁월해 특화된 가게를 운영해야 하는데 단기이익에만 급급하다 보니 전략적 대응에 실패했다”며 “거기서 거기인 듯한 매장 구성에 히트 아이템을 너도나도 복제해서 판매하는 식이니 구매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생산시스템의 균열도 동대문상권을 살리는 데 한계로 작용했다. 동대문시장의 가장 큰 강점이 기획·제조·판매가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디자이너가 오전에 원피스 디자인을 팩스로 넣으면 오후 3시에 샘플이 나오고 6시면 소량의 주문량을 너끈히 맞춰왔던 게 동대문시스템이다. 짧은 시간에 다품종소량생산을 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패션타운이었다.

동대문 시장 주변 상가들 모습.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산한 분위기다. /사진=임한별 기자

하지만 이런 공고한 시스템도 돈 앞에 무너졌다. 제품생산의 축을 담당했던 재단사, 패턴사, 미싱사 등이 저임금에 지쳐 다른 일자리를 찾기 시작하면서 생산인력에 비상이 걸린 것이 발단이다. 봉제공장과 생산인력에 배당되는 일감이 점점 줄면서 문을 닫는 봉제공장이 늘어났고 도매업체들은 더 싼 생산공장을 찾아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도매 봉제시장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한자리 수였던 봉제공장 공회전율이 최근 30~40%까지 치솟았다”며 “공임비는 그대로인데 일감은 돈이 안되고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다 보니 3~4개월 중 한달가량을 그냥 노는 셈”이라고 애석해했다.

이런 생산시스템 장애는 필요한 아이템을 공급받는 데 걸림돌이 됐다. 온라인 의류판매를 병행하는 한 상인은 “이번 겨울에 유명 연예인이 입고 나온 핸드메이드 코트가 유행해 제품 발주를 했는데 보름 이상 걸리다 보니 반품 취소율이 매우 높았다”고 말했고 동대문시장의 한 디자이너는 “독특한 디자인의 옷을 만들고 싶어도 생산여건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이라며 “어려운 디자인은 아예 배제하고 가는 편”이라고 털어놨다.

동대문 시장 주변 거리. /사진=임한별 기자

◆ 국내 소비자 무시하다 발등 찍혀
일각에서는 동대문상권의 몰락이 국내소비자를 외면한 동대문 상인들로 인해 초래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몇해 전부터 불어닥친 한류 열풍으로 외국인관광객, 그중에서도 중국인관광객(유커)이 많이 유입되면서 동대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듯했지만 이들만으론 동대문상권이 살아나기에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대학생 때 이후로 동대문을 찾지 않는다는 직장인 정모씨(30)는 “로드숍뿐 아니라 모든 점포가 중국어로 홍보하고 국내 소비자는 푸대접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며 “호객행위도 심하고 교환·환불을 거절당하거나 카드로 계산하면 현금가보다 5000원을 더 받는 등 고객을 호구로 아는 것 같아 더 이상 동대문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몸을 부딪혀야 오갈 수 있는 쇼핑몰 내부 구성이 고객의 피로도로 이어지고 복잡한 에스컬레이터로 고층건물을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함 역시 동대문시장의 한계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권컨설팅업체 한 관계자는 “단순히 외국인관광객 유입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문제 외에도 동대문상권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갖가지 불안정 요소가 있다”며 “다양한 유통채널 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고객 분석과 상권 이미지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동대문시장이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는 기반을 갖췄지만 현재로서는 자생력을 갖고 옛 명성을 되찾긴 힘들어 보인다”며 “정책적으로도 여러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이 역시 전망은 밝지 않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