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한파가 휘몰아치던 지난 3일 오전 3시40분 서울 최대 인력시장이라는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사거리를 찾았다. 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시간, 남구로역 5번 출구 뒤편에는 곧 모여들 건설근로자를 위해 천막이 설치돼 있었다. 천막을 설치한 자원봉사자들은 구로4동자치회관 창고에서 건설근로자에게 제공할 둥글레차를 준비하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거리가 휑하다며 인력시장은 언제쯤 열리냐고 묻자 “4시15분은 돼야 사람이 모여든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원봉사자 홍모씨(61·여)는 “건설이 많이 죽었다. 겨울까지 겹치니 더 일이 없다”며 즈음의 인력시장을 설명했다. 다른 봉사자도 “나왔다가 그냥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3일 오전 5시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사거리. 하나은행 주변으로는 주로 조선족, 중국인 근로자가 모인다./사진=강영신 기자

◆일자리 기근? "간단해, 추우니까 없는 거야"
오전 4시 정각, 창고를 나와 남구로역 5번 출구 앞을 서성이는 건설근로자에게 다가갔다. 요즘 인력시장은 어떠냐고 물으니 “요즘에는 일이 없어서 사람이 별로 안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5번 출구 뒤쪽으로는 주로 한국인이 모이고 하나은행 앞에는 조선족 동포와 중국인이 모인다면서 “그 사람들이 6만~7만원에 (일을) 가버리니 요즘 일자리가 더 없다”고 말한 후 자리를 피했다.


옆에서 기자를 지켜보던 또 다른 건설근로자는 “기자양반 간단해. (일이 없는 건) 추우니까 그래 추우니까. 난방비니 뭐니 돈이 많이 들잖아”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따라가면서 예전과 비교하면 어떤지를 물었다. “원래 이 시간에는 바글바글했지. 근데 겨울이고 춥고 일 없으니…. 연초라 더 (일이) 없는 것도 있지.”

일반적으로 겨울은 건설현장 비수기다. 얼어붙은 땅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면 부실시공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콘크리트를 타설해도 낮은 온도에서는 콘크리트를 양생(굳히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만약 동결되기라도 하면 강도가 크게 약해진다. 일부 지자체는 하자발생과 부실시공을 예방하기 위해 기온이 많이 떨어지면 공사중지를 권고하기도 한다. 건설근로자에게 겨울은 생계가 위협받는 시기인 것이다. 

오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5번 출구 뒤편의 천막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천막에 놓인 온열기구를 쬐고 있는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조선족 동포라는 김모씨(35)는 자신을 10년 경력의 잡역부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이번 겨울이 일 구하기 제일 어려운 것 같다"면서 “여기 모인 사람 중 3분의1은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대중교통도 안다니는 시간인데 어떻게 왔냐고 묻자 구로시장 근처에 산단다. 여기 모이는 사람 대부분이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겨울이라고 현장에서 특별히 더 힘든 건 없지만 “그냥 일이 없어서 답답한 게 제일 힘들다”고 토로했다. 요즘은 목수 등 기술공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김씨에게 어떻게 일을 구했냐고 물었다. 그는 “팀으로 다니니까 원래 일하던 곳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오전 4시를 조금 넘기자 남구로역 5번 출구 뒤편에 설치된 천막에는 건설근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사진=강영신 기자

◆인력사무소 많아도 일자리는… 기술공도 마찬가지
팀으로 다닌다는 말은 인력업체 팀장 밑에서 한 팀으로 움직이는 거라고 25년 경력의 장모씨(55)가 설명했다. 그는 “인력사무소를 통하거나 아는 사람 소개로 팀에 들어간다”며 “팀으로 현장 하나 잡으면 (일을) 오래하지”라고 말했다. 

철근기술공이라는 정모씨(46)도 “인력사무소에서 팀으로 다니면 한달에 20일은 나간다”고 거들었다. 이어 “근데 그것도 현장에서 실수하면 잘리니까…. 그러면 다시 여기 나와서 일 구하고 팀 알아보는 거지. 팀 전체가 잘리기도 하고”라면서 팀이 전부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정씨는 요즘은 일자리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목수와 철근기술공은 길게 일해야 일주일”이라고 혀를 찼다. 기술공은 일당으로 18만~20만원을 받는데 일이 없으면 잡부라도 해야 한다며 자기가 그 신세라고 토로했다.

