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살기 힘든 나라 한국. 전체 노인의 과반가량이 빈곤에 시달리고 행복한 노후에 대한 기대치도 낮다. 반면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고령사회를 겪은 선진국 중에선 ‘노인이 행복한 나라’로 평가받는 나라도 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머니S>가 노후 선진국의 특별한 노하우를 살펴봤다. 독일과 일본을 찾아 행복한 노후의 비결을 들었다. 또 전문가를 만나 이상적인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길을 물었다.<편집자주>
독일이나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 노후선진국으로 거듭난 데는 국가와 국민의 노력이 있었다. 국가는 수십년간의 투자를 통해 현재의 복지시스템을 만들어냈고 국민은 자신의 수입 40~50%를 기꺼이 세금으로 납부하며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힘을 보탰다. 결국 그들은 노후에 은퇴 전 수준의 경제적 혜택을 받으며 특별한 노후대책이 필요 없는 나라를 만들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여전히 국가와 시민단체, 국민은 '노후대책'이란 이름 아래 미래세대를 위한 복지방안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아니, 아직 건실한 복지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기초도 세우지 못했을지 모른다. 우리도 노후선진국처럼 복지가 일상으로 스며들 수 있을까. 이정숙 사단법인 선진복지사회연구회 회장을 만나 이상적인 복지국가를 위한 대안을 들어봤다.
◆“지역 커뮤니티 통해 복지보편성 전파해야”
이 회장은 선진복지를 국가와 국민이 함께 만든 노력의 산물이라고 정의했다. 그 노력 사이에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자리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정부지원으로 스웨덴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현지인들은 국가에 납부하는 세금이 다시 나에게 쓰일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정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수십년간 잘 다져진 것이죠.”
전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허구임을 깨달은 국민은 복지정책에 유독 민감하다. 증세가 있어야 복지도 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아서다. 복지정책이 실현되려면 증세가 필요하지만 국민은 증세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증세해 거둔 세금이 복지정책에 다시 쓰일 거란 확신이 없어서다. 이는 국가와 국민 사이에 불신이 깊게 자리한 결과다.
“복지를 위해 증세하면 국민은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투명하지 못한 정부를 만들어 놓은 국가의 책임이죠. 국회는 정치적인 이해논리에 따른 포퓰리즘성 정책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회장은 노후선진국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복지보편성을 꼽았다. 유럽은 시골과 도시 노인들이 받는 복지혜택에 차이가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농촌과 도시의 복지 격차가 크다. 그는 장기적인 복지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일단 복지보편성을 전국에 전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로당과 같은 지역기관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를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지역 복지커뮤니티가 상당히 잘 구축됐다는 점입니다. 아주 작은 시골마을의 노인기관도 중앙복지관과 연계돼 복지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만들죠. 우리나라에 이런 시스템을 적용하려면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지역복지관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로당만 해도 전국에 6만개가 넘지만 노인들의 친목도모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회장은 읍·면 단위에 분포된 지역 경로당과 정부가 협력해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도시 지차체에서 행해지는 노인을 위한 일자리정책, 교육프로그램, 여가활동, 봉사활동 등을 경로당에서 진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정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좋은 지자체의 복지정책이라도 몸이 아파 밖에 나갈 수 없는 노인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 있다. 최근 지자체별 '노-노케어' 등 찾아가는 복지가 활성화되는 분위기지만 전국 단위로 진행되는 사업은 아니어서 한계가 있다.
“대형복지관에 가보면 생각보다 복지혜택을 받는 노인이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복지를 복지관에 가야만 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병들어 집에서 아파하는 노인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습니다. 해외와 달리 대형 지자체 위주로 복지혜택이 재편된 국내에서는 그들을 위한 정책이 꼭 나와야 합니다.”
◆무조건 ‘노후선진국 따라하기’는 금물
이 회장은 해외와 달리 국내 복지정책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 인력문제를 들었다.
“장기요양관리사의 경우 독일은 2500시간 이상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일본은 2년간 교육을 받아야 활동자격을 얻습니다. 국내는 어떨까요. 교육이수시간이 200시간도 되지 않습니다. 인력이 워낙 부족해 급하게 관리사를 배출하려다 보니 교육이수시간 자체가 짧은 것이죠. 이는 결국 제대로 된 요양관리사를 양성하지 못해 부실관리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낳습니다.”
요양관리사에 대한 노인들의 그릇된 인식도 인력부족을 만드는 원인이다.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노인들은 여전히 요양관리사를 집안일을 도와주는 가정부 정도로 인식한다. 사회적으로 낮게 평가되며 요양관리사가 되려는 청년은 점차 줄어든다. 양질의 요양관리사가 나오려면 제대로 된 교육시간 이수와 관리를 받는 사람들의 인식개선이 중요한 셈이다. 이 회장은 복지선진국이 되려고 무조건 유럽 선진국이 행하는 정책을 따라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스웨덴만 해도 우리보다 국토가 몇배는 넓지만 인구는 5분의1 수준입니다. 세금도 그들만큼 낼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국가별 환경이 다른데 무조건 정책을 따라한다고 성공할 수는 없는 법이죠. 그보다는 우리에게 더 시급한 문제인 저출산을 해결해 장기적으로 노인을 부양할 인구를 늘리는 등 우리 실정에 맞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끝으로 그는 무조건 복지국가를 외치기 전에 국민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를 원하는 만큼 스스로 얼마나 국민의식과 책임감을 갖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후선진국은 정부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님을 국민이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단법인 선진복지사회연구회는?
2009년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됐고 이정숙 회장이 초대 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그동안 ‘한국 복지재정의 효율성 및 장기적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과제’, ‘취약계층 베이비붐세대의 노후 준비 실태와 정책과제’ 등의 주제로 세미나 및 토론회를 개최하며 복지정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해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1호(2017년 10월25~3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