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2일은 역사의 날인가 보다. 굵직굵직한 사건이 적지 않았다. 대한민국 제헌헌법이 1948년 이날 통과됐고 기원전 20년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명 줄리어스 시저)가 태어났다.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였던 행주산성대첩을 거둔 권율 도원수가 1599년 서거했고 에라스무스도 1536년 이날 사망했다. 1993년 이날은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동부에서 진도 7.8의 강진이 발생했다.
2019년에도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초복으로 무더위가 본격화한 이날 새벽 2020년 최저임금이 결정됐고 오후에는 가수 유승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타협정치' 보여준 최저임금 결정
올해 최저임금 결정과정은 예년과 달리 정치권과 국민들이 배워야 할 점이 많았다. 우선 생각의 차이가 컸음에도 토론을 거쳐 결정을 이뤄냈다는 점이 달랐다. 노동자 측은 당초 1만원을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 건 ‘2020년 1만원’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였다. 반면 사용자측은 전년보다 350원(4.2%) 줄어든 8000원을 주장했다. 지난해(16.4%)와 올해(10.9%), 최저임금이 너무 급격히 올라 중소 영세자영업자들의 부담이 크고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유였다. 1만원 대 8000원, 그 차이는 컸다. 처음부터 파행이 예고됐다.
하지만 최저임금위원회 30명은 포기하지 않고 이견을 조정했다. 노동자 측은 9670원으로 낮췄다가 최종적으로 8880원을 제시했다. 전년보다 530원(6.34%) 오른 수준이다. 사용자측도 8150원으로 수정했다가 240원(2.87%) 오른 8590원을 최종안으로 냈다. 차이는 2000원에서 290원으로 줄었고 전원회의 투표에 부쳐졌다. 결과는 11(8880원) 대 15(8590원) 대 1(기권)로 결정됐다.
격차가 컸지만 인내를 갖고 차이를 줄이며 다수결로 결정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참모습을 보여줬다. 결정 뒤 노조와 영세자영업자 등이 불만을 토로했지만 한국경제의 현실을 감안한 합리적 선택이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과도하게 제시한 ‘대선공약’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내년 최저임금이 8590원으로 결정되면서 ‘이르면 2020년, 늦어도 임기(2012년) 내 1만원’ 공약이 물 건너갔다는 노조 측 불만이 터져나온다. 하지만 미중 무역갈등과 일본의 치졸한 경제보복 등으로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 공약완수보다는 ‘효과적 경제관리’가 더 중요한 때다.
◆콩 심고 벼 거두려는 유승준
한때 잘나가던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유·43)은 공익요원 입대를 앞두고 돌연 미국으로 도피했다. “병역의무를 마칠 것”이라던 팬들과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벗어던졌다.
그리고 이제 와서 한국에 돌아와 활동하겠다며 법정투쟁을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가 F4 비자를 발급하지 않자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에서는 비자발급 거부가 합법적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12일 2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다시 재판하라고 결정했다. 사실상 유승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국민들은 들끓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판결이 나오자마자 ‘유승준 입국금지 다시 해주세요. 국민 대다수의 형평성에 맞지 않고 자괴감이 듭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군대 가기 싫어 미국으로 도망갔으면 거기서 계속 살 것이지 법적 기간이 끝났다고 해서 그 틈을 노리고 한국에 다시 오겠다는 것은 파렴치의 극치’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다. 청원자는 하루 만에 10만명을 넘어 지금도 증가세다.
콩 심은 데서는 콩 나고 참외 심은 곳에선 참외를 얻는 것이 자연은 물론 사람 사는 법도다. 그런데 유승준은 콩 심어 놓고(병역 기피하고) 벼를 거둬 쌀밥을 해 먹겠다(다시 한국에 와서 살겠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특히 ‘재외동포법’이 해방 후 귀국하지 못하고 전 세계에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 등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명백히 병역회피자인 유승준이 이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공자는 “법과 처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이를 피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운 줄 모른다. 도덕과 예의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알고 품격도 갖춘다”고 했다. 비록 법 규정이 그렇다 하더라도(잘못된 법 규정은 바꿔야 마땅하다) 그런 법의 빈틈을 노리고 뻔뻔스럽게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하는 것은 사법권 남용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공정한 마음으로 시비 변별해야
<주역> 화지진, 괘 구사효사는 “석서처럼 나아간다. 고집 피우면 위태롭다”고 경계한다. 석서(鼫鼠)는 날다람쥐로 날지만 집을 날아 넘지 못하고 나무에 오르지만 끝까지 가지 못하며 헤엄치지만 계곡을 넘지 못하고 구멍을 파지만 몸을 숨길 정도는 못 되며 달릴 수 있지만 사람보다 빠르지 못한 특징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변변치 못한 재주로 깝쭉거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선 이견과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견과 갈등의 존재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생기는 이견과 갈등을 어떻게 조화롭게 푸느냐다.
<주역>은 “같으면서도 다름을 인정하는 동이이(同而異)”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공자도 이를 받아 “조화롭게 어울리되 똑같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원효대사는 적극적으로 화쟁(和諍)을 강조했다. 쟁은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는 말이나 글(학설이나 이론)이다. 이런 쟁을 토론을 통해 화해와 화합으로 이끈다는 말이다.
순자는 ‘굴러오는 구슬은 움푹한 구덩이에서 멈추고 유언비어는 지혜로운 사람 앞에서 멈춘다’는 속담을 인용하며“시비가 엇갈리는 문제에 직면하면 먼 일로 헤아리고 가까운 일로 검증하며 공정한 마음으로 가늠하면 뜬소문이 그치고 사악한 학설은 사라진다”고 했다. “어진 마음으로 도를 말하고 배우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 말을 들으며 공정한 마음으로 시비를 분별하라”고도 했다. 난세에 공자와 순자, 원효의 지혜가 절실하게 그리워진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2호(2019년 7월23~2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