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자동차 업계는 또 한번 성장통을 겪었다는 평을 받는다. /사진=로이터
올해 자동차 업계는 또 한번 성장통을 겪었다. 글로벌 5위까지 올랐던 자동차 생산국의 위상은 지난해 인도와 멕시코에 추월당하며 7위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올해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곡절 속에 4위로 도약했다. 일정 부분 운도 따른 가운데 이제는 숨 고르기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전기차와 수소차를 중심으로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가운데 ‘테슬라’를 추격하기 위한 자동차 업계의 경쟁이 본격화돼서다. 잇따른 전기차 화재와 노조 리스크 등 당장 해결할 과제가 쌓인 자동차업체의 묘수는 무엇일까. 여러 의미로 ‘충전’이 필요한 자동차 업계의 상황을 살펴봤다.
‘뜨거운’ 전기차, 국감에 ‘불’ 걱정도…
-테슬라 자율주행기술 과장 논란부터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리콜까지

말도 탈도 많았다. 자동차업계가 친환경차로 본격 패러다임 변화를 앞둔 올해 전기차 관련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전기차 모델에서 화재가 잇따르며 글로벌 리콜로 이어지는 등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후유증이 드러났다는 평이다. 테슬라의 독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보조금 싹쓸이 논란과 불법 자동차 액세서리 장착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대기아차와 폭스바겐 등 다수의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전기차만을 위한 기초설계)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경쟁 의지를 밝힌 상황이다. 관련 업계는 전용 플랫폼을 통한 경쟁이 시작되는 만큼 ‘전기차 원년’으로 삼는 내년엔 안전 문제에 대한 대비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경호 테슬라 대표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2020 경찰청 국정감사에 증인 출석,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임한별 기자
◆국감 나온 테슬라

올해 전기차업계에서 끊임없이 거론된 회사는 업계 1위 테슬라다. 서비스 논란이 계속됐음에도 국내에서 1만대 판매를 넘어서는가 하면 국정감사(국감)에도 이름이 여러 번 오르내릴 만큼 확실한 존재감(?)을 보였다.
지난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한 김경호 테슬라코리아 대표는 반자율주행기술 ‘오토파일럿’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2단계이며 운전자가 주도권을 쥐고 운전하게 돼 있다"고 해명했다.


권영세 의원(국민의힘·서울 용산)은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 자동차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헬퍼’(helper)가 있다”고 지적하자 김 대표는 "위험성을 강하게 계도하고 있다"고 답했다.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은 미국자동차기술자협회(SAE) 기준 자율주행기술 5단계 중 레벨2(사고 시 운전자 책임)를 조금 넘는 수준임에도 레벨5(사고 시 제조사 책임) 이상을 뜻하는 ‘완전자율주행’이라는 용어를 쓴다. 이런 점 때문에 국내서도 논란이 됐고 독일에서는 오토파일럿이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조치가 내려졌다.
테슬라의 완전 자율주행기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은 모델3의 운전석. /사진=로이터

'헬퍼'는 아마존 등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팔 수 없지만 국내 쇼핑몰에서는 논란을 겪은 뒤인 지난 11월30일에야 국토부의 불법 튜닝 규정으로 검색이 차단된 상태다.
보조금 싹쓸이 논란도 불거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윤준병 의원(더불어민주당·전북 정읍시고창군)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연도별 국산 및 수입차 전기차 보조급 지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기차 보조금 1279억700만원 중 약 552억원이 테슬라 전기차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올해는 보급형 모델인 모델3 판매가 많아서 보조금도 그만큼 더 가져간 상황”이라며 “수입 전기차라고 무조건 인센티브를 주면 안 된다는 건 의미가 없다. 내년엔 고효율 전기차가 늘어나기 때문에 테슬라와 경쟁이 본격화돼 시장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혁신적인 기업이 나와야 다른 곳도 영향을 받으며 함께 발전한다”고 덧붙였다.
현대자동차의 코나 일렉트릭이 한 번 충전으로 1026km 주행에 성공했지만 잇따른 화재로 단종 수순을 밟는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위기의 K-배터리
이처럼 테슬라가 승승장구하는 사이 국내·외 완성차업체는 주력 전기차 모델의 배터리 관련 리콜에 시달렸다. 현대자동차의 ‘코나 일렉트릭’과 쉐보레 ‘볼트EV’가 대표적이다. 두 모델 모두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의 배터리가 탑재됐다.


