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저성장의 파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국경제가 자동차업계에 거는 기대가 크다. 미래 모빌리티 혁신으로 성장동력을 마련해 저성장을 극복할 원동력이 되길 기대한다. 하지만 정작 달려야 할 자동차업계는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대내외적 악재가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당장의 위기가 미래를 생각할 여력을 주지 않는다. 지난 4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자동차업계 간담회가 열린 배경이다. 정부는 자동차업계가 어떻게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갈 것인지를 묻고 업계는 당면한 위기상황의 해결책을 요구했다.

◆ 가장 큰 불확실성 '통상임금' 
이날 간담회에는 유달리 많은 언론의 이목이 집중됐다. 신임장관과 업계 실무대표자들이 처음 만나는 자리에선 의례적이고 희망찬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면한 위기가 중대한 만큼 간담회 분위기는 긴장감 그 자체였다.

이날 간담회는 백 장관의 다소 의례적인 인사말까지만 공개됐다. 백 장관은 “최근 우리 자동차산업이 대내외 여건 변화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며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새로운 혁신성장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비공개로 진행된 자유토론에선 구체적인 위기상황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완성차 5개사 사장과 부품업계 대표 등 10여명이 참여한 자유토론은 당초 예정된 시간을 30분가량 초과할 만큼 열띤 이야기가 오갔다.


가장 큰 화두는 역시 ‘통상임금’이었다. 최근 기아자동차 노조가 제기한 임금소송에서 1심 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이 가진 의미는 크다.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금액을 모두 통상임금으로 산정할 경우 기아차뿐 아니라 완성차업계 전반의 임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완성차업계와 유사한 임금체계를 가진 부품업계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인건비 때문에 공장을 해외로 돌리는 상황이라 위기감이 더욱 크다.

실제로 이번 판결은 즉각적으로 업계 노사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모양새다. 르노삼성차의 경우 기아차 판결 전날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으나 판결 다음날 노조원의 찬반 투표에서 부결됐다. 박동훈 르노삼성차 사장은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과 임협 부결의 상관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최근 부임한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도 임금 상승을 우려했다. 카젬 사장은 “한국 자동차산업은 고정비 상승 등 난제에 직면했다”며 “균형 잡힌 노동 규제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자동차업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억울함을 지우지 못한다. 통상임금에 대한 규정이 확실치 않았던 상황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가 합의했고 이를 토대로 임금을 산정해 지급해왔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적용된다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면 이를 고려해 임금협상을 했을 것이란 게 자동차업계의 항변이다.

박한우 기아차 사장은 이번 간담회에서 “통상임금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고 건의했다. 정부가 나서 통상임금의 명확한 범위를 정하고 법제화해야 앞으로 합리적인 임금 산정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백 장관은 이런 주장에 공감대를 표시했지만 “통상임금은 범부처적으로 이야기해 국회와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지금 사드에 따른 문제, 미래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의 민관 기술개발 등을 업계와 함께 고민했다”며 “노후 경유차 관련 세제 혜택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오후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서울 자동차산업협동조합 대회의실에서 열린 자동차업계 간담회에서 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 자동차 범부처 협의체 마련
자동차업계는 이날 간담회에서 환경규제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최근 환경부가 도입을 1년 유예한 배출가스 국제표준시험방법(WLTP)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지급과 전기차 판매 확대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는 소극적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유럽 기준을 도입해 이산화탄소 등 배출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하는 등 업계에 필요 이상의 압력을 가한다는 주장이다.

환경규제 완화는 에너지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경유차 감축 등을 찬성해던 백 장관의 노선과 상반되는 요구다. 따라서 업계는 백 장관이 규제완화보다는 친환경차 생산장려를 위한 인센티브 정책으로 불만을 해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날 간담회에서 산업부 차원의 뚜렷한 대책이 언급되지는 않았다. 백 장관은 “환경문제는 환경부와 산업부, 국토부가 함께 논의할 사안이며 자동차 관련 범부처 차원의 협의체를 마련해 중장기 발전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사안이 산업부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는 사안이라 해결책에 대해서는 확언이 오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범부처 차원 협의체에서 앞으로 산업부가 적절한 대응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완성차업계는 ‘일자리 창출과 협력사 동반성장’에 대한 산업부의 요구에 화답했다. 특히 현대·기아차는 최근 중국시장 부진으로 인한 중국진출 협력업체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2500억원 규모로 부품업체의 금형설비 투자비를 일괄 선지급하는 상생협력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5~6년에 걸쳐 분할지급하는 부품업체의 금형설비 투자비를 일괄 선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부품업계의 유동성을 확보해 준다는 것. 르노삼성차와 쌍용차도 전기차 시장 선도를 위한 노력과 모회사 부품공급 주선 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5호(2017년 9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