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오른쪽)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산운용사 대표 등과의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금융위원회

정부 공약정책 중 하나인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도입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은행권에선 KB금융그룹이 은행, 증권, 보험, 자산운용 등 6개 계열사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키로 선언하면서 신한·하나·NH농협금융지주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검토 중이다.

그동안 은행권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공감하면서도 국내 금융시장에선 초기단계인 만큼 관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러나 이번 KB금융의 결정으로 증권, 보험업계에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확산될지 주목된다.


◆코드참여 예정자 60여곳, 연기금 참여 관건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기관투자가가 고객 돈을 제대로 운용하는데 필요한 행동지침을 일컫는다.

기관투자자는 특정 기업의 지분 5% 이상을 보유해 주요 주주가 된 경우는 물론 주식을 단 한 주만 갖고 있어도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이들이 소액의 지분만 보유했더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 지배구조 투명화에 나선다는 취지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9월 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내 기관투자자는 JKL파트너스, 이상파트너스, 스틱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신탁운용, 큐캐피탈파트너스, 오아시스매니지먼트가 등 6곳이다.

최근 기업지배구조원에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계약서 양식을 제출한 곳은 60여곳으로 크게 늘었다. 연말에는 코드 가입자가 세 자릿수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올 정도다.

관건은 큰돈을 굴리는 연기금의 참여 여부다. 연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경우 연기금의 자금을 굴리는 자산운용사나 자문사의 참여도 확대될 전망이다.

기업지배구조원은 기업의 본격적인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가 내년부터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600조원이나 되는 돈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이사장 인사가 미뤄져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점치기 어려워서다.

지난 7월 국민연금은 고려대 산학협력단을 '국민연금 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 용역 기관으로 선정했다. 연구기간은 5개월로 새 이사장 선임결과에 따라 도입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가장 깨끗하고 개혁적인 인사로 임명하고 주주권행사 모범규준(스튜어드십 코드)도 즉각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국민연금 차기 이사장으로 유력한 인사는 김성주 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다. 국민연금 임원추천위원회는 지난달 18일 3명의 이사장 후보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추천했고 김 전 의원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내정자로 확정됐다. 국민연금 이사장은 복지부장관이 임명·제청하면 대통령이 선임한다.

기업지배구조연구원 관계자는 “영국과 미국 등 외국계 기관투자자들도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준비절차에 관심이 높다”면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준비 중이고 금융권에선 KB금융이 참여의사를 밝힌 만큼 앞으로 자산운용사를 비롯한 금융회사의 참여가 더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대와 우려 교차, 정부 막강한 입김 우려


내년이 스튜어드십 코드가 본격화되는 원년으로 알려지면서 은행권에선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먼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기업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을 개선해 배당성향을 높이고 국내증시의 디스카운트(증시할인)현상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긍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스튜어드십 코드를 시행한 국가를 살펴보면 기업의 가치가 재평가돼 일제히 주가가 상승했다. 영국은 FTSE100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이 30배로 코드 도입 전(16배) 보다 90% 증가했고 네덜란드와 남아공 역시 도입 이후 각각 60% 늘었다. 반대로 증시의 COE(요구수익률)은 영국이 5%에서 4%, 일본은 6%에서 5%, 대만 8%에서 6%로 낮아져 디스카운트 요인이 완화됐다.

기업의 배당성향도 높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후 FTSE 250지수의 배당성향은 2010년 48.5%에서 지난해 말 60.0%로 11.5%포인트 개선됐다. 배당 수익률은 2.4%에서 2.8%로 0.4%포인트 늘었다.

은행권은 양호한 실적 대비 저평가된 주가, 낮은 배당수익률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은행주는 8월 부동산 대책 등의 규제가 강화돼 7월 말 고점대비 큰 폭으로 하락한 상태다.

KB금융은 7월 말 6만원의 신고가를 경신한 후 9월 말 5만원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하나금융은 5만2000원에서 4만7000원, 우리은행도 1만9000원에서 1만7000원까지 떨어졌다.

은행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경영 투명성이 높아지고 주가도 상승하게 될 것”이라며 “내년부터 지주계열 금융회사가 코드 도입에 참여하는 만큼 지주사 주가도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경우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강해져 정부의 입김이 더 세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주주제안권에 해당하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높다. 스튜어드십 코드에는 이사 후보 추천과 이사 연임을 반대하는 의결권 행사가 포함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국내 4대 금융지주사 중 NH농협금융를 제외한 신한금융(지분율 9.55%), KB금융(10.28%), 하나금융(9.72%) 등 3개 지주사에 대해 모두 최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 7.45%의 지분을 보유해 21.37%를 보유한 예금보험공사에 이어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이 경영진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사외이사 인사를 추천할 경우 은행권은 자율경영에 간섭받을 수 있다. 2012년 국민연금이 하나금융에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려다 무산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은행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의결권 등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자본시장은 선진화 되지만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할 경우 낙하산 인사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며 “금융회사의 대규모 지분을 보유한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외부에 위임하는 등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