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원’(Just One).
‘히딩크, 우리에게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 삼성카드의 TV광고 속 문구다. 당시 이 문구는 유행어가 됐고 삼성카드는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하지만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이 같은 신용카드사의 이미지 광고를 볼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동계올림픽 개최까지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국내 카드사들은 올림픽을 활용한 마케팅에 나서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개최하는 대형 국제스포츠행사임에도 카드사의 마케팅이 소극적인 이유는 뭘까.
이낙연 국무총리의 성화 채화.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앰부시마케팅’ 제재 강화
카드사가 평창동계올림픽 마케팅에 소극적인 건 ‘앰부시마케팅’에 대한 제재가 강화돼서다. 앰부시마케팅이란 규제를 피해 마케팅을 벌이는 홍보수단이다. 예컨대 기업은 월드컵·올림픽 등 대형이벤트의 공식후원사로 참여하며 자사 마케팅에 대회 브랜드를 사용할 권리를 갖는다. 이때 공식후원사가 아님에도 해당 이벤트를 직·간접적으로 연관시켜 홍보하기도 하는데 이를 앰부시마케팅이라고 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SK텔레콤이 ‘붉은악마’를 활용해 마케팅을 벌인 예가 대표적이다. 당시 SK텔레콤은 배우 한석규와 붉은악마가 ‘오 필승 코리아’ 응원가를 부르는 TV광고를 내보내 회사 이미지를 한껏 끌어올렸다.
업계 한 관계자는 “붉은악마는 피파(FIFA)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그런데 붉은악마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월드컵을 떠올린다. SK텔레콤이 이를 잘 활용했다”며 “당시 피파 공식후원사는 KT였는데 SK텔레콤이 더 부각됐을 정도”라고 말했다. 피파 공식후원사가 아닌 삼성카드가 히딩크와 계약해 TV광고를 방영한 것 역시 앰부시마케팅의 예다.
하지만 이후 후원사의 반발이 커졌고 피파를 비롯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은 앰부시마케팅 제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고 공식후원사의 마케팅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카드사 관계자는 “과거 월드컵이나 올림픽 시즌엔 비행기 티켓과 경기입장권을 주며 시민원정대를 뽑았는데 지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리우월드컵 때도 메인스폰서(공식후원사)가 아닌 회사는 거의 마케팅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평창’ 단어 들어간 이벤트도 안돼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도 관련 제재가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모션 진행 시 올림픽 로고는 물론 ‘평창’, ‘올림픽’ 등의 단어조차 사용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평창올림픽 맞이 할인이벤트 진행’, ‘평창 소재 음식점 이용 시 포인트적립 두배’와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국내 카드사가 평창올림픽 브랜드를 활용해 마케팅을 벌이려면 국제브랜드카드사인 비자(VISA)를 통해야 한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올림픽 후원사는 총 5개 등급으로 나뉜다. 이 중 가장 높은 등급인 ‘월드와이드 올림픽파트너’(TOP)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평창올림픽 브랜드를 사용해 마케팅을 벌일 수 있는 글로벌 후원사다.
두번째 등급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공식파트너’는 국내에서만 홍보할 수 있는 로컬 후원사다. 글로벌·로컬 후원사 가운데 금융부문 후원사는 비자가 유일하다. 즉 국내 카드사가 올림픽 마케팅을 전개하려면 비자와 제휴해 비자가 마케팅의 주체가 되는 식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비자와 손잡고 올림픽 기념카드를 발급 중인 우리카드 관계자는 “올림픽 특화카드 관련 마케팅은 비자와 제휴된 상태라서 가능하다”며 “그러나 이외의 올림픽 관련 프로모션을 진행하려면 비자와 또 다른 제휴를 맺어야 할 뿐만 아니라 평창올림픽 조직위의 승인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자코리아 관계자는 “앰부시마케팅에 대한 제재가 강화돼 국내 카드사들이 과거처럼 독단적인 마케팅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며 “현재 우리카드, 롯데카드와 제휴해 올림픽 특화카드를 출시한 상태다. 추가로 카드발급·프로모션 등 마케팅과 관련해 논의 중인 다른 카드사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우리카드
◆특수 놓칠 수 없어 ‘고심’
국내 카드사는 제재를 피하는 우회로를 찾고 있다. 대형 국제스포츠행사인 평창올림픽의 특수를 놓칠 수 없어서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정부가 공을 들이는 가운데 평창과 그 인근으로 적잖은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올림픽 기간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다.
우리카드는 지난 7월 비자와 손잡고 출시한 올림픽 공식 기념카드로 특수를 톡톡히 누리는 중이다. 평창올림픽 로고와 마스코트 ‘수호랑’이 새겨진 카드 4종은 최근 30만장 발급을 돌파했다.
우리카드 관계자는 “신용카드 2종과 체크카드 2종을 출시했는데 그중 대한항공 스카이패스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수퍼마일카드가 인기가 높다. 보통 결제액 1500원당 1마일리지가 적립되지만 이 카드는 1000원당 최대 3마일리지가 적립된다”며 “비자와 또 다른 올림픽 후원사인 대한항공이 비용을 분담한 결과”라고 말했다.
다른 카드사들은 비자와 제휴해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방안과 더불어 앰부시마케팅 제재를 피하는 방법을 고심 중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앰부시마케팅 제재가 강화됐지만 카드사로선 이 기간 동안 마케팅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올림픽 개최가 다가올수록 각종 프로모션을 속속 선보일 것”이라며 “국제 3대 스포츠행사가 국내에서 열리는 게 2002년 이후 처음이다 보니 다른 카드사가 어떻게 진행할지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3호(2017년 11월8~1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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