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업전략 수정을 예고했다. 석유 중심의 기존 사업구조를 배터리·화학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 김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딥체인지 1.0으로 짧은 여름과 긴 겨울의 ‘알래스카’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춘 만큼 이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경영전쟁터를 ‘아프리카의 초원’으로 옮기는 딥체인지 2.0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지만 경쟁력만 있으면 생존은 물론 성장에 제약이 없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미래를 도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배터리·화학 중심 '딥체인지 2.0'
딥체인지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성장 정체에 빠진 그룹 계열사의 위기 극복을 위해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주문하며 도입한 경영솔루션이다.
지난달 30일 김 사장은 김형건 SK종합화학 사장, 지동섭 SK루브리컨츠 사장, 최남규 SK인천석유화학 사장 등 SK이노베이션 계열사 사장단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열고 “차세대 먹거리로 배터리·화학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을 지속 성장이 가능한 구조로 변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딥체인지의 방향으로 ‘안하던 것을 새롭게 잘하는 것’과 ‘잘하고 있는 것을 훨씬 더 잘하는 것’ 두가지를 제시했다. 잘하고 있는 석유사업은 더욱 고도화하고 미래가 기대되는 배터리·화학사업은 집중적 투자와 M&A(인수·합병)로 빠르게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김 사장은 “성장 잠재력이 높은 배터리·화학분야를 집중 공략하는 딥체인지를 추진하겠다”며 “이를 중심으로 글로벌 선두 수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투자를 과감하게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앞으로 전기자동차를 포함한 배터리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적극 투자하기로 했다. 배터리시장은 지난해 25GWh에서 2020년 110GWh로, 2025년에는 350~1000GWh로 초고속 성장이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시장 상황 및 수주 현황을 반영해 생산량을 지난해 말 기준 1.1GWh 수준에서 2020년 10GWh로 10배가량 늘린 뒤 2025년에는 글로벌 배터리시장 점유율 30% 달성을 목표로 설정했다. 또 한번 충전으로 500㎞를 갈 수 있는 배터리를 내년까지, 700㎞까지 갈 수 있는 배터리는 2020년 초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화학사업은 현재와 같은 국내 생산 중심, 기초 화학제품 중심의 사업구조로는 제한적인 성장에서 탈피하기 어렵다고 봤다. 따라서 내수시장이 급격히 커지는 중국을 중심으로 소비지 중심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고부가가치분야인 포장재 및 자동차용 화학제품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바꿀 예정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M&A를 과감하고 지속적으로 실행할 계획이다. 이미 고부가가치 패키징분야의 기술과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다우케미칼의 EAA사업 인수를 진행 중이다.
기존 석유와 윤활유 및 석유개발사업은 글로벌 파트너링 확대를 통해 사업경쟁력 강화와 더불어 추가적인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딥체인지를 추진키로 했다.
석유사업은 동북아-동남아-중동을 연결하는 이른바 ‘3동시장’에서 생산-마케팅-트레이딩 연계모델을 개발하고 글로벌 파트너링을 통해 이를 구체화할 계획이다. 특히 동북아에서는 원유 공동조달 및 반제품 교환 등 수급분야에서 협력모델을 찾고 북미에서도 새로운 사업기회를 발굴할 예정이다.
윤활유사업은 고급 윤활유의 핵심원료인 그룹Ⅲ 기유시장에서의 글로벌 1위 시장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해 안정적인 성장과 함께 수익구조 개선도 추진할 방침이다. 그룹Ⅲ 기유시장은 2015년 420만톤에서 2025년 6300만톤으로 성장이 예상된다.
석유개발사업(E&P)은 저유가로 수익성이 악화됐지만 저유가에서도 사업기회가 존재하는 만큼 전통자원은 베트남·중국 중심으로, 비전통자원은 북미에서 균형 잡힌 성장 기회를 모색하기로 했다.
김 사장은 “에너지·화학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플러스알파를 갖추겠다”며 “에너지·화학 중심 포트폴리오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위해 현재의 딥체인지도 새로운 딥체인지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파트너링으로 기존 사업 고도화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충남 서산시에 1.1GWh 규모의 전기차배터리공장을 갖고 있고 이 단지 내에 2.8GWh 규모의 제2공장을 짓는 중이다. 후발주자라 경쟁자인 LG화학이나 삼성SDI에 비해 규모가 작고 공장 증설도 늦지만 장점도 있다.
예컨대 서산공장 신규 생산설비 주요 공정에 고도화된 스마트팩토리 개념을 적용시켜 생산성 극대화가 가능하다. 또 원재료 투입부터 완제품의 검사 및 포장 공정까지 전 공정의 설비 자동화, 빅데이터 기반의 설비 운영 모델 고도화, 제조 운영 중앙관리시스템 등도 적용한다.
김 사장은 “그간 배터리사업을 다소 조심스럽게 추진한 측면이 있으나 기술력 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켰다”며 “지금까지 연습게임을 했다면 이제부터 본게임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글로벌 선두 배터리업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투자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1987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에 입사해 석유사업, 수펙스추구협의회 사업지원팀장 등을 담당한 전략통이다. 2015년 SK에너지 에너지전략본부장을 맡은 뒤 설비운영 효율화 등 다양한 수익구조 혁신으로 석유사업의 흑자전환을 이끌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3조20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규모 실적을 올린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를 통해 유가가 급락했던 2014년 말 8조원에 육박하던 순차입금을 1조원 미만으로 줄이는 재무구조 개선에 성공했다.
김 사장의 딥체인지 2.0이 순항 중인 SK이노베이션호의 가속도를 낼 새로운 엔진이 될지 주목된다.
☞프로필
▲1961년생 ▲서울대학교 경영학 학사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유공 석유사업기획부 ▲SK네트웍스 S모빌리언 본부장 ▲SK 물류서비스실 실장 ▲SK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 부문장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사업지원팀 팀장 ▲SK에너지 에너지전략본부 본부장 ▲SK에너지 대표 ▲SK이노베이션 대표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에너지 화학위원회 위원장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