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전시에 ‘한꿈이카드’가 발행될 때만 해도 대전은 ‘디지털 시티’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교통카드는 획기적인 상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2017년 현재 대전은 전국 광역시 중 교통카드 사용이 가장 불편한 지자체로 전락했다. 국토교통부가 추진 중인 전국호환교통카드 사업이 대전에서 지연되고 있어서다.
전국호환교통카드는 국토부가 ‘원카드 올패스’(One Card All Pass)를 표방하며 내놓은 선·후불교통카드다. 이를 도입한 지자체에선 카드 한장으로 전국 시내버스·지하철·기차·고속도로 요금을 낼 수 있다. 국토교통부가 전국호환교통카드 사업을 추진한 건 2013년이다. 지난 1일 새로 선임된 맹성규 국토부 2차관이 종합교통정책관 재직시절 만든 사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업추진 5년이 지나도록 대전에서 사용가능한 전국호환교통카드는 제한돼 있다. 티머니(한국스마트카드)와 레일플러스(코레일), 한페이(한페이시스)는 사용이 가능하지만 캐시비(이비카드)와 원패스(유페이먼트)는 이용이 불가능하다. 전국호환교통카드 사업이 지연되는 곳은 광역시 중 대전이 유일하다.
◆대전시 교통카드사업의 ‘이중구조’
이를 두고 업계에선 대전시 교통카드 주사업자인 A은행이 다른 사업자에 과도한 ‘시장진입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머니S> 취재결과 이 은행은 코레일과 한페이시스로부터 인프라 개발 명목으로 각각 2억원, 1억원을 받았지만 이비카드와 유페이먼트엔 4억50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A은행은 특히 2014년 11월 최초 협상 당시엔 12억5000만원을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머니S> 492호 <밥그릇 싸움에 시민 ‘희생양’> 참조)
해당은행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인프라 개발) 비용과 관련해 할 말이 없다”고 즉답을 피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지자체 관련 정책 담당자들은 대전시의 교통카드 사업구조가 복잡해 협상이 더디다고 분석한다. 교통카드업체 간 협의를 진행할 때보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협상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대전시는 2001년 지금의 A은행과 교통카드 사업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2년 후인 2003년 10월 A은행은 대전지역 교통카드인 ‘한꿈이카드’를 선보였다. 당시 대전은 한꿈이카드로 ‘교통 디지털 시티’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기대와 달리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A은행은 결국 2008년 한국스마트카드에 업무를 대행하기에 이른다. 또 2011년 ‘신 한꿈이카드’를 출시했다. 대전시와 A은행의 업무협약 계약체결 만료기간은 내년 8월까지다.
정부 관계자는 “A은행이 대전지역에서 교통카드사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수료 수익 때문일 것”이라며 “한국은행의 ‘동전없는 사회’사업 추진으로 교통기능은 물론 가맹점 사용처가 늘어날 텐데 여기서 수수료 이익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실제 사업을 영위하는 건 한국스마트카드인데 정식 사업자는 A은행”이라며 “이중체계를 거치다 보니 다른 지자체보다 (전국호환교통카드) 협상을 진행하는 데 오래 걸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지역 교통카드사업자의 무리한 개발비용 요구로 대전 지역 시민만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대전시민은 다른 지역과 달리 교통카드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다른 지역 캐시비나 원패스 사용자는 대전에서 이용이 불가능하다.
사업이 계속 지연되면 대전시민의 역차별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국토부가 그리는 전국호환교통카드사업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각 지자체에서 서로 다른 교통카드로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고 2단계는 철도(코레일)·고속도로 하이패스 적용, 3단계가 고속·시외버스에도 카드사용이 가능토록 하는 것이다. 대전의 경우 아직 1단계조차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 셈이다.
/사진제공=대전시
◆한국스마트카드가 협상 주도권자?
그렇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정부와 지자체업계는 A은행뿐 아니라 한국스마트카드에도 책임이 있다고 꼬집는다. 먼저 A은행과 한국스마트카드의 이해관계를 살펴보자. 한국스마트카드는 신 한꿈이카드를 제작하고 정산체계를 운용한다. 한국스마트카드가 대전지역에서 교통카드로 수익을 올리면 A은행은 수익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 구조다.
두 회사 입장에선 새로운 사업자가 대전시에 진입하는 게 달갑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이비카드는 교통카드시장 점유율 35%를 차지해 한국스마트카드(점유율 55%)의 최대 경쟁사로 꼽히는 곳이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와 교통카드사업자 관계자는 한목소리로 한국스마트카드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스마트카드 측은 대전시 교통카드 사업자의 대행업체여서 협상 능력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실질적인 주도권을 이 회사가 쥐고 있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협상테이블에서 은행은 거수기 역할만 한다"고 귀띔했다.
시장진입비용을 업체별로 다르게 책정한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A은행은 한페이시스로부터 1억원만 받고 대전지역 인프라를 공유했다. 대신 한국스마트카드는 한페이시스의 도움으로 광주지역에 진출했다. 한페이시스는 한국스마트카드와의 협상을 통해 서울과 대전지역에 물꼬를 텄고 한국스마트카드는 한페이시스와 연계해 광주지역에 터를 잡은 셈이다. 만약 공식적인 사업주체인 A은행이 주도했다면 굳이 한페이시스에 서울과 대전시를 내줄 리 없는데 사실상 이를 주도한 곳이 한국스마트카드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스마트카드는 한페이시스를 경쟁사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대전과 서울을 열어주는 것보다 광주에 진출하는 게 더 큰 이익일 것”이라며 “이는 곧 사업주도권이 한국스마트카드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스마트카드 관계자는 “따로 공식 입장을 내긴 어렵다”며 “현재 대전지역에서 다른 사업자들과 긴밀히 협상 중”이라고 해명했다.
A은행 관계자는 “사업주도권은 우리에게 있다"면서 "다른 (교통카드)사업자와 원활하게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해명했다.
<머니S>(www.moneys.news) 제49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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