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신세계 등 대형 유통기업들의 복합쇼핑몰사업이 전국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최근 신세계가 부천에서 인근 지역 상권의 반발에 재차 부딪히며 백화점 신설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서울 상암동의 롯데 복합쇼핑몰 출점도 불투명한 상태다. 대기업 규제가 강해질 것으로 점쳐지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형 유통기업 내부에선 쇼핑몰 신규 출점 추진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감돈다.

◆신세계, 토지매매계약 4번째 연기


부천 상동 영상복합단지 조감도. /사진=부천시
부천시에 따르면 신세계 컨소시엄은 부천 상동 영상복합단지 내 관광∙쇼핑단지 3만7374㎡에 대한 2300억원 규모의 토지 매매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인근 인천시 부평구∙계양구 상인과 정치권 등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신세계 측은 지난 12일 부천시와의 토지 매매계약을 또 연기했다. 이번이 4번째다.
부천시는 신세계 측에 사업추진 의지를 확인하는 공문을 보낸 상태다. 사업이 무산될 경우 신세계 측에 115억원 가량의 위약금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가 토지매매 계약을 무기한 연기하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위약금 115억원은 신세계 컨소시엄이 부천시와 관광∙쇼핑단지 개발과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던 때 협약이행보증금 형태로 납부한 금액으로 땅값의 5%에 해당한다.

부천시 관계자는 “사업이 무산될 경우 협약이해보증금에 대한 귀책사유가 없다면 신세계에 환원되지만 귀책사유가 있다면 시 예산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신세계는 당초 7만6000여㎡의 부지를 부천시로부터 매입해 백화점뿐 아니라 대형할인매장인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복합쇼핑몰을 건립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근 인천 부평지역 소상공인들의 강한 반대로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복합쇼핑몰 건립계획은 사업에서 제외됐다.

단지 규모가 7만6034㎡에서 절반 가량인 3만7374㎡로 쪼그라들고 쇼핑몰 및 트레이더스가 제외되면서 신세계 측은 결국 복합쇼핑몰이 아닌 백화점을 건립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또한 지난해 10월 김만수 부천시장이 영상단지 개발계획 축소·변경을 신세계 측에 요구하면서 지금까지 아홉차례에 걸쳐 재협상을 진행, 최종 합의에 이르게 됐다. 합의안에 따라 만화·기업단지는 53%로 확대된 반면 쇼핑·상업단지는 17%로 축소됐다.

인천 부평 상인들이 부천시청 앞에서 신세계 컨소시엄의 계약중단과 백화점 입점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사진=박효선 기자
신세계 측이 인천 부평구를 직접 찾아가 사업 추진의 시급함 등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인근 상인들의 반대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인천시 상인단체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부천·삼산 신세계복합쇼핑몰 입점 저지 인천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부터 부천시청 앞에서 신세계의 계약중단과 백화점 입점 철회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현재 상인들은 부천시청 앞에서 교대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인천 부평구 중소상인들은 “부천 상동 영상복합단지 내에 쇼핑몰이 입점하면 반경 3㎞ 안에 밀집한 인천 부평 전통시장, 상점가 등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신세계 측은 조심스런 입장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당초 계획했던 복합쇼핑몰 형태가 아닌 백화점으로 업태를 바꾸고 규모도 절반으로 줄였지만 사업 추진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인근 상인 분들과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구하고 협의할 시간이 더 필요해 토지 계약 체결을 연기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밖에 신세계 광주 복합쇼핑몰도 지역 상인들의 반대와 정치 쟁점화로 건립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신세계가 지역 상인들과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채 ‘이마트타운 연산점’ 영업등록을 계속 보류하고 있다.

◆롯데, 상암동 쇼핑몰 건립 인허가 지연에 서울시 소송

롯데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인근 롯데 쇼핑몰 건립이 4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지난 2013년 4월 서울시가 마포구 상암동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인근 부지 2만644㎡를 판매·상업시설 용도로 롯데쇼핑에 1972억원에 매각했지만 쇼핑몰 건립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어서다. 인근 시장 상인들의 반대가 거세지면서 서울시의 인허가 결정은 계속 미뤄졌다.

급기야 롯데는 최근 서울시를 상대로 ‘서울시 도시계획 심의 미이행에 따른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당초 롯데는 이 부지에 올해 백화점과 영화관, 업무시설,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이 결합된 대규모 복합쇼핑몰을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결국 롯데 측이 대형마트와 SSM(기업형슈퍼마켓)을 입점하지 않기로 한발 물러섰지만 상인협회 측에서 ▲3개동의 쇼핑몰 중 1개동을 비판매시설로 만들라 ▲하나로 연결된 지하층을 3개로 분리하라 등 또 다른 조건을 추가로 제시했다.

이후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상생협의는 지지부진해졌다. 롯데 관계자는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애초 해당 부지를 상업시설 용도로 비싸게 팔아놓고 무리한 지역 상인들의 주장을 수수방관하는 서울시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쇼핑몰 3개동 중 1개동을 비판매시설로 만들라는 것은 사실상 사업을 포기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복합쇼핑몰 사업 곳곳 표류… 소상공인 보호 정책 딜레마

이처럼 전국 각지에서 대형 쇼핑시설 건립 및 계약이 지연되는 가운데 앞으로 신규 쇼핑몰 출점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출점에 반대하는 상인들과의 공방이 불가피해지면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서다. 유통업계 전반적으로도 논란을 일으킬만한 신규 투자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골목상권을 살리려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오히려 지역 간 갈등만 낳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보통 시의 요구로 쇼핑몰 출점을 추진하게 되는데 이는 '골목상권 보호'를 천명한 새 정부의 정책방향과 충돌하는 면이 있다”면서 “인근 지역 상인들의 반대는 해당 지역 주민들과의 대립으로도 번진다”고 꼬집었다. 이어 “협의만 지체되고 있어 이를 명확하게 중재해줄 역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골목상권과의 갈등이 표면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새 정부가 상생의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