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당시 극동북극개발부 수장이었던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장관과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3월23일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좌초되면서 전 세계 해운 물동량의 12%를 차지하는 수에즈 운하의 통행이 일주일 동안 중단됐다.

이 기회를 포착한 러시아는 수에즈 운하의 대안으로 북극항로를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북극항로를 이용할 경우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운항시간이 10일가량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운송비용과 환경문제 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물동량은 오랜 기간 수에즈 운하에 집중돼왔다. 그만큼 수에즈 운하 마비의 파급력도 상당했다. 이번 사고로 시간당 피해액이 최대 100억달러(약 11조2000억원), 이집트가 입은 손실만 10억달러(약 1조1290억원)로 추산됐다. 수에즈발 물류 대란이 대체항로의 필요성을 일깨운 것이다.
‘제2의 수에즈 사태’ 막으려면

글로벌 해운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1월 2885포인트를 정점으로 2500~2600선에 머물며 조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3월 말 이집트 수에즈 운하 사고 이후 미주 동안과 유럽 항로 중심으로 운임이 다시 급등하며 물류 공급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SCFI는 지난 14일 기준 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3343.34를 기록했다. 전주(3095.16) 대비 248.18 급등하며 지난달 30일에 세운 최고기록 3100.74를 2주 만에 갈아치웠다.

유럽 항로 운임도 5438달러로 사상 최초로 5000달러를 돌파했다. 미주 동안 운임도 1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342달러나 뛰어오르며 최고치인 7378달러를 기록했다. 철광석·석탄·곡물 등을 실어 나르는 벌크선 운임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3266포인트를 기록해 11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2월에 1333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수에즈 운하 사고가 급등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다.

이 가운데 ‘제2의 수에즈 사태’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북극항로가 재조명되고 있다. 러시아는 북극항로가 수에즈 운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

북극항로는 부산에서 유럽으로 가는 북동항로와 미주로 가는 북서항로로 나뉜다. 러시아는 북동항로의 가장 큰 연안국이다. 세계 1위 선사 머스크는 이미 시험운항에 성공했다. 일본과 중국 등도 북극항로 거점 확보를 위해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앞서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지난 2월 ‘한-러 북극협력 2.0 시대를 여는 신(新) 북극전략 수립 필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현재 전방위적인 신 북극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7년 이후 북극항로 이용 관련 해운·조선 분야 법률을 제·개정하고 조직 확대에 나섰다. 무역항행법 개정을 통해 러시아 국적 선박에 한해 북극항로 내 에너지 자원 독점적 수송 권리를 부여하며 자국 해운산업 성장과 국제항로로서의 북극항로 입지를 강화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19년 2월 기존의 극동개발부를 극동북극개발부로 개편해 북극 전략을 극동 개발과 연계해 추진할 것을 공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전략 추진 성과로 북동항로 물동량은 2016년 748만톤을 기록하고 2017년엔 처음으로 1000만톤을 돌파했다. 2018년 1968만톤, 2019년 3150만톤으로 3년 만에 물동량이 4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저유가 등 영향으로 물동량 성장세가 더딜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3000만톤을 훌쩍 넘어섰다.

러시아, 2035 북극개발·안보 전략 수립

러시아는 지난해 중장기 북극 전략인 ‘2035 북극개발·안보 전략’도 수립했다. 주요 내용으로 ▲북극 지역의 의미 ▲현황 ▲개발 시 리스크 요인 ▲단계별 추진과제 ▲지역별 개발 방향 등을 담고 있다. 2035년까지 9개 지방정부의 북극개발 방향과 분야별 추진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북극지역을 이용해 통합적 국가경제발전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북극항로는 수에즈 운하 대비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운항시간이 짧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쇄빙지원선 필요 등으로 수에즈 운하보다 3배가량 더 드는 운항 비용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러시아 정부는 북극항로 운송비용을 낮춰 이용 빈도를 높이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환경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스위스 해운사 MSC 등은 북극항로 이용이 대기오염과 해양생태계 파괴 등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북극항로를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 환경단체도 늘어나는 해상교통량과 쇄빙 활동이 북극의 기후 변화를 가속화할 뿐 아니라 기름 유출 사고 등 다른 재난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 빙하가 녹으면 2030년 북극해 연중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도 하다.

최근 러시아는 2030년 해당 항로의 물동량이 1억톤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3일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알렉세이 체쿤코프 극동북극개발부 장관은 “지난해 북극항로 물동량은 3300만톤으로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며 “2030년까지 물동량 1억톤 도달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올가 스미르노바 극동북극개발부 고문은 “북극항로가 남쪽에 위치한 수송로보다 더 환경친화적인 항로가 될 것”이라며 “러시아가 북극항로를 개발하며 화물 운송 환경과 안전을 우선으로 적절한 종류의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 활용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MI 관계자는 “북극항로가 본격적으로 열린다면 세계 최고의 조선술을 가진 한국 조선사에 LNG쇄빙선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은 이미 러시아에서 관련 선박을 수주한 경험이 있는 만큼 다양한 사업과 연계해 북극항로 시대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