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지난달 31일 이사회를 열고 대우건설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호반건설을 확정했다. 이날 매각 관련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윤종국(왼쪽부터) 산업은행 PE실 기업가치제고단장, 전영삼 자본시장부문장, 이종철 PE실장. /사진=뉴시스 김선웅 기자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에 한발짝 더 다가섰다. 인수 완료까지 갈 길은 멀지만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지분 매각 본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한 만큼 이변이 없는 한 인수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업계 순위, 매출, 브랜드 인지도 등 모든 면에서 대우건설이 호반건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런 대우건설을 호반건설이 품게 되자 여기저기서 뒷말이 무성하다. 또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두 건설사가 융합해 시너지를 낼지, 불협화음을 낼지 여부인데 현재로서는 불협화음에 대한 우려가 크다. 대우건설 직원들이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현까지 쓰며 이번 매각에 불만을 토로하기 때문이다.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경우 단순 매출 규모 상으로 업계 1·2위인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턱밑까지 근접하지만 늘어난 매출만큼 해결 과제도 산적했다. 호반건설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고 등 돌린 대우건설 직원들의 마음까지 품을 수 있을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단독 선정

호반건설의 대우건설 인수가 임박했다. 산업은행은 지난달 31일 이사회를 열고 호반건설을 대우건설 인수합병(M&A) 관련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날 매각 관련 기자간담회를 연 전영삼 산업은행 자본시장부문장(부행장)은 “매각대상지분(50.75%, 2억1100만주) 중 40%(1억6600만주)는 호반건설이 즉시 인수하고 나머지 10.75%(4500만주)는 2년 뒤 추가인수를 위해 산은 앞으로 풋옵션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매각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요 매각조건에 대해서는 호반건설과 상당 부분 일치를 봤다”며 “추가 인수조건 변경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산은이 호반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서 대우건설 매각은 속도가 붙었다. 산은에서는 매각 작업이 늦어도 올 여름쯤에는 마무리될 것으로 본다.

이종철 산은 PE실장은 “이달 내로 호반건설과 산업은행이 주요 매각 조건을 담아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라며 “MOU 이후에는 호반건설에서 대우건설에 대한 정밀 실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점을 특정할 순 없지만 이후에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예정”이라며 “늦어도 여름이 가기 전에는 잔금 납입을 비롯한 거래가 종료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10배 체급차이, 견뎌 낼까
호반건설의 대우건설 인수가 한발짝 더 가까워졌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우선 체급 차이다. 지난해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시공능력평가 순위에 따르면 호반건설의 시공능력평가금액은 2조4521억원(13위), 대우건설은 8조3012억원(3위)으로 4배 차이 난다.

매출규모로 따지면 지난해 호반건설은 1조2000억원인 반면 대우건설은 11조8000억원으로 10배 차이가 난다. 매출규모의 차이만큼 축적된 사업경험과 경영 포트폴리오 격차도 무시할 수 없다.

호반건설은 안정적인 국내 아파트 분양 위주의 사업을 영위하며 성장했다. 반면 대우건설은 국내외에서 토목, 주택, 플랜트, 부동산임대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며 브랜드 파워를 높였고 해외수주의 단골손님으로 이름을 올렸다.

대우건설이 국내외에서 축적한 다양한 규모의 사업경험과 인프라를 경험이 부족한 호반건설이 어떤 경영전략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호반건설이 탄탄한 현금성 자산을 갖췄지만 대우건설보다 큰 무대 경험이 부족해 경영에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불편한 동거, 불협화음 우려

아파트 브랜드를 어떻게 운영할지도 관심사다. 호반건설은 ‘베르디움’, 대우건설은 ‘푸르지오’, ‘써밋’을 보유했다. 호반건설은 전국 각지에 베르디움 아파트를 공급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는 푸르지오와 서밋에 한참 못 미친다.

대우건설의 경우 서울과 전국 각지에 푸르지오, 써밋 아파트를 공급하며 브랜드 파워를 키운 반면 호반건설의 베르디움은 아직까지 서울 입성을 못했다.

또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을 품을 경우 기존 베르디움 아파트 입주민들이 단지명을 푸르지오나 써밋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할 가능성도 크다. 집값에 민감한 아파트 입주민들의 단지명 교체 요구는 그동안 수차례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요구가 호반건설에도 빗발칠 경우 베르디움 브랜드의 존재감마저 불투명해질 수 있다.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을 인수해 독립경영에 나설 가능성도 크지만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베르디움 아파트 입주민에게 푸르지오 브랜드가 매력적인 집값 상승 요소라는 점을 무시할 순 없다.

매각 추진에 따른 대우건설 직원들의 동요와 불만 역시 호반건설에게 부담이다. 대우건설의 한 직원은 “자존심이 상한다”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로 몇 수 아래로 봤던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데 불만을 감추지 않는 데다 상당수의 직원들 역시 상실감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대우건설 한 관계자는 “어차피 매각 절차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너무 착잡하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대우건설 인수 작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불편한 동거를 꺼리는 대우건설 직원들의 동요는 벌써부터 심상치 않아 호반건설이 앞으로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머니S> 설합본호(제526호·제5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