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LW컨벤션 센터에서 자동차 배출오염물질 저감을 위한 자발적 협약식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환경부
친환경차는 전세계적으로 환경규제가 강화되자 그 반대급부로 발전한 산업이다.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등 내연기관의 연소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물을 줄이려는 여러 규제는 궁극적으로 자동차산업의 방향성을 ‘제로 에미션’(zero emission)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과도기다. 현재 국적을 초월해 영업하는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크게 미국과 유럽의 기준으로 규제에 대응한다. 충분한 생산시설과 시장을 갖춰 국경 내에서 산업을 소화하는 중국의 경우 독자적인 규정을 제시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유럽과 미국이 선도하는 방향성에 따른다.
하지만 나라마다 규제 도입의 시기와 정도는 다르다. 또 산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선 속도 조절이 필수적이다. 적절한 규제의 도입은 기술개발 필요성을 자극해 미래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지만 너무 빠른 규제는 기존의 산업에 부담을 줄 수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규제 도입시기를 놓고 정부와 기업이 갈등을 빚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 완성차업계 “규제 너무 빠르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최근 국제표준중소형차시험방식(WLTP)이라는 난제에 골머리를 앓았다. WLTP는 자동차의 배출물과 연비 등을 측정하는 표준 시험방식이다. 국제연합 유럽경제위원회(UN ECE) 내 자동차 국제표준화포럼(WP29)이 주도해 개발했다.

특히 2015년 발생한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이후 국제사회에서 WLTP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폭스바겐의 디젤 배출가스 조작이 틈새가 많은 유럽의 NEDC(New European Driving Cycle) 방식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 일정한 속도의 주행을 가정하는 단순한 측정방식 때문에 시험모드를 인식한 완성차업체들이 이른바 ‘임의설정’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폭스바겐뿐 아니라 많은 브랜드의 자동차가 실제도로 주행조건에서 NEDC측정값 대비 수배의 배출가스를 뿜어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WLTP는 NEDC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한다. 주행시험 시간을 늘리고 가속과 감속 패턴을 다양화해 엔진사용영역을 확대한 게 특징인데, 이를 통해 일정조건에서만 저감장치가 작동하도록 설정하는 꼼수를 막으려는 것. EU는 지난달부터 인증받는 신차에 이 방식을 적용한 상태다.


당초 우리나라는 EU와 동일하게 올해부터 신차에 WLTP방식을 적용하고 내년부터 기존 양산차량까지 확대할 방침이었는데 지난달 ‘1년간 일부유예’를 결정했다. 내년 9월부터 1년간 전년도 출고량의 30% 범위 내에서 기존시험방법을 적용한 차량도 출고할 수 있도록 한 것. 다만 이에 따른 질소산화물배출 증가량을 상쇄하기 위해 제작사의 자발적 저감 대책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 조치가 이뤄진 건 완성차업계의 적극적인 의견개진 덕분이다. 업계가 자발적으로 저감방안을 제시했고 환경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 유예를 강력히 주장한 업체는 쌍용차와 르노삼성차다. 이들은 기존안대로 WLTP 측정방식이 적용될 경우 기존 인증차종의 생산중단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했다. 특히 생산중단이 수백개에 달하는 협력업체 경영악화로 이어질 것이란 점을 들어 강력히 항변했다. 유럽에 활발한 수출을 하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WLTP 방식에 대한 대응이 끝난 상태고 가솔린차 위주로 라인업을 꾸린 한국지엠은 디젤차에만 적용되는 WLTP 방식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디젤차 위주 라인업을 가진 르노삼성차와 쌍용차는 경유차의 인증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적극 방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규제강화 못막는다… 지원 동반돼야

WLTP 도입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완성차업계의 고충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우선 WLTP도입을 더 이상 유예하는 게 불가능하다. 업계는 전면도입을 3년 유예한 일본이나 도입하지 않기로 한 미국과 비교했을 때 자동차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우려하지만 환경부 측의 입장은 완강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EU FTA협상 진행상황에 따라 3년 전부터 이 같은 내용을 미리 예고했다”며 “정부간 협정이 있는데 업체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앞으로 강화되는 환경규제가 산적한 점도 난제다. 대표적인 규제가 올해부터 신차를 대상으로 시행돼 2019년 전차종으로 확대되는 실도로 인증기준(RDE-LDV)이다. RDE-LDV는 실외도로주행 시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실내주행의 약 2배로 제한하는 실외도로주행 측정기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WLTP 대응과 RDE-LDV 대응이 별개인 것은 아니지만 제조사 입장에서는 두가지 테스트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모두 통제해야 하므로 시간이 촉박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평균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배출량도 2020년까지 1㎞당 97g으로 낮춰야 한다.

또한 가장 강력한 규제라고 볼 수 있는 전기차 의무판매제도 도입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커지는 상황이다. 전기차 의무판매제도는 각 제조사별로 판매량의 일정 비율만큼의 전기차를 생산할 것을 의무화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시행 중이며 중국은 2019년부터 각 제조사가 판매량의 10%를 전기차로 채울 것을 의무화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최근 자동차업계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이 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전달한 바 있다.

가시적인 도입계획이 발표된 것이 아님에도 업계의 우려는 크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현재 이산화탄소 규제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차 쿼터제의 도입은 중복규제”라고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규제와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는 “전기차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결국 친환경기술을 빠르게 갖추는 것이 제조사의 경쟁력”이라면서도 “정부는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니라 전기차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에너지 보급 등을 포함한 방향성을 정한 후 체계적으로 규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0호(2017년 10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