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살기 힘든 나라 한국. 전체 노인의 과반가량이 빈곤에 시달리고 행복한 노후에 대한 기대치도 낮다. 반면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고령사회를 겪은 선진국 중에선 ‘노인이 행복한 나라’로 평가받는 나라도 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머니S>가 노후 선진국의 특별한 노하우를 살펴봤다. 독일과 일본을 찾아 행복한 노후의 비결을 들었다. 또 전문가를 만나 이상적인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길을 물었다.<편집자주>


일본 옛 수도이자 자연재해도 비껴가는 천운의 도시 교토. 진보성향이 짙으면서도 옛것을 그대로 지키는데 주력하는 철저히 계획된 도시다. 높이가 제한돼 이곳 주민들이 사는 가옥은 주로 단층 또는 복층 구조의 목조건물 양식을 띤다. 고층건물 대신 역사유물과 어우러진 전통가옥을 지키는 방식으로 보존과 성장을 동시에 꾀한다.

구불구불하고 고즈넉하게 형성된 거리는 시간을 돌린 듯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문화원형이 현재의 삶에 녹아들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구현한 모습이다. 이는 전통경관을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한 일본정부·교토시의 정책과 교토 주민들의 자발적 노력이 만난 결과다.


그래서 교토는 노년의 도시다. 노인이 살기 좋은 도시라는 얘기다. 한국 사회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으며 고령인구의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온 일본을 들여다봤다.


커피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사진=박효선 기자

◆현재를 즐기는 교토 노인들
교토의 한 커피숍에서 노인들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다. 삼삼오오 모여 있기보다는 혼자서 여유롭게 여가를 즐기는 노인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지하철에서는 노인들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거나 책을 꺼내 읽는다. 동네로 나오니 거리를 활보하는 노인이 많았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실버존’이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실버존(Silver-Zone)은 어린이 보호구역인 스쿨존(School-Zone)처럼 노인의 왕래가 잦은 곳에 지정하는 노인보호구역이다. 실버존이기 때문일까. 지나는 길 곳곳에 횡단보도가 설치됐고 이곳을 지나는 차량들은 속도를 줄였다. 폭이 좁은 도로에서도 사람들은 횡단보도 신호를 지켰다. 거리는 조용했다.


교토 거리의 실버존. /사진=박효선 기자

편의점에 들어서자 백발이 성성한 직원이 손님을 맞이했다. 40대로 보이는 점장의 지시에 머리가 희끗한 직원이 물품을 진열하고 치킨, 크로켓 등을 튀기며 계산까지 해내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고령화 현상이 일반화되면서 스스로 돈을 벌고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노인이 많아 보였다. 교토에 사는 재일교포 A씨(63)는 “일본 노인들은 집에만 있지 않고 활발한 야외활동을 즐긴다”며 “특정 모임을 갖고 사람들과 만나기보다는 개인적인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삶을 지속할 만한 경제력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노동을 이어가며 노후를 극복하려 한다”며 “교토의 경우 문화재 보존사업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보니 주로 이곳에 사는 노인들이 동원된다”고 설명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노인. /사진=박효선 기자

◆교토 문화재사업의 중요한 축
교토 관광지에서는 문화재 보수정비사업에 동원돼 구슬땀을 흘리는 노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교토로 수학여행 온 초등학생들은 문화재해설가 할머니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워 집중했다. 여성 노인들은 주로 문화재해설가로 나서거나 내부 청소를 했다.


교토시는 도시의 주인인 노인들의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민왔다. 문화재 보호차원에서 노인 일자리사업을 펴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문화재 해설가, 정비사업, 자연보호, 식재 등 다채로운 일자리를 제공한다.

또한 교토시는 주인의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독거노인 집을 직접 찾아가 일명 ‘쓰레기 집’(고미야시키)을 청소해준다. 노인이 현관 앞에 쓰레기를 내놓으면 알아서 처리해주거나 정해진 수거일이 아니더라도 별도의 쓰레기통에 미리 버리도록 돕는 식이다.

이는 단지 쓰레기 처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실상 고독사 방지 차원으로 풀이된다. 노인이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을 경우 직원이 직접 집안 상황을 확인하고 응답이 없으면 지자체 연락망을 활용해 보호자에게 알린다. 혼자 사는 노인의 안전을 위해 사회가 적극 개입하는 것이다. 이처럼 교토시는 고독사 예방정책을 쓰레기 배출 지원서비스와 병행한다.

◆일본 정부, 고령화 극복방안 ‘모색’

일본 사회 전반에 퍼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노인도 예외가 아니다. 교포 A씨는 “한국이라면 자녀들에게 기댈 수 있겠지만 일본엔 부모가 자녀 집에도 거의 찾아가지 않고 노후를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며 “연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마저도 갈수록 줄어들어 늘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일본 정부가 고령층 일자리 확대에 적극 나서는 이유기도 하다. 이를 통해 연금수급 개시시점과 은퇴시점 간의 소득공백을 최소화해 노인 빈곤문제를 줄이려는 것이다.

일본 국회는 2025년 이후부터 정년을 65세로 규정하는 새로운 고용안정법을 통과시켰다. 일본 기업들도 ‘단카이세대’의 노동력 활용을 위해 고령자들의 근무형태를 유연화하고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단카이세대는 ‘커다란 덩어리’란 뜻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7~1949년 사이에 일본에서 태어난 베이비붐세대를 말한다.

단카이세대가 모두 65세 이상 고령자가 된 지금, 그야말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장수대국 일본이 인류 역사상 초유의 실험을 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1호(2017년 10월25~3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