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는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제한된 좋은 일자리를 놓고 구직자 간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고 좁은 취업문을 어렵사리 통과해도 ‘노동의 질’이라는 또 다른 벽에 부딪힌다. <머니S>가 고용 빙하기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위태로운 현실과 고군분투기를 조명했다. 또 독일·영국·일본 등 선진국의 일자리정책을 살펴보고 19대 장미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주요 대선주자들의 일자리 공약도 알아봤다. 나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고 뜨는 일자리도 소개한다.<편집자주>

# 2014년 말 충북 청주의 한 중소기업에 취직한 이동하씨(가명·30)는 지난해 중순 일을 그만두고 대기업 취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씨의 월급은 250만원가량이었으며 4대보험도 모두 적용돼 다른 중소기업에 비해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결혼하고 자식도 낳아야 하는데 자식을 낳더라도 이 소득으로 잘 키울 자신이 없다”며 “조금 늦더라도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청년 일자리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정부와 지자체, 대학 등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만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며 기업은 취업문을 좀체 열지 않고 설사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노동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15~29세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말 기준 9.8%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7.2%), 2009년(8.1%)보다 높은 수준이며 1999년 통계기준이 변경된 이래 역대 최고치다. 나아가 공식 실업통계에 잡히지 않는 청년층까지 포함하면 실업률은 더 높다. 이른바 ‘체감실업률’이라 불리는 ‘고용보조지표3’을 보면 지난해 체감실업률은 22.0%다. 10명 중 8명이 직장에 속해있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더 심각하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임금, 사회보험 가입률, 고용안정성 등의 격차가 커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고착화돼 단순히 실업률만으로 청년의 일자리 현황을 바라봐선 심각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사진=뉴스1 구윤성 기자

◆노동시장 이중구조, 구직단념자 45만명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달 10일 발행한 <월간 노동리뷰>(3월호)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60%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도 정규직 대비 65.4%다. 정규직 노동자가 시간당 1만원을 벌어들일 때 비정규직 노동자는 6500원밖에 못 번다는 뜻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가 각각 정규직 노동자, 대기업 노동자만큼의 돈을 벌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한다.

이처럼 노동시장은 크게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대기업·정규직-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대기업 노동자가 곧 정규직이며 중소기업 노동자가 곧 비정규직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크게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등으로 나뉘는데 문제는 중소기업 일자리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라며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일자리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해 지난해 말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에 따르면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정규직 비중이 높다. 지난해 8월 기준 300인 이상 사업체의 정규직 비중은 85.8%지만 1~4인 사업체의 경우 22.3%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5~9인 사업체 41.8% ▲10~29인 56.0% ▲30~99인 사업체 67.6% ▲100~299인 77.4% 등이다.

문제는 이들 노동시장 간 임금으로 대표되는 양적 차이뿐 아니라 사회보험 가입률 등 질적 차이도 심각하다는 점이다. 1·2차 노동시장 간 사회보험 적용률을 보면 같은 기간 국민연금 가입률은 정규직 96.4%, 비정규직 39.6%다. 건강보험은 정규직 99.1%, 비정규직 39.6%이며 고용보험의 경우 각각 84.7%, 38.9%로 분석됐다. 대부분의 정규직 노동자는 상해·질병·실업 등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국가와 사업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절반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셈이다.

퇴직금과 상여금, 시간외수당 적용률의 차이도 극심하긴 마찬가지다. 정규직의 경우 96~100%의 노동자가 퇴직금과 상여금을 받지만 비정규직은 35~38%만 받는다. 시간외수당 적용률도 정규직은 69.2%인 반면 비정규직은 20.0%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기업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은 아예 구직을 포기하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구직단념자 수는 44만8000명에 달했다.

◆소득격차 대물림, 기회불균등 심화

# 안선우씨(가명·29)는 대학 2학년이던 2010년 1학기 때 학교를 그만뒀다. 아버지가 무직인데 한살 어린 동생의 대학등록금과 열살 터울인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해야 해서다. 안씨는 택배,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5만~7만원을 벌며 가장 노릇을 했다. 현재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안씨는 결혼을 포기한 상태다. 자녀를 낳으면 자신이 겪은 가난을 물려줄 것 같아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고착화는 사회계층의 이동 가능성을 억누르기도 한다. 개인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저임금 노동자에서 고임금 노동자로 이동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부모의 직업과 소득이 자녀에게도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직업 및 소득계층의 세대 간 이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부모 소득이 1분위(하위 20%)일 때 자녀소득 역시 1분위가 될 확률은 21.2%에 달했다. 반면 부모 소득이 5분위(상위 20%)일 경우 자녀 4명 중 1명(25.2%)은 그대로 5분위가 되며 19.8%는 4분위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대물림 현상은 점차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청년층의 소득계층은 부모의 소득계층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아가 세대간 대물림 현상이 소득은 물론 직업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의 직업군이 자녀의 직업군 형성에 영향을 끼쳐 결국 소득격차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노동연구원은 “소득과 직업 측면에서의 계층 대물림 경향이 증가하고 있으며 부모 배경에 따라 기회불균등의 정도가 과거보다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이경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모의 경제적 격차에 따라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단계가 다를 수 있다. 예컨대 비정규직으로라도 빨리 일해야 하는 상황과 정규직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집안의 지원을 받는 상황은 출발부터 다르다”며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소득 연관성이 높은 이유”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