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는 인수위원회를 꾸릴 틈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된다. 별도의 준비기간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보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머니S>가 차기 정부에게 주어진 소명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모색했다. 또 가까운 미래 우리나라를 이끌 주역이지만 ‘N포 세대’라 불릴 정도로 희망을 잃은 청년들을 만나 청년문제의 냉엄한 현실과 해법을 들어봤다.<편집자주>
차기 정부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정치·경제·사회적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저출산·저성장·고령화 고착화로 장기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를 정상화하고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기업 의존도가 큰 기존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미대선을 야기한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끊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는 기업은 도태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시 부는 '경제민주화' 바람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3월21~27일 경제전문가 321명,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차기 정부에 바라는 단기·중장기 정책과제와 우선순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문가(49.8%)와 일반인(35.3%) 모두 ‘경제성장과 분배’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꼽았다. 이어 ‘노동·일자리’(전문가 30.2%, 일반인 28.1%)가 차선 과제로 지목됐다.
미래변화에 대응해 우리사회가 추구해야 할 목표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32.4%)과 ‘공정한 경쟁과 기회의 보장’(31.2%)을 강조했다. 일반인들도 ‘공정한 경쟁과 기회의 보장’(36.2%)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23.6%)을 꼽아 전문가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민 대다수가 경제민주화를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로 인식하는 셈이다. 불명예 퇴진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후보시절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하지만 당선된 지 1년 만에 경제민주화는 금기어가 됐고 그 자리를 창조경제라는 모호한 이론이 채웠다.
이에 따라 약간의 온도차는 있지만 주요 대선후보들 모두 지난 정부에서 미완으로 남은 경제민주화를 완성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주요 대선후보 중 유일하게 친기업적 경제정책을 제시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도 불공정거래 개선, 비리 재벌총수 사면 금지 등을 주장했다.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법안은 야당을 중심으로 이미 수십개가 발의된 상태다.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 선임 ▲전자투표제·집중투표제 의무화 ▲지주사 규제강화 등 상법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 관련 법안이 줄줄이 소관 상임위 심사나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다.
정·재계 안팎에선 19대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모멘텀을 확보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줄줄이 통과될 것으로 본다. 다만 기업지배구조 개편은 정부 주도로 진행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일정한 유예기간을 두고 각 기업별 상황에 맞춰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기업지배구조 개편은 경제여건과 효율성에 근거해 주주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 도입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경영관행 선진화를 원하는 국민의 요구를 잘 알고 있고 앞으로 선진국처럼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에 대한 감시와 견제역할을 하는 풍토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며 “지난해 말 도입된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기업의사결정 참여 유도 지침)에 따라 기업도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가능경영 위한 새 패러다임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단순히 이윤만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윤리경영, 환경, 인권보호 등을 통해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도 커질 전망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지속가능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국제연합(UN),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전세계 각국에서 확산 및 제도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입찰이나 계약상 새로운 유형의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출의존적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기업으로선 능동적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인지한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3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기업의 윤리경영, 환경·인권보호 등 사회적 책임에 관한 정보를 사업보고서에 기재해 공개하는 법안인 이른바 ‘기업 사회적 책임 공시법’을 통과시켰다.
대선 이후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사업보고서 제출대상 기업은 사회적 책임에 관해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항을 사업보고서에 기재할 수 있다.
유의동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은 “사업보고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부분이 언급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진일보하는 법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기업들도 인식을 같이 한다. 지난 2년간 형제·부자간 경영권 분쟁, 오너일가 횡령·배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 등 잇달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롯데그룹은 지난달 초 창립 50주년 비전 설명회에서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황각규 롯데그룹 경영혁신실장은 이 자리에서 “깊은 성찰을 통해 기업의 목표는 단지 매출 성장과 이익의 확대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30대 그룹 내 순이익 비중이 72%가 넘는 삼성·현대차·SK·LG 등 4대그룹도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경영 방향을 설정했다.
이를테면 삼성은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각 계열사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자율경영 강화로 투명성을 높였다. 또 지난달 말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해 지배구조개선 등 주요 경영사항을 심의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논의하는 역할을 맡겼다.
SK는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이해관계자 간 행복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도록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경제발전 기여는 물론 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해 사회와 더불어 성장한다’ 등의 내용을 정관에 담는 안건을 의결해 사회적 책임 강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면 장기적으로 기업활동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며 “기업 신뢰도가 높으면 갈등이 줄고 갈등해소 비용이 감소하면 결국 기업활동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