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하우스라는 이름의 행사들이 있다. 집, 직장, 학교, 기숙사 등을 누구나 올 수 있게 개방한다. 서울 삼청동 과학책방 '갈다'에서 오픈랩을 몇달 열었다. 랩(Lab)은 보통 실험실을 이야기하지만 이론물리학자인 필자에게는 물리적 공간보다 연구그룹 모두를 포함한 '우리'의 의미다.

필자의 이름 두글자를 따서 언제부턴가 학생들은 우리 그룹을 'BJ랩'이라고 불렀다. BJ랩도 다른 랩과 비슷하다. 매주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다음 연구방향을 토론하는 랩미팅, 재밌게 읽은 논문을 발표해 소개하는 저널클럽이 있다. 필자를 쏙 빼놓고 학생들끼리 전공 책을 하나 골라 함께 공부하는 스터디그룹도 있다. 궁금하지만 불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개입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토론하고 싶을 때는 불쑥 연구실을 찾아오고 필자도 대학원생 연구실을 수시로 방문해 얘기를 나누곤 한다.


랩미팅을 공개했다. 통계물리학 이론그룹의 랩미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생생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매번 반복되는 실패의 과정이다. 랩미팅의 일상적 대화는 이렇다.

“교수님, 이렇게 해봤는데 안 돼요.”

“아, 그래? 그럼 한번 저렇게 해볼까?”


그리고 다음 미팅.

“그렇게 해봤는데도 안 돼요. 그래서 요렇게 바꿔서 해봤는데도 안 돼서 다음에는 조렇게 해보려고요.”

뭐, 이런 식이다. 그러다 가끔 듣는 성공의 소식도 “요로코롬 바꿔서 해봤는데 뭔가 보이는 것도 같아요. 확실치는 않고요” 같은 거다. 그리고 다음주면 다시 “지난번 결과는 아무래도 잘못 본 것 같아요” 같은 실패의 과정이다. 그러다 간혹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때가 있다. 물론 재현이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는 복잡해 보였던 이전 상황 전체를 이해하는 순간이 드물게 찾아온다. 이때의 느낌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아! 그 모든 것이 이래서 그랬던 거구나.”

혼돈의 안개를 꿰뚫는 명징한 햇살, 그리고 곧이어 모든 것이 투명해지는 순간을 맞는다. 이 기쁨은 다른 이가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와는 무관하다. 드물게 번개처럼 찾아오는 기쁨은 엄청난 중독성이 있다. 실패의 긴 사슬을 다시 시작하는 원동력이다.

몇번의 오픈랩 실험도 돌이켜보니 실패에 가깝다. 이렇게 해봤는데 잘 안 돼서 저렇게 해봤는데 그것도 역시 성공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필자는 다른 랩도 함께하면 좋겠다. 연락을 달라. 그럼 “이렇게”와 “저렇게”가 뭔지 알려드릴 용의가 있다. “한번, 요렇게 해보시죠” 제안도 함께. 누가 알겠는가. 함께 이어가다보면 성공이라고 모두가 기뻐하는 순간이 올지도. “이번주에는 그럼 어디 랩미팅을 구경 갈까?” 사람들이 고민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558·5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