10월 초 국토교통부는 코나 전기차의 리콜을 발표했고 같은달 16일 리콜 실시 이후인 22일 현대차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합의한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현대차는 “코나 일렉트릭 차종 중 특정 기간 동안 LG에너지솔루션 중국 난징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 셀을 공급받아 그린파워 충주공장에서 조립한 배터리 팩이 탑재된 일부 차종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이후 현대차는 해당 리콜에 대해 “대상 차종의 문제 발생 가능성을 점검하고 배터리 모듈 교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업데이트”라고 설명했다. 배터리의 과부하를 제어함으로써 문제 발생을 미리 막는다는 것이었다.
GM이 화재위험에 따라 쉐보레 볼트EV의 글로벌 리콜을 실시한다. /사진제공=한국지엠

지난달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도 쉐보레 볼트EV에 대한 조치를 취했다. 배터리 충전량을 90%로 제한하는 소프트웨어를 적용하는 것이다. 한국 LG에너지솔루션이 제조한 배터리가 장착된 쉐보레 볼트EV 6만9000여대에 대한 자발적 리콜을 발표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따르면 완전히 충전되거나 대부분 충전된 볼트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GM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찾지 못했지만 LG에너지솔루션 오창공장에서 제조된 배터리가 사용됐다는 유사점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에 국토부 관계자는 “고전압 배터리가 완전히 충전되거나 최대 충전량에 근접할 경우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며 “화재 발생 가능성 등 정확한 사실 규명 후 추가 시정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화학 직원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들고 있는 모습/사진=LG화학

◆전기차업계 살 길은 ‘안전성’ 확보

명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내 배터리업체는 전기차 안전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외에도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에서도 화재 위험성이 제기됐고 리콜도 잇따랐기 때문이다. 독일 BMW는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PHEV 2만6000여대에 대해 리콜을 발표했고 미국 포드는 지난 8월 ‘쿠가 PHEV’ 등 2만7000여대에 대해 리콜을 실시한 바 있다.
전기차의 안전성 문제를 두고 겪어야 할 성장통으로 보며 앞으로 제기될 문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김 교수는 “최근 테슬라 모델X의 탑승자 사망 사고에서도 볼 수 있듯 전기차는 다양한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며 “업체는 소비자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위험성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내년엔 배터리를 바닥에 설치하는 형태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적용 신차가 늘어나는 만큼 그에 따른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운전자 교육도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내연기관차 차체에 전기동력기관을 얹은 탓에 충돌 안전성 면에선 검증된 상태”라면서도 “앞으로는 전용 플랫폼 적용으로 휠베이스가 늘어나고 비틀림 강성 등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가 된다. 측면 충돌에 대한 보완점 등 배터리 안전설계 면에서도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며 전기차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주장했다.

코로나19로 유독 더 힘들었다는 자동차 업계.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산업의 전환기에 적극 대응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경영 위기를 맞거나 노사 갈등이 장기화돼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곳도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모습./사진=이미지투데이


‘안전한’ 친환경차가 답이다
-코로나에 수출 줄고 곳곳 파열음… “힘들다”
해마다 힘겨운 싸움을 이어온 자동차 업계.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독 더 힘들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전세계가 유례없는 위기를 맞은 탓에 자동차 업계도 희비가 엇갈렸다. 산업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 자동차산업의 전환기에 적극 대응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경영 위기를 맞거나 노사 갈등이 장기화돼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곳도 있다. 국내 완성차 기업들의 현주소다.
국내 완성차 5개 기업 수출량./그래픽=김민준 기자

◆울고 웃은 자동차 업계

무엇보다 수출길이 막힌 점이 국내 자동차업체를 괴롭혔다. 올 들어 11월까지 국내 완성차 5사의 해외 판매 실적은 171만4702대로 지난해 대비 21.9%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현대차는 264만9687대의 해외 판매를 기록하며 20.9%나 줄었다. 기아차도 9.6% 감소한 187만5342대에 그쳤다. 한국지엠은 24만8035대로 전년 대비 20.3% 줄었다. 쌍용차는 1만7324대로 23.6%, 르노삼성은 1만9222대로 77%나 감소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수출 절벽에 내몰린 것이다.

