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허인철 부회장/사진=장동규 기자
60년간 과자만 만들어 온 오리온이 ‘제주용암수’를 내놓고 ‘먹는 물’(생수) 시장 진출을 선언해 관심이 모아진다.
오리온의 생수시장 진출은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의 야심작이다. 허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제주용암수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3년6개월 전 지인의 소개로 삼다수 밑, 71억톤에 달하는 ‘제주 용암수’가 40만년 전부터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소개했다.

평소 물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허 부회장에게 용암수는 매력적인 신사업 아이템이었다. 허 부회장은 곧바로 생수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고 마침 제주 성산에 위치한 용암해수산업단지 내에 두곳의 용암수 제조 인가업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6개월간의 노력 끝에 둘 중 한 업체를 인수했고 본격적인 용암수 개발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제주용암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리온 임직원들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다는 제주 용암수는 일반 생수 대비 칼슘, 마그네슘 등 미네랄 함량이 높은 제품으로 엄밀히 말하면 ‘프리미엄 생수’를 표방한 혼합음료다. 허 부회장은 용암수의 품질력을 바탕으로 피지워터, 에비앙 등 프리미엄 생수와 경쟁하고 나아가 국내를 넘어 글로벌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오리온의 깜짝 변신. 물 사업은 순항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곳곳에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 순탄하긴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내 판매 안 돼”… 제주도와 법적 공방


가장 큰 풍랑은 수원지가 있는 제주도와 법적 공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청에서 용암수의 국내 판매에 제동을 걸면서다. 앞서 오리온이 용암해수를 허가받을 당시 해외시장에만 판매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근거로 제주도와 취수량을 협의해 늘려왔다는 게 제주도 측 주장이다.

허 부회장이 2017년 2월 사업 시작을 앞두고 원희룡 제주지사와 면담을 가진 자리에서 국내 판매는 하지 않고 전량 해외 판매를 약속했다는 설명이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당시 오리온이 국내 판매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미 삼다수(먹는샘물)와 라바(혼합음료) 등이 생산되고 있어 제주도 자원의 과당 경쟁 방지 등으로 안된다고 답했다. 이후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만 팔겠다고 해서 입주를 허가해 준 것”이라며 “이제 와서 국내 판매를 하겠다는 건 약속을 어긴 부분이고 과거 면담과 상충되는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제주도 측은 제주도 오리온에 국내 판매를 하지 말라는 공문을 두차례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오리온은 반박하고 나섰다. 당시 제주도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도 국내사업부분이 명시돼 있으며 구두로도 해외 판매만 하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허 부회장은 “제주도 사업계획에도 명백히 국내와 해외 판매부분이 언급돼 있으며 해외 판매만 약속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국내에서도 팔지 않는 물을 어떻게 세계 시장에 내 놓을 수 있겠나. 제주도의회 일부에서 나오는 말도 안되는 음해성 발언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음해성 발언의 출처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표했다. 허 부회장은 “원 지사를 만나 구두로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재차 강조하며 간담회 후 몇몇 기자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 “삼다수가 제주도개발공사가 100% 출자한 회사다보니 자연스레 도 직원들과 삼다수의 관계가 긴밀할 수밖에 없고 여기서 음해성 발언이 생산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지만 당장 제주도 측이 오리온의 용암수 국내 시판을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용암해수단지를 관리하는 제주테크노파크가 제주도 출연기관이여서 ‘취수량’으로 통제할 수는 있다. 용암해수 취수량은 초기 하루 3000톤에서 최근 2만1000톤까지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용암수/사진=장동규 기자
◆‘혼합음료’ 꼬리표 달고 빅3 진입?
‘혼합음료 꼬리표’도 순항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실상 오리온 제주 용암수는 생수가 아닌 혼합음료다. 삼다수, 백산수 등에 쓰이는 물이 원수 그대로의 지하수인 반면 오리온이 사용하는 용암수는 해수다. 해수의 염분을 걸러내 제거한 뒤 이 과정에서 빠져나간 미네랄을 다시 보충해 병입하는 가공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먹는샘물이 아닌 혼합음료로 분류된다. 코카콜라음료의 ‘JEJU’, 제주라바 등이 혼합음료에 속하는 먹는 물이다.

오리온은 제주 용암수를 내놓으면서 국내 빅4 생수업체인 삼다수, 백산수, 아이시스, 강원 평창수 등과 경쟁해 ‘빅3에 진입하겠다’는 포부를 내세웠다. 하지만 먹는물과 혼합음료는 관련법과 규제기관이 달라 한 데이터에 잡히지 않고 경쟁구도로 묶이지 않는다.

먹는샘물이 환경부의 제도권 안에서 ‘먹는물관리법 기준’에 만족하는 물이라면 혼합음료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 업계 관계자는 “물과 혼합음료는 카테고리가 달라 경쟁 형태로 보지 않는다”라며 “빅3 진입은 사실 말이 안되고 먹는물시장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의미 있는 점유율을 차지하겠다는 표현 정도가 맞다”고 잘라 말했다.

오리온은 가공과정이 다를 뿐 먹는 물이라는 포지션이 같기 때문에 ‘먹는 샘물’이냐 ‘혼합음료’냐 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가공된 물’은 정수기와 흡사… 에비앙과 경쟁?

피지워터, 볼빅, 에비앙 등 프리미엄 생수와의 경쟁도 관건이다. 일각에서는 원수 그대로를 뽑아내 최소한의 여과를 거쳐 제품화하는 물과 가공과정을 거쳐 pH지수, 미네랄 함량 등을 조절해 만들어진 물의 직접 비교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공과정을 거친 물은 사실상 정수기 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게 업계 일각의 목소리다. 업계 관계자는 “용암수의 공정과정 등이 정수기 물과 흡사한데 프리미엄 생수 이미지로 가격까지 비싸게 받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허 부회장은 이에 “에비앙은 알프스 산맥에 있는 암반위의 물이고 제주 용암수는 해수를 사용한다는 원수에 따른 차이”라며 “용암수는 소금을 분리하고 미네랄을 재투입하는 과정을 거칠 뿐 에비앙, 피지와 비교하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허 부회장의 말처럼 오리온은 pH 8.5 이상의 미네랄 워터를 강조한 ‘프리미엄 생수’를 표방하겠다는 계획이다. 가격도 삼다수보다 조금 비싸고 에비앙, 피지워터보다는 조금 낮은 가격으로 책정됐다. 용량도 키워 기존 500㎖보다 큰 530㎖를 메인으로 출시한다.

업계 관계자는 “먹는샘물은 아니지만 용암수가 먹는 물 시장에서 프리미엄 이미지로 의미 있는 점유율을 올린다고 하면 프리미엄 생수시장이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용암수가 각종 논란 속에서 프리미엄 생수에 대한 신 시장을 열어갈지 지켜볼 일”이라고 내다봤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1호(2019년 12월3~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