오전 4시30분쯤 되자 하나은행 앞으로는 사람이 많이 모여 줄이 생겼다. 5번 출구 뒤편 천막에도 사람이 가득 들어찼다. 인부들의 복장은 대동소이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목에는 목토시를 꼈다. 

장씨는 남구로 인력시장에 대해 “천호동도 큰데 서울에서는 여기가 제일 크다”며 “여기도 많이 커졌어. 초창기에는 (인력사무소도) 남부인력 하나밖에 없었는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구로 사거리에 인력사무소가 엄청 생기는데 일은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는 “인력사무소도 오전 5시만 되면 (일이) 끊어진다”며 “저쪽(외국인) 때문에 피해 보는 것도 있지”라고 말했다. 불법체류자 등의 외국인은 7만~8만원이면 일하러 가는데 한국인은 일당이 12만~13만원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국인의 일자리가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 못나가는 건 쟤들이나 우리나 똑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그래도 한국인은 한족이나 조선족에 비해 일을 많이 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인력사무소도 어지간하면 한국인부터 보내주려 한다고. 최씨는 “한국인은 10명 중 8명은 간다. 저쪽(한족)은 10명 중 3~4명 갈까”라고 덧붙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불법체류자나 F4(재외동포에게 발급되는 F-4비자)는 현장에서 사고 나면 큰일 나니까 잘 안 쓰지. 현장에서 확연히 줄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의 ‘재외동포(F-4) 자격의 취업활동 제한범위 고시’에 따르면 F-4비자를 소유한 재외동포는 ‘건축 및 토목공사와 관련해 육체적인 노동으로 단순하고 일상적인 업무에 종사’해서는 안된다.

오전 4시30분 즈음의 하나은행 앞. 외국인 근로자들로 길게 줄이 이어졌다. /사진=강영신 기자

◆"'불법' 단속하라"… 임금 고정되고 일자리도 줄어 
그러나 정씨의 말과 달리 A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인력시장에 대해 “예전과 비교하면 현장에 보내는 인원이 30~40%로 줄었다”면서 “금방 좋아지기는 힘드니 봄이 돼도…”라고 말끝을 흐렸다. 건설근로자 취업지원센터 관계자도 “정확한 수치는 제시하기 힘들지만 예년에 비해 취업자 수가 20~30%로 떨어졌다”며 “계절적 요인, 경기 요인이 크다”고 설명했다.

오전 5시가 다 되자 하나은행 주변은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외국인 근로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겨울이라 사람이 별로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를 바라보던 최모씨(56)는 “여전히 현장에서는 불법체류자를 데려다 쓴다”며 강력한 단속을 촉구했다. 

그는 “현장에서 웬만하면 안 쓰는데 중간업자들이 데려간다”며 “중간업자가 돈 떼는 거지. 한국인 13만원, 쟤네 7만원, 남는 돈은 누구 주머니로 들어가겠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몇번 단속의뢰를 했는데 그대로다"며 "저렇게 사람 많은 거 봐라. 일할 기회가 있으니까 모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씨처럼 일부 한국인 건설근로자는 현장에서 여전히 ‘불법’을 쓴다면서 울분을 토했다. 한 근로자는 “예전처럼 이름 바꾸기는 안 하는데 어쨌든 쓰긴 쓴다”며 외국인이 몰린 하나은행 쪽을 가리키며 “단속반이 쓸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날을 세웠다. 

남구로 인력시장에서 만난 한국인 근로자들은 대체로 ‘외국인 근로자 때문에 일이 줄어들고 임금이 내려갔다’는 공통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외국인들이 하도 싼값에 일하니까 한국인 일당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20년 경력의 철근기술공 김모씨(48)는 “중국인 때문에 단가가 고정된 것도 있다”며 “어차피 반복·숙달하는 일이니까. 외국인들도 며칠 하면 적응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가는 2~3년째 고정됐는데 물가만 올라 삶이 팍팍하다”고 토로했다.

오전 5시30분쯤 되자 한국인이 모인 5번 출구 뒤편은 슬슬 사람이 줄기 시작했다. 한 자원봉사자는 “5시40분이면 끝이야. 그때까지 못 구하면 끝이지”라며 천막을 치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오전 6시가 다 되도록 길 건너편 하나은행 앞은 사람이 빠지지 않았다. 공사현장에서 자재정리를 한다는 조선족 동포 박모씨(47·여)는 “단속도 엄해지고 일 구하기 힘드니까 그냥 끝까지 남아있어 보는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전 6시가 다 되어가지만 하나은행 앞은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뤘다./사진=강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