이런 여파로 쌍용차는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면서 그늘이 깊어졌다. 쌍용차의 최대주주인 인도의 마힌드라는 자국 내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 상황이 악화됐다.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나면 쌍용차의 최대주주를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더 이상의 추가 자금 지원은 어렵다고도 언급했다. 연 3조원 규모의 매출을 내는 쌍용차는 단 600억원(자기자본비율 8.02%)을 갚을 돈이 없어 대출 원리금 상환이 연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쌍용차 관계자는 “상환 자금 부족으로 대출기관과 만기 연장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쌍용차의 지난 3분기 매출은 705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6% 줄었다. 영업손실은 932억원으로 15분기 연속 적자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과 교수는 “쌍용차의 경우 차입금 상환이 매달 문제가 될 수 있다. 존폐 위기”라며 “반복되는 위기 상황 속에서 빠르게 투자처를 찾아야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정의선 회장 취임 후 발 빠르게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현대기아차를 괴롭혀온 세타엔진 리콜 등 ‘품질 이슈’를 털고 가기 위해 리콜 충당금 4.3조원을 설정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코나 전기차 화재와 중고차업계 진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정 회장은 수정된 ‘현대차 2025전략’을 통해 종합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의 변신을 발표했고 이에 맞춘 인사도 단행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수정된 현대차 2025 전략과 다이내믹스 인수 및 인사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지고 있다”며 “수소·전기차와 더불어 도심형 항공 등 미래 모빌리티를 선점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고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 순위./그래픽=김민준 기자

◆글로벌 자동차 생산 첫 4위

이 같은 위기 속에서도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선방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올 들어 9월까지 자동차 생산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6% 준 254만9202대였지만 글로벌 자동차 생산국 4위로 도약했다. 지난해 멕시코와 독일에 뒤처지며 자동차 생산국 7위였던 한국이 1년 새 3계단이나 상승한 것.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공장 가동이 잇따라 중단되면서 주요국의 자동차 생산 실적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K-방역’에 힘입어 공장 가동이 안정화된 점과 개별소비세 인하 등 각종 정책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이 때아닌 황금기를 맞은 점도 생산량 유지에 도움이 됐다는 평이다. 올 들어 11월까지 완성차업체 5사(현대·기아·쌍용·르노삼성·한국지엠)의 국내 판매량은 147만397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만8327대)보다 6.2%나 늘었다.
지난해 한국보다 상위에 있던 독일(249만2772대)·인도(218만6222대)·멕시코(215만8896대)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지면서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이들 국가의 생산량은 지난해와 비교해 많게는 40% 가까이 추락했다. 같은 기간 중국은 1693만1933대를 생산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미국(621만340대)과 일본(486만5061대) 순이다.

이런 상황에 일부 업체는 ‘노조 리스크’에 발목을 잡혔다. 지난 11월 국내 자동차 생산은 32만447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만1725대가 줄었다. 이 중 90%는 파업 곡절을 겪은 한국지엠과 기아차의 몫이었다.
제88회 제네바 국제 모터쇼에 진열된 현대자동차 코나 일렉트릭./사진=로이터

◆변화 주도해야 산다

코로나19 사태는 한국 자동자 업계에 전환기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생산에서 ‘첫 4위’는 앞으로 한국의 자동차산업 전반에 자신감을 갖게 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친환경차다.
자동차 수출량이 감소할 때 친환경차 판매는 오히려 성과를 거뒀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세계 수소전기차 판매량은 총 6664대로 이 중 현대차가 4917대를 기록하며 무려 73.8% 점유율을 기록했다. 장기적으로는 내연기관차 시대가 저물고 친환경차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에 한국산 친환경차의 약진이 기대되는 이유다.

아우디폭스바겐그룹만 하더라도 내년부터 국내 시장의 전기차 매출 비중을 11%까지 높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전세계 9대 자동차업체를 합한 것보다 많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내연기관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새로운 유형의 자동차를 개발해 앞으로의 경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도 전기차 관련 전략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올해 어려움을 겪은 쌍용차는 내년 상반기 코란도 플랫폼을 공유한 준중형 전기 SUV 출시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노린다. 현대차도 내년부터 전기차 플랫폼 ‘E-GMP’가 적용된 신형 전기차 ‘아이오닉5’를 비롯해 다양한 신차를 내놓는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 출시된 전기차 가운데 세단 이상의 크기를 갖춘 패밀리카가 없다”며 “이번 쌍용차와 현대차의 신형 전기차 출시가 시장과 업계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궁극의 미래차는 수소차와 전기차가 될 것”이라며 “전세계 각국이 수소전기차의 양산 모델을 개발하는 등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전소는 아직 원천기술이 부족한 것으로 안다. 이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자동차 업계의 생존이 걸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찬규 기자 star@mt.co.kr
지용준 기자 jyju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